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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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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과 카프카 작품론을 읽고 나서 내가 이해한 내용을 토대로 카프카의 작품세계와 변신과의 관계를 논하겠음.

1. 카프카가 작품을 쓴 20세기 초는 산업화, 기계화가 이루어진 물질 문명 풍요의 시대였음. 그렇지만 동시에 타이타닉 호 침몰이나 양차 세계대전 등으로 이런 발전에 대한 회의가 생기고 이성주의가 깨지고 비합리주의가 고개를 들던 시기임. 카프카는 이런 기조에서 선구자적인 글을 썼음. 

2. 카프카에게 존재한다는 것은 세계 안에 있음 뿐만 아니라 세계안에 소속됨을 뜻했음. 변신은 그레고르의 시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는 그레고르가 변했어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 그러나 변한 그레고르와 외부 세계 사이에는 어떤 언어도, 약속도, 규범도 통용되지 않음. 그렇기 때문에 타인은 벌레 안에 그레고르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없음. 아이러니하게도 카프카는 현대 사회가 직업이나 노동으로 인간을 상호 소외시킨다고 보았음. 나는 이것을 인간은 세상은 소속되어 존재하지만 세상은 인간을 갈수록 소외시키는 딜레마라고 이해했음.

3. 카프카는 인간에게 ‘자기(Selbst)’와 ‘세인(das Man)’이 공존한다고 보았음. ‘자기’는 본래의 자신인 반면 ‘세인’은 기능적인 존재 형식으로 합리적이고 경험적인 외적 일상 세계에 소속된 자신임. 내가 이거를 봤을 때 생각난 게 프로이트의 무의식-자아-초자아였음. 내가 생각하기로는 ‘세인’은 초자아로 ‘자기’는 자아와 무의식을 섞고 자아의 역할을 버린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음. 무의식과 초자아를 조율할 자아가 없기 때문에 ‘자기’와 ‘세인’의 상호 관계는 파탄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음.

4.그레고르는 꿈에서 깨어났더니 벌레가 되어 있었음. 왜 꿈이냐하면 몽환은 합리적인 의식이 배제된 상태이기 때문임. 꿈에서 인간은 합리적이고 경험적인 일상 세계로부터 자유로워짐. 그레고르는 직장에 싫증을 내면서도 아버지의 빚 때문에 계속해서 직업을 유지했음. 그러나 이러한 ‘세인’이 사라진 꿈에서 그의 ‘자기’가 드러난 거임. 그런데 왜 그 드러난 모습이 벌레인 것일까? 그 이유는 합리적인 외부 세계에 소속되고자 하는 인간은 스스로도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임. 그리고 ‘자기’는 인간의 경험적 파악 능력 밖에 있음. 그렇기 때문에 외부세계에 드러날 때 이질적인 사물 또는 동물로 귀속되어 드러남. 카프카는 드러난 ‘자기’라는 비현세적이면서 동시에 현세적인 모순된 형상을 벌레라는 불가해한 방법으로 서술했음. 카프카가 출판자가 변신의 삽화를 넣으려 하자 벌레가 묘사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던 것도 ‘자기’는 드러났을지라도 감각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임.

5. 인간은 세계 안에 소속되고자 함. 자신의 직업이나 노동 등을 통해 오롯이 ‘세인’이 되기를 지향함.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함. 왜냐하면 인간은 로봇과는 달리 ‘자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임. 인간은 ‘자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완전히 ’세인’이 될 수 없음. ‘세인’과 ‘자기’가 공존해야 한다는 이율배반이야말로 카프카 작품세계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함.




나도 내가 이해한대로 쓴 거라 맞는지 모르겠음. 지적할 내용이 있으면 환영임. 아무튼 카프카는 천재인 것 같음. 글을 잘 쓰는 것도 모자라 자기 생각을 완벽하게 비유로, 이야기로 전환시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