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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으로 전자도서관을 이용해 봤다. 뭘 그리 다운받고 해야 하는지 컴맹인 본인으로서는 꽤나 힘들었다. 그래도 막상 다운을 받고 나서 읽어보니형광펜으로 밑줄도 칠 수 있고 본문의 단어 검색도 가능하고 아주 그냥 신세계였다. 컴퓨터로 릭다보니 어느 정도 읽고나서 웹 서핑이나 게임 한 판 돌리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려나.
이번 책은 신착도서들을 훑다가 고른 책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책들을 그닥 선호치 않는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책들은 왠지 모르게 사짜 냄새가 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순전히 저자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저자인 앤드류 양은 대만계 미국인으로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최고 6% 가량의 지지율을 모은 사람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해 화제가 되었다. 나는 민주당 경선 당시의 뉴스를 통해 그를 처음 접했는데 이제 곧 여든을 바라보는 바이든이나 샌더스와는 달리 40대의 젊은 아시아계 사업가가 기본소득과 수학 공부를 외치며 미국 대선에 뛰어든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런 사람이 쓴 책이기에 평소 구미가 당기지 않는 부류의 책이지만 읽어보았다.
제목이 보통 사람들의 전쟁이지만 원제가 The War on Normal People로 보통 사람들에 대한 전쟁이라 번역하는 편이 맞지 않난 싶다. 아무튼 제목이 말하는 대로 책은 앞으로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자동화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심화되고 광범위해짐에 따라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보통 사람들의 일자리는 급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미국인인만큼 미국의 현실 내에서 사례들을 설명하는데 그중에서도 화물차 기사들의 사례가 흥미로웠다.
미국에서 화물차 기사는 약 350만 명이고 그들을 위한 서비스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약 720만 명이다. 그들의 가족들까지 생각하면 화물차 기사들의 생업과 직결된 사람들만 2천만 명이 훌쩍 넘는다. 그런데 자율주행 트럭은 정말 근시일 내에 상용화될 전망이다. 이미 호주에서는 73대의 자율주행 트럭이 24시간 내낸 광산에서 화물을 옮기고 있다. 효율을 극도로 중시하는 기업 입장에서 볼 때 기사들과는 달리 휴식 시간도 인건비도 필요없고 사고율마저 극히 적은 자율주행 트럭을 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는 곧 수많은 이들의 실직을 불러올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암울한 미래가 비단 화물차 기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경고한다.
법적으로 자동화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저자는 모든 미국인 성인에게 매달 1000달러, 1년에 12000달러를 아무 조건없이 주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이는 현재의 복지 프로그램 비용에 1조 3천억 달러 정도가 추가되어야 한다. 저자는 미국이 달러화라는 세계 기축통화 발행국이고 보편적 기본소득은 운영경비가 거의 들지 않기때문에 선진국 중 미국에만 없는 부가가치세 VAT 등을 부과한다면 그 정도 수준의 추가 비용은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한 일을 할 의욕이 없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다, 무상으로 받은 돈이니 엉뚱한 곳에 쓰일 것이다 등의 비판에도 합리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자의 기본소득론에 회의적이다. 저자의 기본소득론은 기존의 사회복지제도가 비효율적이고 효과도 미미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구난방의 복지 프로그램을 대거 축소하거나 폐지하여 기본소득으로 일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기존의 복지제도를 너무 폄하하고 단순하게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여긴다.
사회적 기능 향상을 위해, 사회적 욕구의 충족을 위해, 사회위험의 분산을 위해 복지제도의 급여는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 소비자주권주의의 실현과 운용효율성이 큰 현금 급여가 있는가 하면,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고 목표효율성이 큰 현물 급여도 있다. 관계맺음을 중요한 특성으로 하는 돌봄이나 상담은 비물질적인 서비스 급여이며, '최소 극대화 원칙'을 적용하여 취약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기회의 급여도 있다. 위와 같은 급여의 창출을 위한 재원 또한 재정지출과 조세지출, 사회보험기여금, 기부금, 이용자 요금 등으로 다양하다. 급여가 대상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도 필요하다. 중앙정부뿐만이 아니라 지방자치체, 시민사회와 지역의 영리/비영리 조직들이 그러한 매개체인데 대부분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결국 현재의 복지제도는 그리 단순히 볼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제공주체와 전달체계, 급여와 재원들이 복잡한 방식으로 결합된 것이며, 이는 괜히 거대 정부의 구축을 위해 그러한 것이 아니다. 저마다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네트워크를 아우르기 이해서는 복잡성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과연 기본소득만으로 이러한 복잡성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저자의 기본소득론이 너무 장밋빛 미래라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부분들도 많다. 아니, 대부분 동의한다고 하는 쪽이 더 적절하겠다. 사회신용 점수제도의 도입이나 인간적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는 비록 분량은 적었으나 개인적으로는 기본소득보다 그쪽에 더 마음이 갔다. 기본소득 자체도 아예 말이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기존의 복지제도와 함께 부분적으로 병행할 용도로 쓰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앞으로 닥칠 일자리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미국사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절실히 필요하다.
모쪼록 전문성도 없고 방구석 백수인 본인이지만 잠시나마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위에 이렇게 써놓으니 엄청 딱딱한 책인 것만 같지만 저자가 굉장히 위트있게 자신의 경험들을 서술하며 쉽게 쉽게 쓴 책이라 하루 만에 다 읽었다. 혹시라도 관심있는 사람은 추천한다.
평점 5점 만점의 4.6점
이유; 기본소득 만능론 빼고는 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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