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현대인의 세계를 날카롭게 파악한, 단순명쾌한 아포리즘이다.
예전에 교수님과 함께 부산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학회가 끝나고 교수님을 위시한 지도제자 몇몇과 함께 해운대로 산책을 나갔다.
네온사인 밑을 거닐며 곁을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정말로 내게 신으로 비쳤다.
늘씬한 여자들과 키크고 듬직한 남자들, 굉음을 내지르며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들.
나는 스스로가 쪼그라들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사라지고픈 기분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할 지도.
어떻게든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었으나, 스스로가 가치있다고 할 수록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점점 스스로가 비참해짐을 느꼈다.
그곳에서 내가 쌓아왔던 노력들은 티끌만치의 가치도 없는 것들이었다.
루카치가 어떻고, 벤야민이 어떻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정말로,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순간 대학교 새내기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촌티를 풀풀 풍기며 뭐가 뭔지도 모른채 여기저길 두리번 거리던 어수룩한 소년,
머리 손질이라고 전혀 하지도 않은 부스스한 머리의 여드름 투성이 소년.
그때로부터 8년이나 지났건만
해운대에서 난 내가 어릴적 그대로임을 발견했다.
나도 안다. 내가 남 눈치나 보면서 사는 인간이란걸.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돈많은 놈이 부럽다. 나도 졸부처럼 돈을 펑펑 써대고 싶다.
멋진 남자가 부럽다, 그들이 받는 시선을 단 한번이라도 받아보고 싶다.
예쁜 여자를 내 소유물인것 마냥 사람들 앞에서 뽐내고 싶다.
적어도 내가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이러한 '욕망의 삼각형'에서 벗어날 순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어디 촌으로 도망쳐야 하나? 거기에는 자본주의의 손길이 닿지 않는가? 그냥 자살이라도 해? 아니 그건 무서워서 못한다.
꼴에 죽는건 무서운지라 오래오래 살고 싶은게 내 가장 큰 소망이다.
큰일이다 큰일...
한가지 위안이라면, 그 해운대에서 내 눈에 가장 빛났던 신은 나의 교수였다는 것.
욕망의 폭풍우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꼿꼿이 걸어가던 그 분의 뒷모습만이 내 유일한 위안이자 희망이었다.
아마 지금 나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더 심한 결핍의 상태에 놓여있었을 것이다.
돈이나 악착같이 벌어서 성형괴물이 되어 매일 거울이나 들여보며 사는 그런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일년 365일 남과 나를 비교해가며 나보다 잘난놈은 빨아제끼고 나보다 못한놈은 경멸하는 그런 벌레같은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 이게 내 유일한 위안이다.
문제는 인문학 전공으로 국내건 해외건 명문대 박사를 따도 교수가 되기 힘든 게 현실. 교수는 고사하고 그냥 정규직에 종사하는 자가 전체 인문학 박사의 10퍼센트 미만. 이거 언젠가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아옼ㅋㅋㅋㅋㅋㅋㅋㅋ감성 터져서 글썼는데 존나 냉철하게 내 현실분석해주고 있네
ㄴ 인문학적 작업 자체가 냉철한 현실 분석 아닌가. 그것도 그 분석을 자국내 동일 전공자 중 상위 5퍼센트 이내로 고품질로 해야하지. 현재 인문계열 수능 최저 점수가 대개 철학 따위인데 실상은 최고점 학생이 가야 하는 게 철학과. 거 왜 미국 코미디언 유명한 사람이 미국 초절정 명문대 졸업식 가서도 인문학 전공자들은 취업하려면 고대 그리스로 가라는 개드립을 친 적 있지. 아마 거기 줄업생들 그 개그에 웃긴 했지만 그 웃음이 웃음이 아니었을 것.
나는 이글을 보고 글쓴이 지도교수가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함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하는데. 글쓴이에게 그렇게 비친 교수님도 자기 마음 속으로는 글쓴이와 같은, 이를테면 범속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럼에도 누군가에겐 '신'으로 보일 수도 있고 동시에 그걸 결코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게 너무 재미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