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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세크스가 좋아서,라고 말해도 뭐 틀린 말은 아닌데

그거도 없지는 않으나 대충 다음과 같은 발췌내용을 봤기 때문이다.

'세크스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인다면 세상은 훨씬 이상적일텐데' 정도의 말이다.

항상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인데, 겁나 폭력적인 말이라서 차마 말을 못꺼내던 걸 책에서 말하고 있길래..

궁금해져서.


1.

그러나 막상 읽게 된 이 책의 내용은 좀 많이 달랐다.

이 책은 대충 17년 정도쯤 모은 에세이들을 엮어서 만들어낸 에세이집이다.

여러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고, 한국에도 지금 통용되는 이야기들도 많아서 통찰력이 돋보인다.

03년에 우리나라에 나왔던데, 그 때 읽어보았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하고 솔직하고 미래를 보는 힘이 있다.

하지만 솔직함과는 별개로 이 사람이 에세이를 쓰며 말하는 전제가 더 중요하다.

그 전제는 대충 다음과 같다.

'남들이 정해주는 답을 받아들이는 시대가 끝나감에 따라 여러 나쁜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는데, 아무 생각없이 섹스를 해서라도 살아갈 수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17년이나 에세이를 모은 것이므로) 나는 생존을 위한 섹스(매춘이라기보단 자기 자신을 확인하기 위한 의존적 섹스)를 부정하였으나,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방황하는 개인이 바로 정답을 찾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정답을 찾아내기까지 그런 무의미한 뻘짓을 통해서라도 필사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면, 그 섹스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정답이 없어지고 개인이 답을 선택해나가는 시대, 또한 아무도 그것을 안 알려주고, 또 알려줄 생각도 없고, 남들을 따라가서 알아서도 안되는 시대이므로, 고통과 절망과 스트레스가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해내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긍정하긴 힘들 것이다. 그 극복해내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필사적인 뻘짓을 나는 옹호하고 싶다.'



2.

나는, 내가 기억하는 일본문학은 하루키, 가네시로 카즈키, 그리고 몇 개 기타 등등. 작가로 기억을 못하는 거 봐서는 잘 안읽었나보다.

기본적으로 내가 느끼기엔 감상적이었다. 나는 현실과 어떤 거리감이 있고, 그 거리감에서 거짓말을 느낀다.

이것은 주관적 감상일 뿐이지 일본문학이 실제로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튼 그런 의미로 나는 일본문학풍을 다소 꺼린다.

하지만 무라카미 류의 인식은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다른 듯하고, 그게 내 흥미를 끌었다.

감각적이긴 해도, 감상적이진 않다. 그리고 동시에 매우 현실적이고, 오히려 지향은 고상한 편이다.

독특한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쾌락을 매우 긍정하되 그것을 현실의 본질이라 생각하지 않는,

나는 도끼는 읽어봤지만 똘이는 안읽어봤는데, 똘이의 전기소설들이 쾌락을 제법 긍정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도끼와 똘이의 만남과 같은 지점을 지향하는 작가랄까?

그래서 좀 궁금해졌다. 이제 다시 바빠질 예정이므로 소설같은 건 읽을 시간이 없겠지만, 영화작가이기도 하므로 그 사람 영화는 좀 찾아봐도 되겠다 싶음.








ps. 다음 리뷰는 한강(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