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토지의 주인공은 누구인가'라는 질문 하나만으로도 밤새도록 떠들 수 있는 게 토지 덕후들 아니겠는가. 그만큼 불타기 좋은 애매한 문제이기도 하다.

보통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어떻게 주인공을 판별하는가?

1. 등장하는 분량
2. 주관적인 인상
3. 작가의 주제의식과의 밀접성

대충 이렇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번의 경우, 사실 토지에선 무의미한 구별법이다. 분량을 일일이 셀 수도 없거니와, 애당초 분량이 한 쪽에 쏠려 있지 않고 고른 편이기 때문이다. 서희-길상은 1, 2부의 주인공 격인 인물로서, 상당히 많은 분량을 차지하긴 한다. 그러나 3부만 가도 존재감이 옅어진다. 이용-월선도 죽은 이후론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최상길-길여옥은 그냥 분량이 몹시 적다...

김환 역시 분량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워낙 신출귀몰해서 잠깐씩 나오는 경우가 많은지라... 그렇지만 김환의 위력은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을 때에 있다.

죽은 이후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등장인물은 단연 김환이다. 강쇠와의 산중문답은 3번을 반복해서 등장하고, 휘는 김환이 물려준 피리를 불며 이따금 슬픔에 젖고, 공노인은 김환이 죽은 후에 상심에 빠져 잠을 못 들고, 서희는 할머니가 돼서야 죽은 김환의 열렬한 생애를 이해한다. 1~5부까지 압도적인 존재감을 유지하는 인물은 김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2번의 경우, 나에게 있어선 김환이 압도적인 존재감이었고... 사실 그래서 빨아주는 면도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취향은 가지각색이니 다른 의견도 존중한다.

결국 객관적인 논의를 위해선 3번의 경우가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지 않을까 싶은데...

일단 토지의 주제의식이라 한다면 그것은 제법 명료하다. 바로 우리 민족의 한에 관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가다 지로-유인실을 주인공으로 삼기엔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든다.

작중 한을 언급하는 등장인물은 봉선이도 있고, 길상이도 있고, 조병수도 있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건 김환-강쇠의 산중문답에서다.

ㅡ어째서 한이 남소? 후회 없이믄 한도 없제요.

ㅡ한이야 후회하든 아니하든 원하든 원치 않든 모르는 곳에서 생명과 더불어, 내가 모르는 곳, 사람 모두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온 생명의 응어리다. 밀쳐도 싸워도 끌어 안고 울어도, 생명과 함께 어디서 그것이 왔을꼬? 배고파서 외롭고 헐벗어서 외롭고, 늙어서 외롭고 이별하여 외롭고, 혼자 떠나는 황천길이 외롭고, 죽어서 어디로 가며 저 무수한 밤하늘의 별같이 혼자 떠돌 영혼, 그게 다 한이지 뭐겠나. 참으로 생사가 모두 한이로다...
사실 산중문답 이후 강쇠의 대사가 결정적이다.

ㅡ 성님은 삼강오륜도 아니고 목구멍 때문에도 아니고 사람들 한을 풀기 위해 죽은기라.
김환의 죽음은, 다른 등장인물들의 죽음과는 차별화되어 다뤄진다. 그의 죽음은 곧 신분제로 인한 격동의 근대 시기를 끝마치는 종료종이고, 앞으로는 더 이상 열렬한 독립운동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경고이고, 그걸 넘어서 일제의 수난에 시달린 민족을 감싸는 한풀이의 장이다.

그래서 토지 4, 5부는 굉장히 우울하고 미적지근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김환이 죽었으니까...


경리 누나는 주갑이를 제일 좋아하기도 했고, 뭉뚱그려보자면 이용-월선 같은 평범한 인간들의 이야기가 가장 정감 있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리 누나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최고의 발명품은 역시 김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환이 별당아씨를 그리워하는 장면은 경리 누나가 죽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썼다고 하는데, 다소 본인이 투영된 인물이 아닐까 싶다. 좀 덜 노골적인 김범우(태백산맥 주인공)라고 할까.



오랜만에 토지 관련 글을 올리는데... 요새는 나말고도 토지 언급하는 갤러들이 꽤 있어서 좀 게을러짐 ㅋㅋㅋ

마지막으로 토지 한마당 링크 올려두고 갑니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