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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자기를 정당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 남들이 자기에 대하여 품고 있는 생각이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진실을 혼자서만 간직한 채 죽는다 - 그같은 위안의 헛됨. <알베르 카뮈, 『작가수첩(제 1권)>


이방인에서 독자를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그것은 뫼르소가 보여 주는 비사회적 태도일텐데

왜 카뮈가 그 태도를 이 소설의 테마로 장식했는지, 이방인 집필을 위한 작가수첩에서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문학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람들을 가장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건 나의 인식과 타인의 인식 그리고 더 확장해 사회의 인식이 서로 맞지 않고 엇갈린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 A란 사람이 나에 대해 <너는 이런 사람일 것이다>라며 은연 중에 자신의 의견을 내비칠 때

그 의견의 근거를 A가 가지고 있다 하고 어느정도 그것이 맞아, 나는 그 의견에 일정 부분 동의하더라도 모든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 A보다 내가 내 자신을 더 잘 경험했고 잘 느꼈기 때문


그렇지만 타인이 나의 존재를 규정지어 버릴 때 나는 그것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 건가? 나는 나라고 외쳐도

상대방은 결코 자신의 의견을 바꾸지 않을 거다. 그 사람의 인식의 범위에서는 나는 이미 그 정도의 모양만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나는 나라는 명제가 틀린 거고 상대방의 나가 사실은 맞는 걸까?

그리고 이게 단지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한 명에게만 적용되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타인들과 조우하기에 

나는 오직 1명으로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만 변하지 않을 뿐, 내가 감당해야 할 사람의 숫자는 죽지 않는 한 늘기 마련이다.


사실 이걸 적고 싶었던 이유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1권 - 스완 댁 쪽으로>를 읽다가 스완의 모습에서 뫼르소가 생각이 나서 


"..우리 삶의 가장 하찮은 것들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들은, 모든 이들이 보기에 똑같고 그리하여 누구나 입찰 안내서나 유언장처럼 확인할 수 있는

전적으로 물질로만 구성된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다른 이들의 생각이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람 하나를 본다'고 하는 그 단순한

행위조차도 부분적으로는 지적인 행위이다."


"(지금의 스완의 모습이 아닌 옛날의)그 첫 번째 스완에게로 건너가려 할 때면, 내가 마치 한 사람을 떠나 전혀 다른 사람에게로 가는 것 같다"


아직 잃시찾 초반부만 읽어서 이러쿵 저러쿵 할 수는 없지만 

스완이라는 사람은 착한 사람 같은데, 상속자로서 사교계에서 이름이 날려져 있지만

화자의 가족들 입장에서 스완은 여전히 시골 촌 시절 소년으로서의 이미지로 굳어져 있고 대고모란 사람이 스완을 뒷담 까는 걸 보면서

많은 걸 느낄 수 있었음 

반대로 사교계에서는 스완을 다르게 볼 것이고

그렇다면 스완이 보는 자기 자신은?


그리고 가장 진짜 궁금한 건 ...

그렇다면 뫼르소처럼 1. 타인의 인식에 일일이 대응하지 말아야 하는건가? 아니면, 2. 타인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는건가? 근데 실패한다면? 그리고 그 노력을 무슨 방법으로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