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리스본
-알바루 드 캄푸스
아니, 난 아무것도 원치 않아.
이미 말했어, 난 아무것도 원치 않아.
내게 그 어떤 결론도 들이밀지마!
죽음만이 유일한 결론이야.
내게 미학을 권하지마!
내게 윤리에 대해 얘기하지마!
형이상학은 저리 집어 치워!
내게 완벽한 체계를 팔려고 하지마, 날 과학을 돌파구로 괴롭히지마,
과학의 (과학의, 신이시여, 과학의!) -
과학의, 미술의, 현대 문명의!
내가 신들에게 무슨 해악을 끼쳤는가?
만약에 진실을 가지고 있다면, 그냥 가지고 있어!
나는 기술자야, 하지만 내 기술은 기술적 영역에 제한 돼있지,
내가 미쳐있고, 그렇게 돼야 할 모든 것들에 떨어져서.
그렇게 돼야 할 모든 걸들에서 말이야, 듣고있나?
제발 좀 나를 내버려둬!
넌 내가 결혼하기를 원하는 거야, 소용없고, 관례적이며 과세대상인 짓을?
넌 내가 이것들이 반대편에 서길 바라는 거야, 이 모든 것의 반대편에?
내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너와 함께 갔을 꺼야.
하지만 나는 나니까, 그만둬!
지옥엔 나 빼고 혼자가라,
아니면 나 혼자 가게 하던지!
왜 우리가 함께 가야하지?
내 팔 잡지마!
난 내 팔이 잡히는 게 싫어. 날 혼자 내버려둬.
벌써 말했다 시피, 난 혼자 있을 수 있어!
내가 사교적이길 바라는 게 정말 짜증이 난다!
오 내 유년시절과 같이 파란 하늘
공허하고 완벽한 영원한 진실이여!
오 온화하고, 조용한 조상의 타호 강,
하늘이 비치는 조그마한 진실이여!
오 슬픈 되찾음이여, 지난날의 리스본의 오늘이여!
너는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지, 내게 아무것도 받지 않았어, 너는 무엇도 아니고, 내가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이야.
날 평온 속에 내버려둬! 오래 머물지 않을 거야, 결코 오래 머물지 않을 거야 ...
침묵과 심연이 멈춘 동안엔, 난 혼자 있고 싶어!
-1923년
다시 찾은 리스본
-알바루 드 캄푸스
그 무엇도 날 붙잡지 못한다.
난 동시에 50가지를 원한다.
나는 고기를 잡히길 원하듯 간절하게 기다린다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위하여 -
분명하게 규정되지 않은 무언가를 ...
나는 잠을 설치고, 반쯤 꿈꾸며, 밤잠을 설치는 사람의
발작적인 꿈의 상태에서 살아간다.
내 얼굴의 관념적이고 필수적인 문들은 모두 닫혀있다.
내가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가정들엔 커튼이 가로질러있다.
나는 골목길을 찾았지만, 내가 지닌 주소는 아니었다.
나는 잠들었던 삶과 똑같은 삶에서 깨어난다.
내가 꾼 꿈의 군대가 패배하더라도.
내가 꿈을 꿀 때 패배감을 느꼈을 때라도.
단지 내가 지치길 바라는 삶이라도 –그런 삶이라도 ...
나는 간헐적으로 이해한다,
나는 피로함 속에 잠시 멈추고 쓴다,
지루함이 스스로 내게 밀려들어와 따분하게 할지라도.
표류하는 내 걱정에 어떤 운명이나 미래가 깃들어있는지 모르겠다,
어떤 불가능한 남쪽 바다의 섬이 조난자인 나를 기다리는지,
어떤 문학의 야자 숲이 내게 한 절의 시구라도 선사해줄지도 모르겠다.
아니, 난 모르겠어, 이것도, 저것도, 전부 ...
내가 꿈꿨던 모든 꿈을 꾸는 내 영혼의 깊은 곳에,
아무 이유 없이 기억했던, 내 영혼의 멀리 떨어진 곳에,
(그리고 과거는 헛되이 흘린 눈물의 안개이다),
내가 내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던
도로 위와 멀리 떨어진 숲의 오솔길 위에 -
그곳엔 아무 가진 것 없이 패배했던 꿈의 군대가,
신에게 전멸당한 내 존재하지 않는 군단,
혼란 속에서 도망치는,
마지막 환상 속 패잔병들이 ...
또다시 너를 보는구나,
두려워하며 잃어버린 내 유년 시절의 도시 ...
기쁘고 슬픈 도시, 다시 한 번 꿈꾸는 곳 ...
내가? 이곳에 살았고, 이곳에 돌아온 것은 나 자신인가?
계속해서 돌아오고 또 돌아왔던,
그리고 또다시 돌아왔던 나 자신인가?
아니면 여기에서 살던 나와 여기서 살던 저들, 우리는 모두 나인가?
기억의 실로 묶여 있는 일련의 진주 같은 실체들인가?
나의 외부에 있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 꾼 일련의 꿈들인가?
또다시 너를 보는구나,
마음은 더 멀어지고, 영혼은 덜 내 것인 채로 ...
또다시 너를 보는구나 –리스본, 타호 강과 모든 것들아-
너와 나 자신의 쓸모없는 구경꾼,
세상 어느 곳에나 있는 이방인,
내 영혼에도 삶에도 불쾌한 사건,
계속해서 살아야 할 저주받은 성인 추억 속에서
쥐의 소리와 부서지는 마루판 소리를 찾아
현관을 방황하는 유령 ...
또다시 너를 부는구나,
침묵에 가린 체 물속에 삼켜진 배의 항적같이
어둠이 다가오기 전,
으스스한 빛이 어슴푸레 비추는 일순간
그림자 속을 움직이는 그림자 ...
또다시 너를 보는구나,
오, 하지만 내 자신은 볼 수가 없어!
나를 항상 똑같이 비춰주던 마술 거울은 산산이 부서지고,
이젠 이 운명적인 파편들 안에선 오직 한 조각의 나만을 볼 수 있구나 -
한 조각의 너와 한 조각의 나만을!
-1926년 4월 26일
이 두 편의 '다시 찾은 리스본'에서는 페소아의 외로움과 유년기에 대한 향수를 볼 수 있다.
페소아의 외로움은 불우한 가정사에서 출발한다. 그가 겨우 5살일 때 아버지가 결핵으로 사망했고, 이듬해에는 그의 어린 남동생이 죽고만다. 그때의 충격과 외로움을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주위에 허구세계를 만들고, 존재하지 않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둘러싸여 지냈다고 한다. 최초의 이명이라고 할 수 있는 '슈발리에 드파'라는 아이와 편지를 주고 받은 것도 이 시절이라고 한다. 장례식과 집에는 정적만이 감돌았고, 심지어 할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이후 페소아는 남아공의 포르투갈 영사였던 의붓아버지 주앙 미겔 호자에게로 떠나 사춘기 시절과 청년기를 타지에서 보내게 된다. 남아공에서 살던 시기 페소아 사진들은 하나같이 쓸쓸하고 초조해 보인다고 한다. 또한 이후 작품들에서 이 시기는 철저하게 언급하지 않는 등 의도적으로 잊고 싶던 시기였다. 그는 항상 아무도 죽지 않고 행복했던 어린 리스본을 그리며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리스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다시 돌아온다. 분명 유년기에 대한 향수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포루투갈 내에서 이질적인 존재였다. 체코에 사는 유태인자, 독일어를 하는 카프카처럼, 페소아도 자기 조국인 포르투갈 내에서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그러면서 현실에 뛰어들지 못하는 무능함과 모든 것이 쓸모없다는 느낌, 남들과 다르다는 이질감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그의 기억 속 오염되지 않은 기억인 리스본은 반복될 수 없는, 되찾을 수 없는 리스본이 었던 것이다.
이런 페소아의 외로움과 유년기에 대한 그리움은, 그가 리스본으로 돌아와 거의 20년이 흐른 뒤, 캄푸스의 입을 빌려 고백된다. 타인들을 거부하며, 홀로 외로이 어린 시절의 혼상 속에 잠기는 모습(1923)과 기나긴 표류 끝에 다시 돌아왔지만, 이미 모두 변해버렸고, 산산 조각나 돌이킬 수 없는 어린 시절의 환상을 보며 괴로워하는 모습(1926)은 굉장히 가슴아프게한다.
카에이루를 옮길라고 했는데, 카에이루보단 캄푸스 시가 더 재밌으니까 이거 먼저 헀다. 아무튼 좋다.
다시 찾은 물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