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말에 앞서 들어가기 전에 선악설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해보면



나는 악을 극복해야 선이 증명되구, 선이 무너져야 악이 증명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임. 인간 누구에게나 선악이 존재하고 그 둘의 싸움이 맨날 있다는거.



그래서 성선설과 성악설을, 악을 극복하는 이야기와, 선이 정복당하는 이야기로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낙관과 비관에 대해서 얘기했을 뿐, 같은 거 보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이것과 마찬가지로, 자유도 이야기될 수 있는 거 같다.



누구나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것은 보편적 염원이다.



자유의 형태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자유의 형태가 다양할 것이기 때문임.



그러나 선악과 마찬가지로 나는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자유의 반대되는 삶을 극복해야 진정한 자유가 온다고 봄.



그래서 성급한 이분법적으로 간략히 얘기하자면



감성적인 사람은 이성이 요구하는 윤리를 극복해내는 게 중요하고



이성적인 사람은 감성이 요구하는 욕망을 극복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봄.



인간은 뭔가 좀 븅신 같아서 한쪽으로 치우치면 확실히 스스로를 억압하는 존재라고 생각해.



드래곤 라자의 작명 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게



'자유와 쇠사슬의 닐림'이었음.  자유가 본인이 타고난 성향이라면, 쇠사슬은 본인을 억누르는 반대성향의 억압이고, 그 쇠사슬을 통해서만 자유를 좇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인간의 이러한 기묘한 성향은 내가 어제 새벽에 뻘짓하며 읽은



무라카미 류의 '자살보다 섹스' 에세이 중에서도 나온다고 생각한다.(이 아저씨 기대 안했는데 혜안이 있다고 봄. 많이 솔직하고. 거진 20년 전에 쓴 책인데 현재 상황 거의 다 맞췄더라.)



남자는 '소모품'이라서 쓸모없다가 아니라, '소모품'이기에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글을 썼는데.



소모품이라는 건 남자에게 있어 여자는 단 하나의 존재이지만, 여자는 남자의 대용품(다른 남자)를 찾을 수 있다는 이 아저씨 나름의 지론.(내 이해)



대용품이 될 수 있어서 쓸모없다,가 아니라 대용품이 있으니까 내 맘대로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기묘함.







이런 잡스런 이야기 왜 했냐고 하면, 조르바 얘기 좀 하고 싶어서.



나는 작중에서 조르바가 늘 똑같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하지 않음.



그 과부를 책임지려고 했을 때 조르바가 정말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해.



본인이 살아온 좆꼴리는 삶에서, 본인을 억압하는 책임과 윤리를 받아들이는 그 부분에서



인간 조르바가 가장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었을 거라 생각해.



그래서 밑에 조르바 이 쓉새끼 자유롭다고 하는거 이해 안된다는 글이 있었는데 이런 방식의 이해라면 글쓴이의 지론에도 해당되는 사항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서 독갤럼들은 어떻게 생각하심?









ps. 이거 공지에서 벗어난 거면 걍 지워도 됨. 근데 안벗어난다고 생각해서 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