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나는 소아성애자이다.
이게 정확한 표현인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3학년, 16살 때 친해진 친구들은 대부분 오타쿠였다.
나는 애니나 라노벨을 본 적은 없었지만 대화를 들으며 조금씩 서브컬쳐에 익숙해져 갔고 픽시브라는 사이트를 알게되었다.
그곳에서 내 관심을 가장 크게 끌었던 것은 미소녀 그림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태그 '소녀', '로리' 이런 그림들을 특히 좋아했다.
아마 '로리'라는 개념도 그 즈음에 처음 알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성적으로 호감을 느꼈던 것은 아니고 뭐라 표현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좋아했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거부감을 느꼈다.
친구가 데어라였나 라노벨을 학교에 가져온 적이 있었다.
라노벨은 표지와 책 사이에 일러스트가 있지 않나, 그 책에는 어린 소녀가 거의 헐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걸 보고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대충 고등학교를 가면서 로리물에 한창 푹 빠졌던 것 같다.
사실 나는 태그 취향이랄 것 없이 밀프, 거유, 빈유, 로리, 오토코노코, 오네쇼타, ntr, 순애, 수간 등 거의 모든 장르를 보는 편이지만
내 부끄러운 좆은 로리물을 볼 때 가장 큰 흥분을 느꼈다.
그렇게 로리콘으로서 덕질을 즐기다가 또 다시 거부감을 느끼는 때가 찾아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나보다 더 심한 로리콘들을 보았고, 심지어는 현실의 초등학생들을 사먹고 싶다는 말을 매일 하는 놈도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친한 친구도 원래 로리콘인 건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딥웹을 통해 실제 영상을 본다는 사실은 정말로 역겨웠다.
그렇게 나는 비윤리적인 그들을 욕하며 스스로 같은 인간이 되지 않고 싶어 나를 부정했다.
하지만 그들이 변함없이 역겹고 아무리 나 스스로를 부정해도 내 성적 욕망은 사라지지가 않았다.

군대를 갈 때 쯤엔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을 대하는 데에 진실하지 못했고 가식적이고 무서운 사회에 지쳤었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앞에서 말한 성적 대상으로서의 의미가 아닌,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그 순수함과 깨끗함이 좋았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얘기하면 더러운 나도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한 건 없다.
나는 역겨운 로리콘이고 이제는 현실의 아이들에게도 나쁜 생각이 든다.
휴학하는 동안 초등학생 앞에 위치한 학원에서 대략 1년 정도 보조 선생님 알바를 했었던 적이 있다.
가장 많이 보았던 아이들은 7살에서 3학년까지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깨끗함에 항상 힐링되면서도 정말 부끄럽고 역겹게도 그 아이들을 성적 대상으로도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소설의 험버트처럼 직접적으로 어떠한 계획을 세우거나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이성적으로, 윤리적으로는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런 짓을 해서는 안되는 건 물론이고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조차 아주 혐오스럽고 경멸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대립하는, 애들이 좋은 마음은 없어지지를 않는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어제만 하더라도 로리물을 보며 흥분했다.

1년 간의 휴학을 가지고 복학을 하며 상담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심리학과 상담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아이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는 미성년자가 잘못을 하면 그 부모가 욕을 먹는다.
요즘에는 패드립이라고 발끈하는 경우도 많지만 근거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자라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는 유아기~초등학생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 시기에 부모의 관심과 사랑, 올바른 훈육이 그 아이의 인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말이다.

이제 내 얘기는 그만하고 소설 얘기를 하겠다.
돌로레스 헤이즈, 로는 어린 시절 아빠를 잃었다.
그리고 유일한 가족인 엄마는 딸을 사랑하는 모습보다는 귀찮게 여기고 골칫거리로 여기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
이러한 환경에서 로가 다른 또래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자라는 건 불가능한 것이 당연하다.
그러던 중 집에 험버트가 들어오게 된다.
험버트와 함께 있을 때 로는 고의인듯 아닌듯 그를 자극하기도 하고 험버트를 싫어하는 듯 하다가도 은근히 호감을 보이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로가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것에 대한 애정결핍을 험버트가 충족시켜주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험버트 얘기를 해보자면 우선 그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인간 미만의 쓰레기 캐릭터이다.
로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음흉한 계획을 세웠으며 로의 법적 부모가 되기 위해 샬럿을 이용해 결혼을 한다.
그리고 로와 자기를 떨어뜨려 놓으려는 샬럿에게 증오를 느끼며 살해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계획이 샬럿에게 들키게 되었고 샬럿은 불안정한 상태로 길거리를 뛰어가다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험버트는 샬럿에 대한 미안함이나 슬픔을 느끼기보다 로가 온전히 자신의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여기까지가 아마 1부까지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험버트는 캠프에 간 로를 데리러 가 엄마가 아프다며 차를 타고 이동한다.
그리고 미리 예약해둔 어느 호텔에 묵으며 로와 관계를 가진다.(로의 표현으로는 강간했다고 한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불안해진 로는 엄마에게 전화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험버트는 그녀가 죽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로에게 남은 건 자기밖에 없다는 사실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로와 험버트의 첫 관계는 로에게는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의 언행을 따라하듯 로도 어른들의 행위를 따라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여행과 험버트의 지속적인 요구에 로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럴 때마다 험버트는 어린 로를 협박하며 겁을 준다.
그렇게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다 로가 고열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험버트는 우려하던 상황에 방황하며 로를 찾으러 다니지만 그럴 수 없었고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로에게 편지가 한 장 도착한다.
그녀는 결혼을 했고 임신도 했으며 경제적인 지원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험버트는 다음날 즉시 로를 찾아 나선다.
긴 수소문 끝에 험버트는 로가 살고 있는 집을 찾게 되고 로를 만났다.
하지만 로는 더이상 그가 알던 님펫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함께 돌아가자고 애원하지만 로는 단호히 거절한다.

이게 소설의 끝은 아니지만 줄거리는 이 정도로 요약하겠다.
몇 가지 생각해 볼 거리가 있다.
험버트는 진심으로 로를 사랑했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험버트는 그저 한 님펫을 탐했을 뿐이다.
그녀의 심리를 전혀 돌보지 않고 그녀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은, 돈과 선물로 관계를 요구하는 강간이고 매춘이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랑한 것이 아닌 그저 소아성애적 욕망이었을 뿐이다.
로에 대해서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어린 나이에 가족들을 잃으며 제대로 된 인격과 심리를 형성하지 못했고 추악한 어른들에게 몸을 갈구당한 어린 아이이다.
어린 아이라는 말은 님펫일 때의 의미도 있지만 그녀가 나이를 먹어도 정신적으로는 자라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로는 결혼하고 임신까지 했지만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또한 제대로 된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탓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런 로가 아이를 낳아서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글의 시작에서 내 얘기를 한데에는 이유가 있다.
1부의 내용에서 험버트의 시선으로 로를 바라보면 나도 그 장면을 상상하며 흥분했다.
하지만 1부 후반부와 2부를 읽으며 로의 입장에서의 묘사가 많이 등장하니 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말했듯 아이들을 좋아하고 심리, 상담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아동 심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로리콘이다.
나는 나를 모르겠다.
내 진짜 마음과 생각이 어느쪽인지 모르겠다.
내 어린 시절 느꼈던 불안과 우울을 아이들에게 경험시키지 않고 올바르게 자랄 수 있게 돕고 싶어 아동 심리를 공부하는 인간인지,
2차 성징도 오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욕정을 느끼는 쓰레기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그냥 나는 평생 감추고 평범하게 살 수 있었으면 한다.

필력이 부족한 글 읽어줘서 감사하고 저같은 쓰레기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끄러운 내용이라 비겁하게 통피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