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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0.


 이전까지의 한강의 책은 개인개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도의 테마로 요약될 수 있다. <채식주의자>까지가 전자, 그 이후의 작품들은 후자에 속한다


 <희랍어 시간>은 안 읽어봤지만, <바람이 분다, 가라>의 구체적인 버전이라고 <>의 해설집에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희랍어 시간>도 크게 저 후자의 주제의식에서 벗어나진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 다음의 단계는, 우리가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면, 타인을 긍정할 수 있고, 당연히 소통일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작품 초기부터 끊음없이 본인과 다른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혀오는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는 개뿔이고, 이번에는 집단개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루었다. 사회의 비주류가 된다는 것은 다수의 도덕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라면


 민주주의에서 독재의 저항자가 된다는 것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게 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기에, 같은 집단에 의한 것이라도 그 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혈통으로 권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 동의에 의해서 권위를 얻는 것이기에, 매우 역겨운 조리돌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


 ‘개인을 극복해내는 의지를 다진 한강은 집단의 폭력에 다시 저항하고, 저항하려 한다. 하지만 개인과는 격이 다른 폭력의 의지이기에 작중에서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 주겠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라는 표현도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작중에서 나오듯이 그들은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고 남았다.’ 그들의 양심에 의거하여서. 양심은 그것을 따르지 아니하면 본인의 존재를 영위할 수 없는 것이란 뜻이다.(서양의 양심 개념, 동양의 양심 개념은 다르다.) 


 그리하여 남은 자들은 지독한 고문 끝에 양심스스로거부당하게 만든, 따라서 본인의 존재를 영위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타자에 의한 완벽한 존재의 부정


 그들을 복권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그들이 바라는 것은 타자에 의해서 그들이 희생자가 되지 않는 것임은 분명하다.

 


2.


 그래서 <소년이 온다>,인 것이다. 그들을 희생자로 만들지 않는, 힘이 없다는 이유로 제물로 바쳐진 자로 만들게 하지 않는,


 그래서 인간세계를 힘의 논리로 대변하지 않는, 그 사건을 결코 지나간 사건으로 만들지 않기 위함에, <소년이 온다>


 소년이 우리와 함께 하게 위해서. 그에 대한 답변으로는, 소년이 왔다, 라고 해주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정확히 당신이 하는 말을 알고, 그것을 인지하였다고 말해주기 위해서. 또한 당신이 주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에, 내가 알아볼 것이기에, 소년이 왔다,라고

 


3.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 그리고 다시 한 번 <소년이 온다>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적당히라는 말을 도저히 모르는 사람처럼. 끝없이 상처를 탐구하고 곱씹는다.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다. 수신하면 제가하고 제가하면 치국하고 치국하면 평천하라는 이 말의 의미는, 수신하면 평천하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수신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인데


 나는 한강을 보며 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다. 오로지 개인적인 것을 바라보며 타인과 사회로, 그것을 넘어 연대로 나가는 그녀를 보면 황당하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렇듯 무서운 집념을 가진 그녀라면, 아마도 다음 소설에서는 자유를 메인 테마로 삼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잔인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유를 저당 잡힌 자만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강의 다음 작품은 대하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최소한 지금까지보다는 엄청난 장편일 것이라는 비약도 잠시 해보며 글을 마친다.



 

ps.<>은 시 비슷한 형식이라 독해가 필요해서 리뷰를 남기기에는 오래 걸릴 거 같고, 한강 개인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용도 내용이지만 뒤의 해설이 정말 백미였기 때문에(한강의 모든 작품을 통해 한강을 리뷰) 읽어보기를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