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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파우스트 전설을 모티브로 한 글을 네 개 읽었다. 다른 글들은 괴테의 <파우스트>,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그리고 거트루드 스타인의 <포스터스 박사가 불을 켜다Dr. Faustus Lights the Lights>로, 하나 같이 이 전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아마 이 동일 모티브 저작들 중 이 글이 가장 옛날 글일 터인데 마지막에 읽게 된 것이 조금 묘하긴 하다. 실제로 괴테의 <파우스트>가 이 글을 읽고 쓴 글이라고 하니, 처음으로 <파우스트>를 읽기 전에 이걸 먼저 읽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일단 이 글은 요즘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영국 근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시가 작중에 등장하는 악마들의 모습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악마들은 밀턴의 <실낙원>에 등장하는 악마들과 그 느낌이 흡사한데, 이 기간쯤에 영국에서 일반적으로 공유되는 악마에 대한 생각들이 이러했을지도 모르겠다. 학문에 대한 당대인들의 생각 역시,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가능성의 도구로서 강조되는 학문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유한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한되는 것이 학문이다. 주인공 포스터스 박사에 대한 해석이 이를 잘 보여준다.



포스터스 박사는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가 '근대인'의 시초처럼 그려지는 것과는 정반대로, 얕고 넓은 지식을 탐내다 건드려선 안 될 분야까지 건드리며 파멸하는 가엾고 가벼운 인물이다. 이런 속성들을 강조하는 점이 상당히 재밌는데, 포스터스 박사가 메피스토펠레스의 마법으로 장난을 치고 나면 꼭 그에 대조되는 장면을 뒤에 하나 추가하는 식이다. 이 장면에선 포스터스 박사 대신 그의 하인 와그너나 마부 따위가 등장하는데, 포스터스 박사가 악마를 사역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구도로 자기 하인을 만들고, 어설픈 마술로 얄팍한 욕심을 채우려다 실패하곤 한다. 포스터스도 이들과 사실상 다를 것이 없다는 걸 암시하는 것이다.



위에서 나열한 글들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이 파우스트를 어떤 인물로 보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괴테가 말로우의 해석을 뒤집어 보여줬듯, 거트루드 스타인과 토마스 만 역시 괴테의 해석을 뒤집어 글을 썼다.



먼저 거트루드 스타인은 이 근대인이란 모티브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근대 속에서 문명을 만들어내고 과거의 신비로부터 강제로 멀어져 그 속에 갇힌 인물로 파우스트를 그린다. 이 파우스트에게 메피스토펠레스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메피스토펠레스는 이런 세상에서 살아갈 수도 없다. 반면, 토마스 만은 근대 독일의 모범적 인물상으로서 쓰이곤 했던 파우스트를 당시의 독일 파시즘과 섞어, 근대성을 추구하는 제국이 스스로 붕괴할 수 밖에 없었듯 근대성을 추구하는 예술가 아드리안 레버퀸이 스스로 녹아내리는 모습을 그려낸다.



사실, 이 파우스트 박사는, 비록 말로우는 그런 의도가 없었겠지만, 묘하게도 매번 당시의 시대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쓰인 것 같다. 스스로를 믿으면서도 동시에 신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인간과, 늘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며 어떻게든 성장하고자 하는 인간, 모든 것을 이룩했지만 그렇기에 갈 길을 잃어버린 인간, 그리고 모든 것을 이룩하고자 하는 노력 탓에 신 없이도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인간까지. 개인적으로 이 네 글의 특성들을 모두 엮어서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현대의 파우스트 박사는 또 이 속성들의 종합과는 다른 모습을 띄고 있겠지만 말이다.



P.S. 이 네 글 이외의 파우스트 전설 모티브 글을 아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