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 시대에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저작이다.
더하여 이 책은 이전에 읽었던 스티븐 그린블랫의 책에서 다루던 중심 소재였는데,
그 제목 그대로 말하자면 (출시제이긴 하지만) \'근대를 탄생시킨\' 책이라고 하니
대단히 호기심이 동했던 터라, 언젠가 한번은 읽어야겠다고 맘 먹던 차였다.
드디어 읽은 것인데...

고졸부터 말하면 조금 실망스럽다.
삶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긍정하는 아름다운 책이었다는... 식으로
\'우연히\'(위의 책의 원제는 \'중졸Swerve\'이기도 했고) 이 책을 발견해
멋모르고 읽고는 은은한 기쁨을 느꼈다며 찬사에 찬사를 거듭하던
그린블랫에게 속아버렸다는 느낌도 사실은 없지 않은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책이 설파하는 유물론적인 주장들이
생각보다 이미 무의미하거나, 내게 상식선이라는 게 큰 것 같다.
어떤 원류가 되었던 책이라는 의의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저자인 루크레티우스의 전기는 사실상 전무한 모양이고
책은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대단히 충실하게 설파하는 저서라고 한다.

아마 이 책을 손에 쥐는 사정은 보통은 셋 중 하나겠는데
라틴어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 문장의 맛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이거나
그리스/로마의 철학이나 사상에 전반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그것을 톺아보려는 사람이거나
특정해서 에피쿠로스 사상의 충실한 해설서라는 평가를 받는 이 책을 읽어보려는 사람이겠다.
즉, 소위 전공자들이나 볼 책이라는 건데 여기에 나같은 딜레탕트가 어쩌다 꼬이는 거다.
개인적으론 저 그린블랫의 책도 크게 보면 상통하는 내용이라고 생각되는데
결국 계몽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것 같다.

책은 특히 라틴어 원문으로 읽으면 그 시작(詩作)의 수준이 실로 대단해서
그것을 음미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대단한 쾌를 주는 모양이고 실제로
이미 당대에 베르길리우스 등의 인물이 시의 높은 수준을 상찬했으며
시인 본인이 본문에 쓰디쓴 약쑥(사상)을 달콤한 맛(시문)으로 감싼다는 식의 비유를 몇 번이나 쓰며
일종의 자화자찬까지 하고 있는 노릇인데다가, 후세에도 그 훌륭한 시문으로
추종자들이 끊이지 않았던 듯하니 과연 높은 수준의 작품인가 보구나 싶기는 하다.

문제는 시가 개인적으로는 와닿지도 않고, 가 닿을 생각도 없는 장르라는 게 하나고
이건 번역본이기에 그 맛을 어차피 느낄 수도 없음이 둘이요,
역자 서문에서 드러내고 있듯 역자는 시의 맛을 살리기보단(이게 가능이나 한지는 둘째치고)
원문에 최대한 충실한 직역을 시도했기 때문에 한국어의 어순과는 상이한 구조의 문장들이
그대로 번역되어 오히려 편하고 즐거운 독서를 방해하는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다는 점이
마지막으로 셋이니 시인이 자화자찬의 낯뜨거움까지 굳이 무마해가며 자랑했던
저 달콤한 시문이 큰 의미가 없는 셈이다.
그러하므로 이 책을 누군가 읽는다면 기대함직한 부분 하나가 사실상 결여된 셈이겠고.

그러면 사상적인 내용을 간취해보려는 의지가 이 번역본 독서를 추동하는 동력이겠는데
이게 또 생각만큼 마음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조금 뒤에 설명한다.

아마 계몽사상가들에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그리고 스티븐 그린블랫에게 소소한 충격을 주었다는 부분은
종교와 영혼의 불멸성을 부정하는 대목이 아니었을까 싶다.
18세기의 유럽이나 근본주의가 꽤나 득세하고 있다는 현대 미국의 지적 토양에서
이런 식의 유물론적인 세계관을 접했을 때는 충격 혹은 매혹을 느끼기 마련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