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대와 중세의 사상가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쳤지만, 이제는 잊혀진 책 <티마이오스>를 집어들었습니다.
뉴턴과 다윈 이후 버림받은 책이죠. 이런 구닥다리를 왜 읽냐? 라고 물으신다면, 그냥.. 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우리는 쓸모없는 걸 읽고 즐길 자유가 있으니까요. 다음은 앞부분 인용. (박종현 역 p.7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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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d - 28b (원문 위치)
그러니까 제 판단으로는 먼저 다음 것들이 구분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되 생성을 갖지 않는 것은 무엇이고, '언제나 생성되는 것'이되 결코 존재(실재)하지는 않는 것은 무엇인지 말씀입니다. 분명히 앞엣것은 '합리적 설명(logos)과 함께하는 지성에 의한 앎(이해)'에 의해 포착되는 것으로서 '언제나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인 반면에, 뒤엣것은 '비이성적인 감각'과 함께 하는 의견(판단:doxa)의 대상으로 되는 것으로서, 생성 소멸되는 것이요,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데, 생성되는 모든 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원인이 되는 어떤 것에 의해 생성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원인 없이는 생성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만드는 이'(demiourgos)이건 간에, 그가 '언제나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을 바라보며, 이런 걸 본(paradeigma)으로 삼고서, 자기가 만드는 것이 그 형태(모습:idea)와 성능(dynamis)을 갖추게 할 경우에라야, 이렇게 완성되어야만,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하지만 그걸 만드는 이가 이 생겨난 것을 바라보며, 이 생성물을 본으로 삼는다면, 그건 아름다운 것이 못 됩니다.
바로 '온 천구'-혹은 이를 우주(세계:kosmos) 또는 도대체 그 밖에 다른 무슨 이름으로든 그렇게 부르는 것이 제일 받아들여짐직한 것이면, 그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죠-에 관한 고찰을 함에 있어서는, 그러니까 모든 것과 관련해서 처음에 탐구해 마땅한 것부터 먼저 해야만 합니다. 즉 그것이 그 어떤 생성의 시초(arche)도 갖지 않고 언제나 있었는지, 아니면 어떤 시초에서 시작해서 생성을 보았는지를 말씀입니다.
그것은 생성되었습니다. 그것은 볼 수 있고 접촉할 수도 있는 것이며, 몸통(몸:soma)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은 감각에 의해 지각될 수 있거니와, 감각에 의해 지각될 수 있는 것들은 감각과 함께 판단(의견:doxa)에 의해 포착되는 것들로서, 생성되는 것들이며 생겨날 수 있는 것들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성되는 것은 원인이 되는 어떤 것에 의해서 생성되는 게 필연적이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그런데 이 우주의 창조자(만든 이)와 아버지를 찾아내는 것은 힘든 일이거니와, 찾아낸다 하더라도 모두를 상대로 이를 말해 준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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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의 내용은 이 책의 서론 부분이며,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창조론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세계와 그 안의 사물들은 모두 누군가 만든 것이며, 어떤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졌고, 그 설계도는 이데아다. 이데아는 형태과 기능을 담고 있다.
만약 그 설계도가 이데아가 아닌 구체적 사물들이라면, 세계는 그렇게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세계는 아름답기 때문에 이데아가 있어야 한다.
영원불멸한 존재야말로 <진짜로 있는 것>이며, 그것이 이데아다. 이데아는 logos로만 파악된다.
구체적 사물들은 감각 경험으로 파악되고 doxa로 말하며, 모두 생겨났다 사라진다. 그것들은 모두 가짜다.
세계는 감각 경험으로 파악되므로, 영원불멸한 것이 아니며, 어느 순간 생겨난 것이다.
세계 안의 사물들은 모두 원인이 있으므로, 그 원인을 거슬러올라가면, 모든 것을 만든 창조행위가 있어야 한다. 창조행위가 있으려면 창조자가 있어야 한다.
대충 이런 얘깁니다.
더 쉽게 말하면, 지금 산과 들과 바다로 나아가, 가만히 앉아 그 안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생각하는 겁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냥 생겨난 건가? 아니면 누가 만들었나? 이렇게 아름다운데 저절로 생겨났다고? 에이, 누가 만들었겠지.
그게 누구냐고? 음.. 그건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걸 만든 누군가는 분명 있을 거야.. 이걸 대체 어떻게 만들었지?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은 언제까지나 이렇게 아름다울까? 그럴 수 있으려면 무엇이 어떻게 있어야 하나?
아마, 2천년 전의 고대인들도 지금 여기의 나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었겠지요. 지금의 나 역시 그간 발달한 자연과학 등의 지식이 없이 백지 상태에서
골똘히 생각한다면, 이 책의 내용과 비슷한 식으로 생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2.
본론 부분으로 가면, 세계의 창조와 생성, 천체의 움직임. 인간의 영혼. 4원소설로 보는 세계의 근본 요소와 운동. 감각적 지각. 인간의 몸과 질병.
이런 얘기들이 나옵니다. 고대 버전의 물리학 + 영혼론 + 의학 정도 되겠습니다.
책 내용의 뿌리를 대강 보면, 피타고라스 + 헤라클레이토스 + 엠페도클레스 + 고대의 각종 잡다한 경험과학적 지식들 + 신화로 전해져온 이야기들 입니다.
지금 보면 우스운 얘기들이 많습니다만, 뉴턴 등장 이전까지 서양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책의 얘기들을 진지한 사실로 생각하였고,
그 <사실>을 기반으로 각종 철학과 사상을 만들어냈습니다. 거의 2천년간 진실처럼 받아들여진 책이라고 보면 됩니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 -> 디오니시오스 아레오파기테스 (가짜 디오니시오스) -> 중세의 각종 철학들.
이렇게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플로티노스의 사상은 중세의 모든 생각들을 사실상 지배했다고 보면 됩니다. 중세 기독교 및 이슬람 신학의 논리적 뿌리이기도 하고..
플로티노스의 영향에서 유럽인들이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14세기부터의 인문주의 운동으로 인하여, 수도원에서 잊혀진 고대 문헌을 발굴하고,
동로마 제국 멸망 시기에 넘어온 학자들로부터 그리스어를 직접 배우고, 고대 그리스 고전을 직접 해독하고 번역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그 이전 서양에서, 거의 모든 철학과 사상들은 플로티노스의 사상을 기준으로 해석되고 적용되었습니다.
이 책은, 서양 고대인과 중세인들이 보는 세계는 어떤 것이었나? 그들의 경험과 생각의 뿌리에 무엇이 있었는가? 라는 점을 더듬어 볼 때 읽을만한 책입니다.
정암학당 미만 잡
꼼꼼하게 읽고 있군열ㅋ 추천 꾹욱!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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