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따뜻하지도 않고 서늘하지도 않으며, 궁음도 아니고 상음도 아니다. 들어서 들을 수 없고 보아서 드러나지 않으며 몸으로 느껴서 알 수 없고 맛을 알고자해도 맛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 물체의 이루어진 실질은 혼연히 뒤섞여진 자체이며, 그 드러나는 모습(象)은 형체가 없고, 음은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으며, 맛은 드러남이 없다. 그러므로 만물의 종주가 되어 천지를 통괄하며 (만물이) 이를 경유하지 않음이 없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따뜻하면 서늘할 수 없고, 궁음이면 상음일 수 없다. 형체는 반드시 구분되는 바가 있으며, 소리는 반드시 귀속되는 곳이 있다. 그러므로 형상(모습)을 드러내어 형체를 갖추는 것은 대상이 아니요, (어떤) 음을 드러내어 소리가 나는 것은 대음이 아니다.
이런 까닭에 감탄하는 것으로 (無의) 이 아름다움을 다 (표현) 할 수 없고, 읊어서는 이 광막함에 창달할 수 없다. 이름 붙여서 온당할 수 없고, 칭하여서는 다할 수 없다. 이름은 반드시 구분하는 바가 있고, 칭함은 반드시 (의식意識의) 말미암는 바가 있다. 구분하는 것이 있으면 함께 아우르지 못하게 되고, (의식이) 말미암는 바가 있으면 (지극한 본성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백성을 함께) 아우르지 못하면 진실眞實함이 크게 다르고, (마음의 지극함을) 다하지 못하면 (근본을) 분별하여 이를 수가 없다. 이는 연역하여(시원을 거슬러 미루어) 명백히 알 수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동굴 바깥의 찬란한 태양이라면 왕필의 무는 그 동굴 깊숙히 깔린 어둠이 아닐까. 언어와 체계 바깥의 절대자란 아이디어는 넘나 매력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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