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나 영화관람을 하면서 전개를 따라가다보면 독자나 관람객은 어느 시점에 주인공에게 자기감정을 이입한다.

  즉 주인공의 행위를 지켜보면서 간접적으로 함께 동참하게 되면서 불안, 번민, 갈등, 결투 그리고 마지막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흔히 말하는 카타르시스를 접하게 된다. 


  그런데 왜 우리 중에 어떤 이는 똑같은 작품을 두고 재밌있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재미없다고 하는가?

  그것은 자기감정의 이입이 과연 얼마나 이뤄졌는가의 문제일 것 같다. 주인공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서사전개 과정에서의 개연성이나 

  핍진성이 제대로 이뤄졌다는 전제 속에서) 결말에서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마지막의 대단원에 기꺼이 동참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만 주인공과의 거리가 가까울 수 있을까?

  독자는 자신이 살아온 환경, 경험, 성격, 그 동안의 독서습관, 기질 등 다양한 이뤄진 특질들의 합을 통해 작품을 받아들이고,

  그리하여 작품과 독자 간의 정서적인 일치가 이뤄지면 우리는 거기서 감응이나 감동을 받게 된다. 

  좌절해본 자는 좌절을 알고 가난한 자는 가난을 알고 인간(여자)에게 거절당한 자는 거절을 안다.  


  만약 한 독자가 위대한 개츠비가 재미있거나 감동적이었다고 한다면 그는 정서적으로는 개츠비가 사랑 앞에서만큼은 어리석을 정도로 순진했던 그 과정을 

  아파했던 사람이며, 흙수저 출신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바득바득 기었던(소설 속에서는 항해를 했지만) 그의 야심을 충분히 공감한 사람이며

  전체적으론 한 개인의 좌절을 통해 이 소설의 주제인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통감한 것이다. 

  

  만약 누군가 개츠비가 재미없게 읽었다면? 그는 어쩌면 은수저 이상은 되는, 그리 좌절해본 적이 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일지 모른다. 

  그게 맞다면 재미없게 읽었다는 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축복인 것이다.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 하나가 위대한 개츠비라는 게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