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망자다.
나는 태어남과 동시에
스스로 안에 갇혀버렸다,
하지만 난 가까스로 달아나고 있다.
만일 사람들이
같은 곳에 존재하는 것에 염증을 느낀다면,
어째서 그들은
동일한 자아로 존재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지 않을까?
내 영혼은 나를 쫓아 오지만,
계속해서 도주하며
간절히 기도한다
나를 절대 찾지 못하기를.
완전한 일체는 감옥이다.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도망자로 살아갈 것이지만
진실로 참되게 살아가리라.
-1931년 4월 5일
내가 쓰는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니다 ...
나는 누구에게 빚을 지는 것인가?
나는 누구의 예언이 되기 위해 태어났는가?
내가 가진 것이 나의 것이라는 생각에
얼마나 오랫동안 속아왔는가?
누가 내게 이것을 주었는가?
어떤 경우든 간에, 내 운명이
내 안에 살아가는 다른 이의 죽음이라면,
표면적인 삶의
환상에 의해 존재하던,
그러한 나는
나라는 존재의 흙먼지 속에서
끌어올려 준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을
무척 감사히 여길 것이다 -
이 들여 올려진 먼지,
나는 누구를 위한 상징인가.
-1932년 11월 9일
모든 것이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심지어 나를 피곤하게 하지 않는 것들도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그렇게 내 기쁨은 내 고통처럼 고통스럽다.
내가 한 명의 아이일 수만 있다면, 농가의 연못에 종이배를 접어 띄울 것이다. 연못에 있는 농부들의 포도덩굴 정자에서. 풀로 엮어 만든 정자의 지붕은 햇빛과 초록빛 그늘의 줄무늬로 얕은 연못의 검은 수면에 체스판을 형성한다.
(...)
이 자동차의 운전수가 아님을, 이 열차의 기관사가 아님을, 얼마나 자주 나는 괴로워했는가! 가상으로 만들어낸 평범한 다른 인간이 아님을 괴로워하면서 단지 내 삶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의 삶에 황홀하게 사로잡힌다. 단지 존재의 삶이 내 의지력과 나를 관통한다!
만약 내가 그들 중의 하나라면 삶을 이 정도로 끔찍하게 여기지 않으리라. 삶 전체를 상상하는 것이 내 생각의 어깨를 이 정도로 무겁게 누르지는 않으리라.
(...)
누군가 내 삶으로 나를 때리고 있는 것 같다.
- 베르난두 소아레스 / 불안의 서
페소아의 수많은 이명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되는 두 시와 불안의 서의 일부분을 가져왔다.
불안의 서는 배수아 역을 그냥 옮긴거라 문제 없는데,
시는 내가 영역본을 중역한거라 읽기 좀 껄끄러울 수 있음 ㅋ
아무튼 좋다.
굿
누군가 내 삶으로 나를 때리고 있는 것 같다. 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