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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 V. 헉슬리: 디스토피아의 대립
조지 오웰은 <1984>를 썼으며,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썼다. 이 두 작품은 모두 디스토피아 문학의 고전으로서 세계인들에게 암울한 세상의 모습을 소개했다. 독재와 전체주의, 정부 주도의 산아 생산과 모든 인권의 탄압—이 둘은 오웰과 헉슬리에 의해 인류 사회의 커다란 적으로 묘사되는 요소들일뿐더러, 모두 인류가 피로 얼룩진 20세기를 거치며 한 번씩은 경험해 본 것들이다. 이들 두 작가들은 우리가 사는 2020년의 세상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세계들을 묘사함으로써 인류의 타락 및 쇠함과 형용하기 어려운 공포를 묘사한다. 오웰의 프롤레테리아와 헉슬리의 델타, 1984년의 잿빛 런던과 포드 기원 632년의 향락에 젖은 런던은, 그들의 차이로써 하여금 독자에게 우리가 아는 세상의 죽음을 너무나도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현재를 지배한다.” “전쟁은 평화/구속은 자유/무지는 힘.” 영.사 (신어 대신 아직까지도 구어를 쓰시는 뒤떨어진 분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영국 사회주의의 새로운 이름)의 기본 개념들이다. 1984년에, 실제로 1984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당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들은 적어도 약간은 반항적인 오세아니아의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만일 만인이 자의로 대형을 따르고 사랑한다면, 굳이 애정성을 운영할 필요가 있겠는가?). 오세아니아는, 당의 보도에 따라서 그때그때 달라지기는 하지만, 유라시아 혹은 동아시아와 벌써 몇 년 째 지속적인 전쟁을 수행하는 중이다. 대형의 군병들은 항상 승리만을 거둔다. 항상 라디오는 전장에서의 완벽한 승리에 대한 소식을 전한다(배급이 이번 주에는 불가피하게 줄었다는 언급을 같이 하면서 말이다).승리는 너무나도 철저해서, 승리 맨션과 승리진과 승리연이 존재할 정도이다. 당의 영광스러운 통치 하에서 잘못되는 일은 절대 없다. 진리성이 그것을 보증해 줄 수 있다. 대형은 텔레스크린으로 모두를 응시하며, 에마누엘 골드스타인은 공공의 적이고, 2분간의 증오 동안 사람들은 대형에 대한 충성심과 그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골드스타인에 대한 분노를 마음껏 표출한다. 과거는 현재의 필요에 따라 수정되고, 삭제되며, 배포된다.
조지 오웰은 언뜻 보기에도 끔찍하게 무서운 세상을 구축해 냈다. 그의 색은 어둡고 칙칙한 잿빛이며, 그의 런던은 구시대의 모든 것이 사라진 곳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폴과 세인트마틴 대성당은 전부 다른 용도로 개조되거나 허물어졌다. 서적과 그림, 심지어 노트와 서진마저도 이 세계에서는 불법이다. 이곳의 독재자들은 (대형의 실존 여부가 다소 불투명하므로) 텔레스크린 외에는 인민들을 통제할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는 마법의 알약도 없으며, 인민들이 반역심을 품지 못하게 할 수단도 없다. 그들의 무기는 두 가지이다: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감정인 공포, 그리고 태초의 독재 정권에서부터 사용된 유서 깊은 기술인 세외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들로도 인민을 통제하기는 충분하다. 당에 대한 모든 분노를 돌릴 공공의 적 골드스타인도 창조해 냈겠다, 사람들로부터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귀찮은 의무를 덜어 주는 달콤하고 생각 없는 세뇌만으로도 충분하다. 2분 증오의 고삐 풀린 광기, 과거를 조작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교과서, 그리고 당에 대해 반하는 생각이라도 품는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기구인 애정성... 위대하고 막강한 당을 거역한다는 것은, 그래서 당에 반대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미친 짓인 것이다.
이제 헉슬리의 세계로 눈을 돌려 보자. 헉슬리의 밝고 즐거워 보이는 세상은 오웰의 그것과는 정 반대이다. 그 세계는 어느 정도까지는 매력적이지만,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1984>의 어두운 세상보다도 더한 공포를 선사한다. 이 <멋진 신세계>에서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무참히 살해당했고, 남은 것은 오직 배고픈 돼지들뿐이다. 이 세계의 시민들은 그들의 현 상태와 그들의 현 정부를 사랑해 마지않는다. 만약 그들에게 어떠한 종류의 걱정, 근심이나 불만이라도 생긴다면, 걱정할 필요 없다! 소마 반 그램만 먹으면, 이 지구의 온갖 문제들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세계로 가서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까. 더 우울하다고? 소마 삼 그램이면, 어두운 달나라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하늘에 다이아몬드를 걸치고 떠 있는 루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와 함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을 모든 걱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아무런 부작용도 없는 이 위대한 신약, 소마는 정부가 앞장서서 공급하므로 공급이 끊길 걱정도, 가격을 감당하지 못할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3S-즉, 스포츠, 스크린, 섹스-는 사람들에게 무한정 공급된다. 모든 것은 깔끔하고 살균되어 있다. 이 세계는 인간에게 사사건건 간섭할 신도, <1984>와 같은 물품 부족 현상도, 시기심도 없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현 상태에 만족한다. 알파부터 엡실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급의 모든 구성원은 유아 때부터 그렇게 교육받아 왔기 때문이다. 알파는 자신이 델타나 엡실론이 아닌 것에 감사하고, 델타와 엡실론은 자신이 알파나 베타가 아닌 것에 감사한다. 이는 실로, <멋진 신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헉슬리의 이 세계 또한 디스토피아이다. 아니, 이 세상이 오웰의 세상보다 훨씬 무섭다. 멋진 신세계의 인간들은 사육 당한다. 이 행복한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곳을 전체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세상만큼이나 무섭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모두 사멸되었다는 점이다. 문학도, 꽃과 털이 북슬북슬한 동물도, 따르고 숭배할 신도, 영적인 의미의 사랑도, 가족과 어머니도, 시도, 선과 악도, 진정한 위험도 이 세계에선 거의 절멸당한 지 500여년이 되어 간다. 이 사회는, 소마만 충분히 제공해 준다면, 지옥까지라도 지도자들을 따라갈 거세된 환관들의 모임이다. 아이들에겐 전기 충격을 주고, 문학은 불태워지고, 시체는 소각되어 비료로 쓰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헉슬리의 세계는 이 교활함과 미묘함으로 인해서 두려운 것이다—부드러워 보이는 표면 뒤의, 강철 발톱 때문에.
오웰과 헉슬리가 창조해낸 세상들은 하나같이 민주주의의 애호가들을 겁에 질리게 한다. 오웰은 우리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하나의 당이 모두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리고 헉슬리는 그 누구도 불만 하나 없는 <멋진 신세계>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기 때문에. 이것이 자칫 우리의 세상이 될 뻔 했던 두 디스토피아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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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정합니다. 나치 독일 봐봐. 지지가 있니깐 세계대전 일으키고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거린 거지
1984 읽으면서 잿빛 느껴지는 건 만인공통인 듯. 진짜 시각적인 이미지가 강렬함
카프카 소송도 읽어보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