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과월호 기사 발췌, 철학자 이정우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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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한편으로 어떤 지식들을 동원해도 ‘나’는 온전히 해소되지가 않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 그런 지식들 자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주체, 아니 그 이전에 개개의 개별적 존재, 개체, 개인 등은 그 어떤 틀로도 온전히는 환원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지식들은 모두 쓸모없는 것일까요? 물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지식들이 ‘나’를 온전히 해명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들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과학은 인간의 어떤 측면을 매우 잘 밝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주관적인 상상과 착각에 빠진다면, 이는 곤란한 일이죠. 자신의 주관을 넘어 객관적인 지식을 쌓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자의적인 주체성의 환상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식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능하면 많이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 가능한 한 많이 공부하는 것이 좋을까요? 어느 한 지식만을 잘 아느니 차라리 지식이 없는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없이 단순한 상식에 따라 사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이지만, 최소한 독단에 빠지지는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느 한 지식만을 가진 사람은 오로지 그 지식만으로 세상을 보고, 오로지 그 지식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오히려 몰상식한 인간이 되기 십상입니다. 생물학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인간의 언어, 문화, 역사, 정신 등등은 도외시하고 덮어놓고 뇌의 운동이니 세포의 분열이니 DNA니 하는 것들을 가지고서 세상을 봅니다. 정신분석학만 공부한 사람은 덮어놓고 무의식이니 하는 것들을 동원해서만 사람을 봅니다. 특정 과학만을 공부한 사람은 지식의 어떤 한 영역에서는 성과를 낼지 몰라도, 삶 전체, 인생 전반에 대해서는 차라리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보다 오히려 더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그래서 공부를 할 때 가능하면 여러 분야, 여러 관점, 여러 틀을 많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말이 쉽지, 그 수많은 지식들을 어떻게 균형 있게 건강하게 섭취할 수 있을까요? 이 맥락에서 특히 중요한 두 학문이 역사와 철학입니다. 왜 그럴까요? 역사와 철학을 통해서 다양한 지식을 종합하고 거시적 안목을 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야들은 어느 특정한 영역을 다룹니다. 물리학은 물질을, 생물학은 생명체를, 경제학은 경제 현상을, 언어학은 언어를 다룹니다. 하지만 역사와 철학은 모든 분야들을 종합해서 삶 전체를 바라보는 거시적 비전을 주는 분야이고, 때문에 늘 이 두 분야를 중심에 놓고서 다른 지식들을 종합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지식은 시간이 흘러가면 역사가 됩니다. 언어학은 언어학사가, 미술은 미술사가, 정치는 정치사가 됩니다. 모든 것은 결국 역사인 것이죠. 그리고 역사에 대한 폭넓은 시각에 근거해서 현재와 미래를 사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종합적 안목, 거시적 안목의 성숙에는 철학적 사유가 필수적입니다. 앞에서 특정한 과학을 가지고서 세계 전체를 보려는 시도들에 대해 언급했습니다만, 이것은 바로 철학이 해야 할 일을 개별 과학을 가지고서 하려는 시도, 즉 사이비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형태의 환원주의는 결국 사이비 철학인 것이죠.

요컨대 1) 아무리 지식을 쌓아도 ‘나’라는 존재가 그 지식들로 온전히 환원되지는 않습니다. ‘나’는 고유한 실존이고, 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주체성입니다. 2) 하지만 이것이 과학적 지식을 도외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한 과학을 널리 공부해 교양을 쌓는 것이 ‘나’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관적인 착각에 빠져 살아가게 됩니다. 3) 늘 역사와 철학을 가지고서 여러 지식을 종합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만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나의 사상, 사유, 비전을 기를 수 있습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