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절 의혹이 제기됐을 때 ‘우국’이란 작품을 모른다, 작가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니 대응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이 독자들의 분노를 샀는데요.
“올 3월부터 제주도 산간지역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2010) 이후 오랫동안 작품을 못 썼고, 올해는 등단 30년 되는 해니까 꼭 새 책을 쓰고 싶어서 집을 떠나 있었어요. 핀란드에서 <엄마를 부탁해> 번역본이 나와 그곳을 방문했다 돌아와서 다시 제주도로 가려는데, 창비에서 연락이 왔어요. 오래전에 한 번 겪은 일이어서 15년 전과 같은 생각으로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어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어느 작가인들…. 내가 나에 대한 비판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았고 못 읽어요. (비판이) 아주 많아요. 어떻게 읽겠어요. 그걸 읽고 감당할 자신이 없고, 기분만 나빠지고, 어떤 글은 뼛속까지 속이 상하는데요.”
- ‘전설’ 이외에도 <기차는 7시에 떠나네>(장편), ‘작별인사’(단편) 등 1990년대 말의 작품과 심지어 최근작인 <엄마를 부탁해>나 <어디선가…>에 이르기까지 표절 의혹이 이는 상황입니다.
“나는 16살에 시골집을 떠났기 때문에 엄마를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른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그것이 표절인가요. 내용이 비슷하다는 루이제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중학교 다닐 때 읽기는 한 것 같아요. 책을 읽고 소설을 쓰는 게 내 일이에요. 그런데 어떤 소설을 읽다보면, 어머 어쩌면 이렇게 나랑 생각이 똑같을까 싶은 대목이 나와요. 심지어 에피소드도 똑같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동서고금을 떠나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구나, 반가운 기분마저 들어요. 나는 문학하고 나하고 따로따로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글 쓰는 게 너무 자연스럽게 시작된 일이고, 어떤 목적도 없었어요. 쓰고 읽고 또 쓰고… 어렸을 때부터 노트에다 썼어요. 책 속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 문학은 뭔가 모자라고 결핍되고 못난 사람들 편이었어요. 약하고 두려운 마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편이었던 게 좋았어요. 나 같은 사람들이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이구나, 그런 생각.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내 소설 속에 들어와 자기 빛깔을 갖고, 읽는 사람들한테 빛을 던지고, ‘나도 이런데’라고 말하는 상황, 그런 게 내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 ‘무거운 새의 발자국’ ‘풍금이 있던 자리’ 등 1990년대 초반에 쓴 단편 제목이 시 구절에서 따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시에서 제목을 따오는 일은 당시 문단에서 종종 있던 일입니다. 시인이 제 친구였던 경우도 있고. 서로 흐뭇하게 얘기하면서 양해했던 일이지요. 만약 그게 잘못된 일이었다면, 혹시 섭섭한 마음을 가졌다면 제가 잘못 살아온 것 같아요.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 늘 살얼음판 디디듯 조심스럽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나봐요.”
-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처음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모두 제 탓입니다. 습지가 없는데 왕골이 돋아나겠어요. 문장을 대조해 보면서 이응준씨가 느닷없이 왜 이랬을까, 의문을 안 갖기로 했어요. 대조해 보는 순간 나도 그걸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전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쇠스랑이 있으면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 많은 독서, 특히 필사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외워진 문장을 자신의 문장으로 오인하는 전이의 가능성도 제기됐는데요.
“글쎄요. 어떤 소설을 한 권 쓰면, 그것은 온전히 그 사람만의 생각인가요? 내가 태어나서 엄마를 만나는 순간부터 엄마는 내 안에 들어와서 말과 행동에 영향을 주잖아요. 인간이 겪는 일들이 완전히 다르지는 않은데, 같은 이야기라도 내가 쓰면 어떻게 다르게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내 글쓰기였어요. 그리고 나만의 문장을 쓰려고 늘 노력해왔어요. 쓰고 고치기를 반복해요. 오랜 세월이 지나 책 표지가 떨어지고 너덜너덜해도, 문장을 읽어보면 신경숙 소설이구나 싶은 글을 쓰려고 했어요.”
- 일부에서는 절필 권유도 있습니다.
“나한테는 첫 책부터 따라 읽어온 독자들이 있어요. 22살에 등단해 30대, 40대를 그들과 함께 보내고 50대가 됐어요. 비난을 자주 받아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그것도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15년 전, 그런 구설과 비난에 처했을 때는 특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한 편의 비판글이 나오면, 그걸 읽는 대신 내 책상으로 돌아가서 한 편의 소설을 더 썼어요. 나는 작가다, 작품으로 말하겠다, 대응하는 것보다 작품을 쓰는 것이 내 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난 문학에 은혜를 입고 문학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비난을 받고 자꾸 자기검열을 하면서 앞으로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절필은 못할 것 같아요. 르 클레지오가 말했듯이 작가에게는 모국어가 조국이에요. 나는 모국어를 떠나서는 살 수 없어요. 내 땅이 문학이기 때문에 땅에 넘어지면 땅을 짚고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 독자들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입장 표명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모두 내 탓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 소설이 착하기만 하고 현실을 수용한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어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아름답다는 것을 내 문장으로 증거하고 싶었고, 내가 느끼는 온기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 내 독자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작가로서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지난 30년 동안 장편소설 7편, 중·단편 48편(200자 원고지 2만장 분량)을 썼어요. 부지런히 썼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많지도 않은 것 같아요. 같은 소설을 읽고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할 때, 서로 다른 소설을 읽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내려놓을 수 있는 건 다 내려놓겠어요. 밖에 나가지 않고 내 책상으로 돌아가겠어요. 발표하지 않고 항아리에 넣어두더라도.”
소설가라 그런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자기합리화는 참 잘함.
표절 자체는 하나도 인정 안하고 걍 우연의 일치로 퉁치고 넘어가는 것 보면 양심은 나가뒤진듯.
독갤러들은 남이 피땀흘려 만든 창작물에 대한 존중 따윈 눈꼽만큼도 없는 작가 작품은 읽지 않도록 하자.
안 보여 - dc App
이제 보임?
사실 표절작가가 글을 계속 쓰는 건 그 사람 마음이고, 출판사도 굳이 표절작가의 책을 내주고 싶으면 내주면 되는거고, 독자도 굳이 표절작가의 글을 돈 주고 사서 읽고 싶으면 읽으면 되는건데 내가 볼 때 문제는 1. 글이 아니라 표절작가가 문학계에 미친 영향력을 어떻게 제거하고 치유할 것이냐와 2. 굳이 표절작가에게 언론, 방송을 통해 변명의 기회를 열어줘야 하는가에 있는데 2번이야 돈벌이에만 급급한 언론이 조회수 높일려면 당연히 달려들테고, 난 잘 모르지만 소위 문단이라는 곳이 1번에 대해선 어떤 노력을 해볼려는 기미조차 안 보여서 욕을 먹는거 아님?
내가 한국문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긴 하지만, 신경숙급 네임드 작가가 표절 까발려진건 첨인거 같은데 이후로도 문학계 자체적으로 제대로 된 입장표명도 없고, 앞으로 표절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논의 조차 제대로 안 나오는거 보면 한국 문학계는 멀었구나 싶음. 같은 업계 사람이라고 쉬쉬하고, 덮고 넘어가려는거 보면 신경숙 표절사건은 우리나라 문학계가 그냥 고인물판이라는거 인증해준 것밖에 안 됨... 신경숙 뿐만 아니라 모두가 좀 부끄러운 줄 알면 좋겠다.
누가 보면 대단한 오해나 받았던 줄 알겠네. 비평계와 독자가 얼마나 우스웠으면 저런 소릴 할까. 비평계는 자신이 던져주는 부스러기로 연명하는 상 아래의 개. 독자는 유행따라 혹은 서 푼도 안되는 가상의 위로나 힐링이나 얻으려고 곧 죽어도 자기 책 읽어줄 호구로 보였으니 저런 처신이 가능하겠지.
글쓰는것밖에 못하니까 절필 못하겠단건 그냥 배째란 소리밖에 더돼?근데 또 미안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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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작가 작품 읽는건 개인의 선택이지만, 만약 너가 진심 신경숙팬이라면 니가 감명받은 그 사람의 작품이 남의 소중한 작품에서 맘대로 떼어온 누더기라는데 실망감은 없어??
더군다나 표절의 당사자는 자신이 표절한 작품의 창작자에 대한 일말의 배려나 사과 조차 없고, 저렇게 당당하게 표절을 합리화하는데
제대로 된 인정과 사과를 하지 않아서
신경숙이 지금도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 아닐까? '아하하 한국이 30년전에는 그렇게 구렸지', 하고 넘어가야 할텐데, 저런 표절작가를 덮어버릴 만큼 한국문학의 질적 양적 퀄리티가 안된다는 것이 진짜 심각한 문제일거야.... 딱 신경숙 떴을 때, 왕가위 영화 열화버전으로 찍어놓고서 독창적 천재인척 한 영화감독이 있지 않았나? 한국영화계는 이름도 기억못하는 작품과 작가. 지금 영화계사람들은 '그 때 정말 구렸어, ㅋㅋㅋㅋ' 하며 웃어넘길거야.
동감합니다
오 - dc App
근데, 한번 생각해봐. 그 때 그 영화감독이 씨제이와 손잡고, 존나 대가인것처럼 굴며, 저는 예술만 생각합니다. 전국민은 입닥치고 존경하십쇼.... 나타나는 꼴을 말이야. 아. 90년대 방화수준의 영화만 30년동안 나왔을 때, 가능한 일이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한국문학.
오 - dc App
이 정도 자정작용도 없는 게 한국 문학의 현주소라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