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5시간, 홍콩의 밤안개가 짙었다. 착륙하는 중에 창밖을 보니, 밤안개가 어찌나 자욱한지 바닷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느낌이다. 밤의 공항은 외롭고 어둡다.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북적일테지만, 그가 딱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서둘러 떠나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무엇이든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하니까.
떠밀리듯 도착한 홍콩은 항구도시 특유의 습하고 소금기 진한 공기를 뿜는다. 밖에 좀만 더 서있다간 통조림 속 꽁치마냥 푹 절여질 것 같아, 택시를 불러 세웠다. 소금기에 녹슨 듯, 붉은 일본제 택시. 택시기사는 조수석에 앉아 시동을 건다. 그리고 왕가위 영화 속 한 남녀는 이곳에서 손을 잡았다. 택시 안에서 손을 잡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당장 나만 해도 내 옆에 누가 있었다면 그의 손을 잡았을 지 모른다. 아쉬운 김에 택시기사의 손을 잡아볼까. 하지만 그는 양손으로 운전하는 타입이다. 그런 그도 기분전환 삼아 드라이빙을 할 때는 - 택시기사가 기분전환으로 드라이빙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 창틀에 한손을 얹고는 나머지 손만 사용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의 손을 잡는 것은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그에겐 운전대가 너무 소중하다. 그가 나에게 손을 내미는 건 택시요금을 거둘때 뿐 일테다. 그러고 보면 두사람이 택시 안에서 손을 잡는 것은, 정말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손이 비는 두 사람이 한 택시에 타 서로의 손을 꽉 쥐는 일은 셀 수 없는 평범을 지나서야 일어나는 사건일 테니까.
항구의 빛은 밤늦게까지 쉴 틈 없고, 창밖의 비는 별빛마냥 쏟아내린다. 저 빛 하나하나는 저마다의 사정을 소리높여 비춘다. 유감인 점은 누구 하나 그 사정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광동어를 못하니까 그들의 사정을 들어봤자 이해를 못한다. 밑에다가 자막이라도 달아 놓으시지. 듣는 시늉이라도 해보게. 게다가 그런 사정들은 그들에게만 중요하지 남들에게는 뻔한 일들이다. 토끼같은 자식들 키우느라 허리가 다 굽었다던지, 아들내미 한놈이 말썽을 부린다던지, 아니면 시골구석을 벗어나 성공하려고 홍콩으로 상경했다던지 뭐 그런 뻔한 사정들이 쌓여 있겠지. 어디 공상 소설의 주인공이 아닌 이상 뻔하지 않은 사정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 외계인의 침공이나 지구 종말이 걱정돼서 밤샘근무를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내가 홍콩에 오게 된 사정도 특별할 건 없다. 도망쳐야 했다. 모든 서울에서.
빳빳했던 홍콩달러는 택시기사의 손을 거치자 너절하고 눅눅해졌다. 수많은 조각으로 갈라졌고, 마지막으로 짤랑. 계산은 끝났고, 택시는 빗속으로 묽게 가라앉는다. 택시기사가 안경을 꼈던가. 이제와서 떠올려봐야 잘 모르겠지만, 빗속에서 운전을 하려면 눈이 좋은 편일 것이다. 아니, 딱히 눈이 좋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비 때문에 한치 앞도 안보이는 상황이라면 눈이 보이냐 안 보이냐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뒤랑 앞은 어차피 보이지 않고, 택시기사는 그저 엑셀을 밟는거지. 그러다 보면 결과는 둘 중 하나다. 비가 그치거나, 사고가 나거나. 인천공항에서부터 6시간이 지났다. 조각난 홍콩달러를 왼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 쪽이 내 심장하고 가까우니까.
밤의 너츠포드 테라스는 북적인다. 적어도 이 곳에서만큼은 홍콩 특유의 소금기가 안줏거리 정도로 느껴지는 듯하다. 음악이 어찌나 쿵쿵 대는지, 심장도 그에 맞춰 뛰는 듯 하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골목 초입에서 두번째 가게로 들어갔다. 첫번째는 너무 노골적이니까. 가게는 휴양지 느낌으로 꾸며져있었다. 안에 들어오니 음악이 방금보다 더 울렸고, 메뉴판을 보니 한국보다 술이 쌌다. 첫 잔은 맨하탄. 이름이 마음에 들어 골랐다. 위스키 베이스라 그런지 끝맛이 굉장히 독하다. 곁들여 나온 체리를 먹으니 그래도 쓴맛은 많이 가셨다. 그 다음 부터는 그냥 진토닉만 시켜서 마셨다. 내 인생은 맨하탄보다는 진토닉이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달달한 인생이 좋다. 적어도 소주 같은 인생은 살지 말아야지. 처음부터 끝까지 썼으면서 그래도 끝맛은 달았다는 소리를 하는 건 비참할테니 말이다. 취기가 오르니 물 속에 들어온 것 같다. 속은 둥둥, 귀는 웅웅. 몸은 웬지 휘적되게 된다. 공중에 뜬 것처럼. 정말이지, 술을 혼자 마시는 건 공중그네에서 곡예를 부리는 것이다. 어느새 평소에는 닿을 수 없는 높이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기분은 뜨고, 시야는 넓어진다. 그 때, 손을 뻗어 건너편의 그네를 잡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바닥에 곤두박질 치는 거다. 쿵하고. 그녀를 봤을 때도 그랬다. 그때 손을 뻗었어야 했다. 늘상 그래왔듯이 나는 손을 뻗지 못했다. 그리고 쿵.
쿵쿵, 쿵-쿵-, 쿵--- 살다보면 심장이 느리게 뛸때가 있다. 그럴때면 나는 1969년 7월 20일을 떠올린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고 우주인들은 얼마나 신이 났던지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의 높이로 방방 뛰어다녔던 그날. 어느 순간, 달에 도착한 듯 사람들은 둥둥 떠다닌다. 버스를 뒤쫓아가던 저 남자의 두다리는 땅에 닿을줄을 모른다. 이를테면 그들은 지구의 중력을, 나는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는 것이다. 돌이켜 보니 2016년 6월 2일 6시 59분 51초, 그때도 그랬다. 어떠한 예정도 없이 다가온, 억겁의 세월을 유영하던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달에 도착했음을.
“당신, 뭘 그렇게 멍 때리고 있어요?”
그녀의 첫마디였다.
‘당신, 날 사랑하게 될거야. 두고 보라고.’
그리고 이건 나의 희망사항이었다. 그 대신 난 의미없는 몇마디 주절거리고는, 지구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시간이 멈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단지,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뛰는 것 뿐이다.
오늘이 몇일인지는 몰라도 달은 확실히 초생달이었다. 영화에서 보면 저기에 누가 걸터 앉아서 낚시도 하고 그러던데 오늘은 영 낚시할 기분이 아니었나 보다. 나또한 5시간의 비행이 그저 좋은 건 아니었던지 더 걸어다닐 기운도 없다. 숙소는 미리 예약을 해뒀다. '미리'라고 해봐야 공항에서 대충 찾아서 한거긴 하지만. 걸어가며 주인장에게 연락해보니 열쇠는 1층 우편함에 있으니 안전히 들어가란다. 터덜터덜 발소리가 박자를 맞춰주기 때문일까. 술이 취하면 노래가 절로 난다. 살짝 미친놈 처럼 보이면 어떤가. 달빛에 취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나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영화 속 한 장면이라 한다면, 노래를 흥얼거리며 주인공 옆을 스치는 행인 A. 우편함은 성냥갑 마냥 다닥다닥 뭉쳐있다. 그 틈을 비집어 열쇠를 집고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호수는 501호, 쇠창살문은 미닫이로 돼있다. 드르륵, 이번엔 여닫이 문이다. 덜컥, 한 여자가 거실벽에 걸터앉아 자고 있다. 정체불명의 상표가 달린 백팩을 신주단지 모시듯 꼭 끌어안고 있다. 쾅 - 이렇게 세게 닫을 생각은 없었는데 - 문소리에 그녀는 눈을 뜬다. 벌떡 일어나서는 내 옆을 조용히 흘러 나간다. 아무 말도 없이 흘러가는 모습이 섬뜩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려다가, 피곤해서 침대에 누웠다.
오전, 그러나 오전이라 하기에는 바삐 사는 문명인들에게 부끄러운 시간에 일어났다. 맴맴, 매미들도 더운가보다. 더위를 먹은게 아니면 저렇게 시끄럽게 굴진 않을텐데.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술에 취해 흥얼거렸던 노래도 생각난다. '서울의 달', 홍콩이나 서울이나 달은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낮이 되니 더 확실해지는 것은, 사람사는 곳은 정말 다를 게 없다는 거다. 바쁜 사람은 바쁘고, 한가한 사람은 한가하고, 사랑할 사람은 사랑을 한다. 참 슬픈 일이다. 도망자는 낙원을 그리지, 고향을 그리지 않는다. 남부에서 북부로 도망친 흑인 노예들도 그랬을 것이다. 꿈에 그리던 자유는 잠시고, 그들은 언젠가 깨닫는다. 달라진 것은 평균 기온 뿐이란 것을. 나도 이제 깨닫는다. 달라진 것은 공기뿐이다. 홍콩의 공기엔 간장 냄새가 난다.
왕가위는 홍콩을 통조림에 담았다. 그 속에 든 것이 정어리인지 파인애플인지는 더 이상 중요치 않다. 왕가위는 담았고, 우리는 상상한다. 그래서 나는 말할 수 있다. 왕가위의 홍콩은 영원하다고. 파인애플 통조림을 따지 않을거면 그 속의 정어리가 썩어 문드러지건 알 바 없는 것 아닌가. 겉 포장지를 보면서 영원한 파인애플을 상상하는걸로 충분하지. 그렇게 왕가위의 홍콩은 영원하고, 1994년의 홍콩은 지난지 오래다. 이 곳 소호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 쪼그려 앉았던 그녀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늘 하던대로 남의 집에 몰래 들락낙락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갔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아직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 1994년 그 곳에. 그 후로도 에스컬레이터는 계속 움직였다.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 마냥 계속 돌았다. 위로 가는 듯 어느새 아래로, 끝에 닿으면 다시, 하루를 되감고 재생한다. 그렇게 에스컬레이터는 영원하다. 뒷걸음질 치며 지는 해를 마흔 네번 보듯, 끝을 끝없이 마주하는 어린왕자.
유명하다고 소문난 에그타르트를 하나 집어들고는 근처 카페로 들어섰다. 카페는 딱히 유명한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당장 내리는 비를 피하려면 거기가 제격이었다. 비를 맞는 건 질색이다. 우산을 쓴다해도 신발이나 바지 밑단에 물이 튀어 버리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쏟아질 때는 도망칠 수밖에 없다. 참 웃긴게 일단 피할 곳을 찾으면 비만큼 눈이 가는 게 없다. 지금도 그렇다. 비오는 카페는 너무 좋다. 투두둑 - 비들의 죽음에 내 마음은 초연해지고, 기운이 다 빠진 빗덩이들은 유리창에 축 늘어진다. 멍하니 바라보던 나도 어느샌가 처지는 듯 졸리다. 커피를 마시는데 왜 졸릴까. 별나다 싶어 커피잔을 들여다보면, 벌써 다 마셨구나. 이 커피는 웬지 영원할 것 같았는데. 하긴, 아무리 마셔도 끝이 없는 커피가 있다면 그것도 골치 아픈 일이다. 끝이 없다고 맘놓고 퍼마시다 보면, 결국 커피는 검고 따뜻한 물이 되고 만다. 사람이란 게 참 거창한 듯 싶지만, 결국은 헛웃음 나올 정도로 미세한 화학작용에 지배받는 존재다. 몇백 mg도 안되는 카페인에 심장이 미친 듯 뛰다가도, 어느샌가 무뎌진 자신을 발견하는 그런 한심한 존재.
단어는 경험으로 한정된다. 수많은 경험 중 특별한 경험은 역사가 되고, 그 역사는 하나의 단어로 응축된다. 예를 들면, 이제부터 나의 '커피'에는, 비오는 오늘의 소호거리가 에스프레소 투샷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생기는 나의 단어들은 당신의 단어와 다르다. 우리의 삶이 다르듯이. 그런 측면에서 사랑은 의미 있는 것이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같은 단어를 짓는 것이니까. 그들을 지나치는 수많은 평범이 사건이 되도록 꽉 쥐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렇기에 사랑은 끝내 서러운 것이다. 그렇게 꽉 쥐었던 단어는 언젠가 다른 경험으로 덧칠되고 마니까. 당신의 서울은 이어지고 또 덧칠되지만, 나의 서울은 그대로 멈춰있다. 통조림에 잠시 담아두기로 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딸 수는 있지만, 2인분이라 혼자 처리하기는 조금 힘들다.
그러고보면 그 때는 고춧가루였다. 그 카페의 커피콩에서는 고춧가루같이 알싸한 냄새가 났다. 신기했던 건 정작 커피를 마시면 부드러운 맛이 났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그게 얼마나 신기했던지, 세 달 동안 거의 하루도 안빼먹고 그 곳을 갔었다. 가서는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책을 읽었다. 영화나 책도 질릴때 쯤엔 창밖의 행인을 보거나 카페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는 가게를 나서는 거다. 하루에 오천원,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꽤나 경제적인 방법이었다.
“당신, 뭘 그렇게 멍 때리고 있어요?”
언제나 그렇듯 창 밖을 보던 - 아니 보는 척 하던 - 나에게, 그녀가 한마디했고, 그제서야 그녀의 평범은 나의 사건이 되었다. 그것들은 나의 단어가 되었고, 나는 그 단어들을 어떻게든 한 곳에 담아보려고 했다. 그 단어들은 너무도 - 사실은 지금도 - 생생했지만, 그것을 엮는 것은 매우 더딘 일이었다. 그들 자체로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떤 형용사나 동사를 들이대는 것은 그들을 저 하늘에서 땅 끝으로 끌어내리는 듯 했다. '슬프다'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내 슬픔은 모두의 슬픔이 되어 흩어지곤 했다. 백지장은 맞들면 나을지 몰라도, 슬픔은 맞드는 순간 그 무게를 잊게 되니까. 그렇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을 쌓고 또 무너뜨렸다. 그러면서 시간은 흘렀다. 울렁울렁, 파도처럼.
어느샌가 글은 쉽게 엮였고, 나는 내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괴로움은 사라지고, 숨쉬듯 편한 일상이 되었다. 햇빛은 밝고, 바람은 선선하다. 그대는 아름답고, 나는 행복하다. 그때는 몰랐다. 모두가 이해하는 단어는 그 누구의 단어도 아님을, 사랑은 일상이 될 수 없음을. 어쩌면, 진작에 알았을지도 모른다. 늘 그랬듯 도망쳐 버린거겠지. 어떤 단어들은 류마티스 같다. 가슴 어딘가에 깊이 박혀 무시로 쿡쿡 찌른다. 그럴 때면 비가 오려나 보다 하고 도망쳐야 한다. 어떤 준비도 없이 맞는 비는 질색이니까. 그렇게 몇번 시달리다 보면 움집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뻔한 단어들로 내 마음을 덮는 거다. 아린 단어들이 비집고 나오지 못하도록. 그렇게 나는 행복했다. 비는 자주 왔지만, 나만의 움집이 있었으니까.
사람의 몸에는 핏물이 흐른다. 그렇기에 이런 잉크뭉치는 사람의 몸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다. 한 사람을 위한 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글을 쓰며 다듬는 건 나의 단어다. 그건 상대방과 함께 얽는 단어가 아니다. 그런 글이 마음을 흔들길 바라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그렇다면 결국 자기 만족이다. 단어들이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통조림에 담는 유약한 감상. 그렇게 방부처리된 단어는 그 누구의 맘도 흔들지 못한다. 흐르지 않는 잉크가 곧잘 굳어버리고 말듯이. 이미 굳어버린 후회와 가정을 놓지 못하는 자기 연민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흐르는 것이다. 사방에 피칠갑하듯 박동하는 저 핏덩어리가 사람을 움직인다. 그렇기에 나는 언젠가 이 펜을 놓고, 시퍼런 칼을 집어야한다. 그를 향하여 박동하는, 이 핏덩이를 도려내 보여야 한다.
"가짜 로렉스, 진짜 같아요."
대로에 접한 청킹맨션은 잡상인들로 득실하다. 내가 한국인인건 어찌 알고 바로 한국말이 나올까. 이렇게 선진적인 고객 맞춤형 서비스는 늘 환영이다. 그치만 나로 말하자면 진짜 롤렉스를 차도 가짜를 왜 차고 다니냐는 얘길 들을 놈이기에 들끓는 소비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진짜 같은 가짜. 여기 청킹맨션만 해도 그렇다. 정면외벽만 보면 매끄럽고 반짝이는게 굉장해 보인다. 근데 그 속은 달라진 게 없다. 속은 여전히 진짜 1994년 중경삼림이다. 뭐가 되고 싶었는지는 몰라도, 바꿔 끼운 겉껍데기는 그 속을 가짜로 만들어 버렸다. 저 가짜 롤렉스도 마찬가지다. 분침은 하루에 스물네번, 시침은 하루에 두번 회전하는, 진짜 시계인데, 상표 쪼가리 하나 때문에 가짜라는 소리를 듣는 신세가 돼버린거다. 진짜로 살다보면 팔리지 않는 시대인가보다. 어차피 다들 가짜로 산다고 하면, 나 혼자 진짜로 산다는게 별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겉껍데기가 아니라 속을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더더욱.
홍콩을 걷다 보면, 다른 도시를 2배속으로 걷는 것 같다. 방금 전까지는 축축한 수산물 시장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명품 상점이 즐비한 중심가가 나온다. 거기서 좀만 더 가면, 이번에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몰려있는 골목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온다. 단 몇 발자국 차이로 세상이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일생속에서 그 몇 발자국을 벗어나지 못한다. 늘 걷던 길을 걷고, 늘상 먹던 것을 먹는다. 그렇게 반복재생한다. 테이프가 끊어지거나 늘어질 때까지. 여행은 일상이라는 모래주머니에 눌려 딛지 못했던, 그 몇걸음을 걷는 것이다. 한걸음 딛을 때, 당신의 지구는 변한다. 저 골목길은 당신의 단어로 가득 찬다. 그러면, 거기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더 이상 중요치 않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그저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 그제서야 여행이 된다.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왕복티켓. 출발지는 홍콩, 목적지는 서울. 귀국일은 미정으로. 7시간이 지났고, 삼성역 도심공항에 내렸다. 밤이었지만 시내여서 그런지 복작거렸다. 서울의 공기엔 소금기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게 쉽게 변한다. 당신의 서울은 얼마나 덧칠 됐을까. 내 서울도 조만간 덧칠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필사적으로 도망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마지못해라도 인정해야한다. 덧칠 된 서울을. 속은 바뀐지 오랜데 겉으로만 변하지 않은 척 애쓰는 건 가짜가 되는거니까. 덧칠되기 전에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지를 구하러 서점 문구칸으로 갔다. 장식이 너무 많으면 거추장스러울것 같아 흰색 바탕에 검은줄이 그어진 걸로 샀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키고, 흰 편지지를 검은단어들로 메웠다. 통조림에 막연하게 담겨있던 나의, 우리의 서울을 쏟아부었다. 다섯장을 채웠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그냥 아메리카노가 됐다. 손이 얼마나 얼얼했던지 괜히 눈물이 날 뻔했다. 다섯 장을 곱게 접어 편지봉투에 넣고 주소를 적었다. 발신지는 2017년 서울, 수취인은 불명. 봉투는 바지 왼 주머니에 구겨지지 않게 조심히 넣었다.
걷다보면 어쩐지 맥주가 땡기는 밤이다. 눈에 보이는 자그마한 맥주집으로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니, 맥주 이름이 '첫사랑'이다. IPA 맥주였다. 향은 좋지만 끝맛은 씁쓸하지. 계속 눈에 밟혀서 한잔 시켰다. 첫사랑.
"첫사랑, 맞으시죠? 잔에 넣어 드릴까요, 아니면 캔에 넣어드릴까요?"
"캔에 담아주세요."
첫사랑이 담긴 캔을 받았다. 따지만 않으면 흘릴 일도 없을 것이다.
"저 정말 죄송한데. 혹시 이것도 담을 수 있을까요?"
3000원을 내고 편지를 캔에 담았다. 유통기한은 언제일까. 글쎄, 따지만 않으면 잊을 일은 없겠지.
아직 습작기인것 같네요 처음 글을 쓰는 사람 특유의 감정과잉이 보입니다. 단지 감정만을 잡으려는 의미없는 문장이 도처에 있습니다. '밑에다가 자막이라도 달아 놓으시지. 듣는 시늉이라도 해보게. ' 나 ' '슬프다'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내 슬픔은 모두의 슬픔이 되어 흩어지곤 했다.'라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사유는 시늉만 그럴듯해 보이나 사람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져 주는데에는 번번이 실패입니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하지만 다 읽지도 못하고 뭘 그렇게 멍 때리고 있냐는 대사부터 쭉 내렸습니다.
ㄴㄴ감사합니다. 실연?하고 쓴 글이라 더 과잉일 거라 생각은 드네요. 제가 쓰면서도 좀 허세끼가 있지않나라는생각은 들었는데 부분부분 집어주셔서 감사합니당. ㄴ바쁜시간 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합니당~ - dc App
글은 괜찮은데, 비문이 좀 산재돼 있어 읽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습작이니만큼 그리 혹독히 평가할 필요는 없겠네요. 문체는 나쁘지 않은데, 그 문체를 갖고 나름대로 유희적으로 이끌어 보시는 편이 어떤가요?
실망하지말고 계속써보세요 가능성이 보여요
ㄴㄴ 감사합니다. 이 문체로 유희적으로 이끈다 하심은 어떤 의미일까요? 내용이 좀 더 가벼워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ㄴ감사합니다. 더 노력할게요...ㅎㅎ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