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이야기가 비현실적이든 현실적이든, 규모가 크든 작든, 교훈이 있든 없든간에 상관없이.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사람을 죽인다는 의미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강제로 앗아가 마무리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관점은 작품 안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격이자 살인마이기도 한 페리 스미스의 말로 긍정된다. "내 친구 월리제이가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 그 친구는 모든 범죄는 단지 '절도의 변형'일 뿐이라고 말하고는 했었어. 살인도 포함해서.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빼앗는 거지." 살인범 페리 스미스와 딕 히콕이 사형을 구형받은 후, 페리의 평소 심성을 변호해 주기 위해 먼길을 달려온 옛 친구에게 페리가 한 말이다.
이 발언은 일견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깊히 뉘우치지 않았기에 나온 발언으로 볼 수 있지만, 이 재판의 진행과정이 피해자들이자 고인들인 클리터 가족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을 보면 재판에 대한 불만과 체념으로 해석될 여지 역시 존재한다. 판사는 두 살인마의 정신 감정을 한 의사를 경계했고, 두 사람 다 정신 이상의 징후가 보였다는 의사의 의견을 의도적으로 축소시켰다. 또한 배심원단을 동네의 지주이자 선인이었던 클리터 씨에게 온정적인 사람으로 채워 넣었으며, 페리와 딕의 평소 성품을 옹호하는 증인들의 이야기를 잘라 배심원단에게 편향적인 선택을 종용했다. 물론 이 살인마들이 일면식 없는 일가족을 돈이 궁핍하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살해한 것은 큰 잘못이고 사형 구형이 마땅히 주어져야 할 악인들임은 명확하지만, 법의 잣대 역시 그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게 작용되었고, 페리와 딕은 결국 13계단을 올라간 후 교수형을 당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명하다. 제목인 냉혈한은 클리터 일가족을 잔인하게 살인한 페리와 딕에게 당연히 해당되는 말이지만, 또한 페리와 딕의 '이야기를 강제로 앗아가 마무리한' 판검사, 더 나아가 그들의 어린 시절 그들을 학대하고 핍박한 사회 전체에도 해당되는 말이라는 것이다.
글 자체도 수려하게 잘 썼고, 딕과 페리의 심경 묘사에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소아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과감하고 타인에게 쉽게 호감을 사나 사형이 확정된 후 동료인 페리를 탓하고, 부모님에 대한 걱정 등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다가 웃으며 교수대에 올라간 딕 히콕, 평소 조용하고 점잖으며 예술적 소양을 가지고 있으나, 학대를 당한 경험 탓에 어느 순간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페리 스미스에 대한 성격 묘사와 행적에 대해 상세하고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것에 성공했다. 특히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 소설인 만큼, 폭 넓은 자료 조사와 열성적인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범죄자, 형사, 판사, 간수와 간수 부인, 피해자의 지인 등 소설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살인 사건과 살인마들에 대한 나름의 태도와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태도가 공감되도록 설득력 있는 에피소드를 각자에게 부여함으로써 명작 논픽션 소설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다만 논픽션 소설이라는 장르는 커포티에게 찬사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시선 역시 선사하였다. 카포티 사후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소설 내에서 유능한 형사로 나오는 앨빈 듀이가 자료를 조사하는 카포티에게 일반인이 열람할 수 없는 자료를 제공하는 등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긍정적인 시선으로 그려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외에도 두 살인마인 딕과 페리 중 작가가 페리와 정신적인 교감을 많이 했기 때문에 딕에 대한 묘사는 페리에 대한 묘사보다 훨씬 부정적으로 그려졌다는 딕의 유가족들의 항의 역시 존재했다. 논픽션 소설이라는 장르를 기틀로 그의 자료 조사와 현실을 존중하는 범주 안에서의 상상력과 필력을 양분 삼아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었지만, 반대로 작가의 개인적인 인상으로 인해 현실과 다른 묘사나 개인적인 사견이 강하게 들어가 특정 인물이 필요 이상으로 좋은 묘사를 받는 등 '논픽션'이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비평도 듣게 되었다. 카포티의 이러한 행적을 비판 내지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진정한 냉혈한은 작가가 의도한 살인마들도, 살인마들에게 가혹했던 사회도 아닌, 바로 현실을 왜곡해 부당한 부와 명예를 얻은 트루먼 커포티라고...
재미있는 이야기다. 작가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에 본인 역시 그의 기준에서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아이러니함이 이 책을 읽은 후 개인적으로 생각할 여지를 준다. 첫 문단에서 이야기한 '모든 이야기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관점으로 보면, 커포티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마무리하였으나, 사후 그의 행적에 대한 의구심과 소설을 공정한 시선에서 이끌어가지 못했다는 진실성에 대한 의문 때문에 그가 끝낸 이야기를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커포티가 의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 콜드 블러드가 나름의 끝을 맺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작가의 중립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사건의 진위여부가 확실히 밝혀질 때까지는 이 소설이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오히려 난 '논픽션'이라 아이러니해서 더 좋았음 ㅋㅋ 좋은 책은 생각할 여지가 많은 책이라고 생각해서
물론 작가가 의도한 사항은 아니지만
인콜드블러드 정말 좋은데 생각보다 언급이 없더라
영화도 괜찮게 잘 빠졌음. 베넷 밀러 감독의 영화도 꼭 보셈
찾아보니까 2006년작이네 생각해봄 ㄱㅅ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