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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나는 도끼의 능력은 인정하되 그의 책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능력을 인정한다한 것은 까르마조프를 읽으며 대심문관에서 기묘한 느낌을 받고


변론 부분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신이 내린 말빨!


그 이후에 죄와 벌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쩐지 주인공을 압박하던 형사놈이었는지 검사놈이었는지 나오는 장면만 기억나고


나머진 도무지 기억이 안나게 되었다.


여튼, 도끼에 대한 나의 인상은 이랬다. 


'한 순간의 경악을 위해 지리지리지리한 내용을 지리지리지리하게 읽어야 하는 작가' 


근데 안 읽을 순 없고.


그런데 가장 좋다는 장편 두 권을 읽고보니 도무지 다른 책은 잡히지 않아서, 


이제서야 집에 썩어가던 백치를 마침 시간이 썩어가던 집어서 읽게 되었다.




1.


걱정과는 달리 도끼판 연애소설과 같은 내용이라서, 나는 무척 재미있게 읽은 편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었다.


첫째, 나스타시아(이름이 정확하지 않네, 그래도 비슷한 이름이 없으니 독갤럼들이 헷갈리진 않겠지)가 마지막까지 왜 미친 행동만 일삼았는지를 모르겠고


둘째,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많은 잡다한 이야기를 하고 지지부진하게 끝나는 이유를 모르겠고


셋째, 마지막에 미쉬낀은 왜 백치로 돌아가는지를 모르겠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1000페이지 넘게 쓴거 같은데 왜 쓴 건지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그래서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했는데, 미쉬낀과 나스타시아를 짚고 넘어가니 어느 정도 틀이 잡히었다.


미쉬낀은, 인간화한 예수라고 할 수 있겠다. 강조할 점은, 인간이지만- 예수라는 것이다.


성자라고 부르기에 적당했던 작품 초기에 그는 성욕이 없었으나, 점차 그것을 가지게 됨으로써 그는 타인들의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


로고진은 물론이거니와 결혼으로 인해 집중되는 그에 대한 이목, 그것은 정말 그를 도구로 보는 과정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재밌는 점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 또한 남을 의심하기 시작함으로써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사고들을,


마치 본인이 초래하고 싶은 것마냥 발화시키고 만다. 가령, 로고진의 시선을 의식했다면 알아서 몸을 사릴 일이지 그것을 자꾸 확인하려고 듦으로써 로고진에게 사건을 일으킬 빌미를 준다던가.


사교계의 고관대작들 사이에서 알아서 적당히 몸을 사리면 될 일인 것을, 본인이 자신이 지나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그들 앞에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던가 하는 점이다.


물론 둘 모두 간질발작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간질은, 그에게 악이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장치일 것이다. 


여기서 악이란 의심과 오만이라 할 것이다. 


인간은 모두 다 가지고 있으나 미쉬낀은 작중에서 그것이 생겨나게 된다.



3.


따라서 작중 인물들이 미쉬낀에게 기대하는 바는 인간에게 기대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나스타시아는 미쉬낀에게 대놓고 '천사'라고 표현했으며, 천사로 취급했다.


천사는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할 수 있고, 나스타시아는 천사가 천사로 남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천사를 위하려 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구원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나스타시아가 미쉬낀을 사랑하냐고? 사랑이란 단어는 너무 정의내리기 어렵다, 다만 나스타시아는 확실히 미쉬낀에게 집착한다고 할 수 있다.


작중 그녀가 하는 거의 모든 행동은 미쉬낀과의 무의식적인 술래잡기라 할 수 있다. 숨을려고 하면 못숨을리가 있나.


찾아올 걸 기대하니까 애매하게 숨는거지. 헤어지자고 하면서 애매하게 여지주는 거랑 마찬가지.


말하자면 나스타시아는 자신의 의식상 '미쉬낀을 위함'과 '자신을 위함' 사이에서 싸우는 중인 것이다.


여기서 아글라야가 나타난다.




4.


아글라야는 나스타시아의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스타시아가 부잣집에서 태어난 버전이랄까.


작중에서 몇번이나 '이 아가씨가 최고'라고 공인받은 아가씨이고 현명하다.


역시, 미쉬낀과 알콩달콩하게 밀당을 한다.


근데 미쉬낀은 여자 경험도 없거니와, 어떤 이기심 같은 것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라


그 밀당을 못알아차리고 있으니 아글라야 엄마(이름까먹음)가 한숨쉬면서 아글라야한테 배달해주고 그러는 거.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한다는 의미는 '자신을 위해서' 상대방 옆에 있을라 하는거고


그래서 상대방이 튈려고 하면 자기가 위협받는 느낌이 들어서 후다닥 뛰어가는건데


이기심이 없으니, 상대방이 간다 그러면 가는구나 하는거.


뭐 여튼, 미쉬낀과 연애각 빡세게 잡은 건 정말로 아글라야 하나뿐이었다.


나스타시아는, 미쉬낀의 순수함을 보고 도망가려 했고, 아글라야는 미쉬낀의 순수함을 보고 잡으려 했고.



5.


문제가 있다면, 나스타시아도 도망가려하면서도 안가려했고


아글라야도 잡으려 하면서도 잡아주길 바랬기 때문에


두 여자가 서로 만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전설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날것의 공방 끝에, 나스타시아가 마침내 비장의 한수를 던지고


공작은 기절한 척 하려드는 나스타시아를 선택하게 된다.


왜냐? 걔가 더 아프니까.


여기서 나스타시아의 승부수가 기가 막히다.


아글라야를 쫓아가면 내가 생각하던 천사가 아닐테니 가라고 하는데,


나스타시아를 선택하면 천사에 흠이 생긴다는 것이다.


기절한건지, 기절한 척인건지 애매하지만 그 이후에도 나스타시아는 도망갈 수 있었으므로, 아마 잡아달라는 이야기에 가까웠을 것이다.




6.


그러나 나스타시아는 결국 결혼식 당일에 도망가게 된다.


나스타시아가 '왜' 도망갔는지 생각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일 것이다.


천사에게 흠을 주기 싫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작품을 자신이 망치려고 한건지. 


이타심에 의거한 것인지, 이기심에 의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나는 일단 이기심이라고 생각해보려 한다.


문제는 본인때문에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로고진을 다시 한번 이용했다는 점이다.


결국 그녀는 로고진에 의해 죽게 되고, 로고진은 미쉬낀을 찾아온다.


이쯤해서, 미쉬낀은 다시 '의심'하고 정신나간 로고진을 보살피며 본인의 정신이 나간다.


작중 미쉬낀과 결부된 모든 사람들의 이기심(아이들 제외), 작품이 망가지길 원치 않았던 나스타시아의 이기심과, 살인했음에도 용서받길 원하는 로고진의 이기심과 더불어 마침내 미쉬낀 속에서 마각을 드러낸 악이 결부되어, 신의 기적(백치에서 일반인으로)을 경험한 미쉬낀은 기적 이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7.


따라서 또 다른 나스타시아인 아글라야도 도끼 세계관에서 최악의 형벌이라 할 수 있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작중에서 가장 죄를 안지은 것처럼 나오지만, 심리적으로 따져보면 나쁜년이라는 것이다.


첫째, 오직 자신의 목적(자신만을 위해주는 남자 남편 만들기)을 위해 미쉬낀을 이용했고,


둘째, 나스타시아는 자기 희생이라도 있었고, 그것을 하기 위해 본인의 이기심과 싸웠지만, 아글라얀 뭐..한게 없다는 것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조금은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8.


그렇다면 많은 등장인물의 의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악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악의 본질은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다양한 인간군상이 나오지만 모두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미쉬낀을 이용하고 있고, 미쉬낀에게 도움받고 다시 미쉬낀을 이용한다.


평범한 악 중에서 그나마 괜찮다는 자는 가브리엘 정도?(이름이 맞나 모르겠음 이볼긴 장군 장남) 그러나 결코 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이들(이볼긴 차남, 레베제프 딸)과 공작부인(애같음)은 '이기심의 때가 묻지 않은 아이거나 이기심을 최소한도로 억누른 어른'의 키워드로 분류되어야 특이케이스라면


남는 건




9.


레베제프와 예브게니다.


이 둘만은 이질적인 게, 레베제프는 고해성사와 작은 악행을 자꾸만 기획하는 소악당이고


예브게니는 작중 거의 유이하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 


도끼의 책을 읽다보면 사상을 전파하고 있다는, 말하자면 종교서적과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 때가 있는데


모든 일은 체험을 해봐야 더 좋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면,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ㅉㅉ 나는 저렇게 이기적이지 않아, 미쉬낀 가엾누'할 때


'내가 '쟤처럼은' 안 살 것이다.'라는 말을 되뇌이게 하는 캐릭터가 바로 레베제프이다.


말하자면, 사실 레베제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갑남을녀 중 한명이며,


독자는 레베제프를 신명나게 까놓고, 어느 순간 선과 악을 선택해야 되는 상황에서 본인이 레베제프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침으로써


본인의 악함을 깨우치기를 원하는


따라서, 도끼의 무지몽매한 인간 일깨우는 계몽적 장치로서의 인물이라 생각한다.


반면 예브게니같은 경우는 해석이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이 정도처럼만 살아도 좋다.'거나 '까임의 이중적 장치' 또는 시간에 쫓겨 소설쓰던 도끼놈에 의해 탄생한 편의적 캐릭터,


이 중에서 마지막 하나는 좀 재미가 없으니까 날리면


이중트랩이거나 '이정도쯤은 살자' 캐릭터인데


이중트랩까진 가지 않았을 거 같다. 인간 세상이 이중트랩까지 갈 정도로 선했으면 이런 소설 안썼을거 같아서.


그래서 아마 '이정도쯤은 살자' 캐릭터, 작가 자신이 백치 세계관에 있었으면


'나라면 이정도즘 행동했을 듯'하고 만든 캐릭터로 보인다.




10.


도끼 세계관을 파악하기 가장 쉬운 거 같아서, 오히려 이 책부터 읽고 죄와 벌이니 까르마조프 형제들 들어가는게 낫지 않나 싶다.


연애소설같아서 재밌었고, 수많은 악과 강대한 악에 무너진 미쉬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쉬낀을 기억하고 찾아오는 이들을 통해서


인간을 비관하며 동시에 낙관할 줄 아는 도끼의 내공이 돋보이는 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