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문학의 세계적 수준관 - 역사의 짧음을 탄식 -


조선문학의 역사를 회고하여 보면 짧습니다. 


매월당, 이인직의 시대를 지나서 비로소 신문예운동이 있었으니 이럭저럭 줄잡아도 약이십년이 될까말까 합니다. ( 앞 줄의 "문학" 과 "문예"는 다른 것임, 이광수는 창작을 제외한 문예 비평이나 그 외 기타한 글들을 포함한 넓은 개념으로 "문학"을 사용하였고 "문예"는 창작에만 국한된 의미로 사용하였음. )


이 이십년의 어린 역사를 가지고 영, 불, 로(러) 등 수백년 수천년의 문예사를 가진 여러 선진문화국가에 비한다 함은 억지에 가깝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문단은 연약한 느낌을 자체로 앉아서 안 가질 수 없읍니다.


따라서 우리 문단에 계신 여러 작가의 춘추를 보면 모두 삼십대, 나이를 먹었대야 사십대의 인들이외다.


삼십, 사십의 젊은 년대에 있는 작가가 "인생"과 "세사"를 보고 느끼면 얼마나 깊이 느꼈겠읍니까.


천재는 연령을 초월한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것은 특수한 예외다.


외국의 작가들을 보아도 만인을 감격케 하던 수작이란 대개가 노성한 뒤에 된 것이더이다. 


톨스토이도 청년시절에 몇 가지 작품을 쓰기는 썼지만 정말 성숙한 대작인 "부활" 이나 "안나 카레리나"나 정쟁과 평화"같은 것은 육, 칠십의 노후의 일에 속하였읍니다.


토마스 하아디나 버어나아드 쇼오도 마찬가지지요.


그밖에 누구누구 하여 문학사상 불후의 명저를 내보낸 작가들치고 사, 오십을 훨씬 넘지 않은 이가 있었읍니까.


문학은 "고민의 상징" 이라고 말한 이도 있거니와, 진실로 인생에 대하여 연구하고 고민하는 거기에서 예술이 생깁니다.


깊은 연구와 깊은 관조와 깊은 고민이 없이 되어진 문학은 일시는 세하의 인기를 얻을 수 있겠지만, 수백대, 수천대로 흐를 작품이 못됩니다.


이 고민과 관조와 연구는 반드시 세상의 온갓 맛, 온갓 모습을 거쳐 낸 춘추에 부한 이의 손으로 되기가 십팔, 구일 줄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조선문학은 영, 불, 로(러) 등에 대비도 할 수 없게 수준이 낮으냐 하면 나는 그렇게는 보지 않습니다.


가령 김동인씨의 "태형"이나 "감자"같은 것은 비록 기교에 있어 유치한 점이 있다 할지라도 영, 불어로 번역되어 저쪽 문단에 갖다가 놓을지라도 일류작가의 작품에 결코 뒤떨어지리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시단, 소설단에 외국문단에 비하여 손색 없는 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특수한 예지요.


조선문단 전체를 들어 어느 외국의 문단에 비한다면 아직은 질로나 양에 있어 수보가 뒤져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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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형 전집보다가 중간중간에 라노벨 비스무리한 문학책들 까는거 하고 결론이 아무리 봐도 독붕이라서 필사? 타사? 해옴


너희들.. 그렇게 광수형을 욕하더니 어떻게 그렇게 광수형이랑 생각이 비슷한거야! 거진 백 년 전에 광수형이 한 얘기 또하고 또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