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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에리히 프롬 사상의 입문서로 읽힌다고는 하지만 항상 소설만 읽는 나한테는 좀 벅찬 책이었어..
하지만 확실히 얻어가는 점도 믾은 책인 것 같아.
특히 저자가 일상생활에서의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너무 인상깊었는데(참고로 이 책에서 저자는 소유 양식을 멀리하고 존재양식을 가까이 하기를 주장하고 있어.)
그중에서도 독서파트에서는 내 독서습관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게 만들더라.
일단 저자는 존재양식으로서 독서를 행하려면 우선 우리가 읽는 책부터 바꿔야한다고 주장해.
단순히 오락거리를 위해 읽히는 책, 독자들이 즐기기 위해 읽히는 책들은,그런 의도로 쓰여진 책들은 아무리 존재양식으로 독서를 할려해도 소유양식으로써 읽힐 수 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있어.(굳이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 책들은 라노벨이나 장르소설이 들어가겠지?)
그렇다면 존재양식으로써 읽힐 수 있는 책들은 모두 그렇게 읽히고 있을까? 하지만 대다수는 그렇게 읽히지 않는다고 해(여기서 내가 해당된다는 것을 느낀 거 같아.)
독자는 호기심에 이끌려 단순히 줄거리의 전율을 느끼고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만 초점을 두는 등 단지 이야기를 "소유하고 있을 뿐" 이런다면 독서과정에서 무엇도 얻어갈 수가 없어. 그리고 이것은 소설뿐만 아니라 역사서 등의 비문학에서도 마찬가지야.
그렇다면 존재양식으로써 독서를 행하는 사람은 대체 뭐가 다른걸까? 그들은 아무리 저명한 저서라도 무가치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확신에 이룰 수 있으며 어쩌면 작가보다도 그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보고 있어.
이 부분을 읽고서 나뿐만 아니라 독갤의 많은 친구들도 소유방식으로 독서를 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
내 글을 읽고서 존재양식으로 독서를 대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어!
하지만 확실히 얻어가는 점도 믾은 책인 것 같아.
특히 저자가 일상생활에서의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너무 인상깊었는데(참고로 이 책에서 저자는 소유 양식을 멀리하고 존재양식을 가까이 하기를 주장하고 있어.)
그중에서도 독서파트에서는 내 독서습관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게 만들더라.
일단 저자는 존재양식으로서 독서를 행하려면 우선 우리가 읽는 책부터 바꿔야한다고 주장해.
단순히 오락거리를 위해 읽히는 책, 독자들이 즐기기 위해 읽히는 책들은,그런 의도로 쓰여진 책들은 아무리 존재양식으로 독서를 할려해도 소유양식으로써 읽힐 수 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있어.(굳이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 책들은 라노벨이나 장르소설이 들어가겠지?)
그렇다면 존재양식으로써 읽힐 수 있는 책들은 모두 그렇게 읽히고 있을까? 하지만 대다수는 그렇게 읽히지 않는다고 해(여기서 내가 해당된다는 것을 느낀 거 같아.)
독자는 호기심에 이끌려 단순히 줄거리의 전율을 느끼고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만 초점을 두는 등 단지 이야기를 "소유하고 있을 뿐" 이런다면 독서과정에서 무엇도 얻어갈 수가 없어. 그리고 이것은 소설뿐만 아니라 역사서 등의 비문학에서도 마찬가지야.
그렇다면 존재양식으로써 독서를 행하는 사람은 대체 뭐가 다른걸까? 그들은 아무리 저명한 저서라도 무가치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확신에 이룰 수 있으며 어쩌면 작가보다도 그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보고 있어.
이 부분을 읽고서 나뿐만 아니라 독갤의 많은 친구들도 소유방식으로 독서를 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
내 글을 읽고서 존재양식으로 독서를 대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어!
그래서 존재양식의 책과 아닌것은 어떻게 구분하며, 존재양식의 독서는 어떻게 하는거고, 존재양식의 독서를 하는 사람은 누구란거야?
일단 존재양식의 독서란 예술성이 존재하는,생산적인 독서를 가능하게 하는 도서라고 하네! 근데 본문에서도 존재양식의 독서를 어떻게 하는지는 명시돼있지는 않아... 단지 존재양식의 독서를 하는 사람은 비판적인 독서를 하고 단순히 줄거리를 읽는 게 아니라 독서를 통해서 그 책에 대해서 사고를 할 수 있는 독자를 말하는 것 같아!
어쩌면 존재방식의 독서를 하는 방법은 따로 정해져있지 않고 단지 독자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을 이룩하면 되는 것이거나 프롬도 모르는 것이거나 그런 거 같아!
결국 절대적 기준이 없고 다분히 자의적인 ㄱㅣ준이라는 얘기인데 그러면 개개인마다 다른거지. 누구는 라노벨 장르소설 읽고 예술성이 있고 생산적이라 여길 수 있는거 아닌가. 반지의제왕 실마릴리온이 예술성이 없는것도 아니자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나도 어느정도 의문을 가지고는 있긴 해.. 하지만 여기서 프롬이 명시하는 소유양식의 소설은 애초에 작가가 독자가 이 소설을 이야기를 소유할 것을 목적으로 썻기에 우리는 그것을 존재양식으로써 대할 수 없다는 것 같아 그 누구도 공허한 잡담을 듣고 존재양식으로 대할 수 없고 그것을 듣느니 차라리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는 것처럼!
그리고 사실 나도 100% 이해했다고 장담할 수도 없고 일상생활에서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을 소개하는 부분이 여러 갈래로 나눠져있고 각 갈래가 내용이 긴 편이 아니라 설명이 조금 부족할 수 있는 점 양해 부탁해 ㅜ
ㅇㅇ 걍 예시로 독서를 든거구나 ㄱㅅ
긴글 읽어줘서 고마워 ㅎ
잘읽었음... 난 소유양식은 소유를 지향하는 탐욕적인 삶의 방식이고 존재양식은 세계와 하나가 되는 약간 탁상공론적이고 추상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이해하고 있거든. 난 지금까지 책으로부터 정보든 영감이든 뭔가를 얻어가기 위해서 책을 읽어왔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책을 읽지 않아? 책 줄거리만 파악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을 지 몰라도 거기서 큰 영감이나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 소유양식적으로 책을 소비한 건 맞지만 큰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 존재양식이란 개념부터가 난 너무 추상적으로 받아들여져서 독서에 어떻게 대입을 해야할 지도 잘 모르겠네... 그리고 난 프롬 생각이랑 달리 못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좀 소유양식적으로 살아서 계급부터 향상시켜야한다고 생각해
오.. 정곡을 찔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책을 대충 한번 다시 읽어봤어 아무래도 현대의 사회에서는 프롬도 인정하듯이 소유 중심의 사회이고 소유만이 생존방식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존재양식이 필요없는 것 같아보이는 것 같아.(내 얉은 견해야)
아니다 위에 댓글은 무시하고 봐줘. 프롬이 형이 말한 의견에 대해서도 책에서 언급을 하고 있었네. 분명히 소유양식으로 책을 대하여 교양적 지식의 양이 훗날 가질 재산의 양에 비례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얻은 지식은 단순히 그에 한할 뿐 그것을 스스로 판가름하거나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것 같아.
음.. 그러니까 내가 자의적으로 해석해보면 소유양식으로서의 생활양식이 소유 양식으로서의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그에 비례하는 보상이 온다는건가? 나도 헷갈리네;;
그부분도 난 좀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지네 ㅋㅋ; 소유양식적 인간이라 어쩔 수 없는 거 같음..
그러게..ㅜ 좀 더 공부해봐야겠따
너무 이분법적이고 편협한 책이었음
그저 즐기기 위해 독서하는 것(위에서 예시를든 라노벨? 뭐장르) 도 훌륭한 동기중 하나인데 특정한 독서양식만 옳고 고귀하고 고결하다는 주장은 문제가 있어보임
뭐 프롬의 견해니까..ㅎ
존재양식과 소유양식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ㅋㅋ 프롬이 만든 말이라면 그 책에 정확한 뜻은 나오니?
프롬이 말하길 존재양식은 소유하거나 소유하려 탐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는,세계와 하나가 되는 실존양식을 의미한다고 하고 있어. 소유 양식은 그와 반대로 소유하거나 소유하려 탐내는 실존양식을 지칭하는것이겠지?
저기 내가 쓴글은 존재양식과 소유양식을 일상생활에 적용한 예에 초점을 두다 보니까 존재양식과 소유양식의 설명은 누락했는데 아무튼 저렇게 말하고 있어
그럼 단순히 지식 습득을 위해 무비판적으로 책의 내용을 흡수해는것도 소유양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