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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연성 따위 쌈싸먹은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있다. 개연성이 소설을 이루는 유일한 요소도 아니고, 우선되는 요소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소개하려는 김언수 작가의 캐비닛 역시 그러한 작품이다. 개연성을 제일 마지막에 두거나,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은 소설 말이다.

  (대충 So it goes)



작품의 화자는 178일 동안 캔맥주를 마셔대고 하릴없이 캐비닛 속 파일들을 정리하는 삼십대 직장인. 평범하기 그지 없는 그의 낡은 캐비닛은 온갖 기이한 존재들로 가득하다. 172일 동안 자고 일어난 토포러들, 잃어버린 손가락 대신 만들어넣은 나무손가락에 살이 붙고 피가 돌아 육질화되어가는 피노키오 아저씨,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지고 태어나 스스로 임신까지 하는 네오헤르마프로...작가는 이들을 '심토머'라 부른다. - 알라딘 작품 소개 中...줄거리 적기 귀찮아서 ㅎ



  김언수 작가를 참 좋아하는데, 그의 작품을 읽으면 이 사람이 통이 존나게 큰 사람이구나...라는 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나 그가 잡는 스토리의 스케일, 등장 인물의 독특함, 묘사의 진득함이 이런 생각을 일으킨다.

이는 첫 페이지부터 느낄 수 있다.



"아빠, 화장실에 있을 때가 아니에요. 방금 화산이 터졌단 말이에요." 따위의 긴급한 경고를 가족들에게 할 새도 없이, 늙고 힘이 빠진 남편에게 "이번 세상에선 어쩔 수 없어 같이 살았지만 다음 세상에선 제발"같은 눈물 어린 작별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어들이거나 벌거벗은 몸으로 죽지 않기 위해 욕조에서 빠져나와 가운을 걸칠 틈도 없이, 상피에르 사람들은 그렇게 변기에 앉은 채로, 욕조에 누운 채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로, 의아하고 어리둥절한 눈을 미처 감지도 못한 채로 밀려드는 화산재 속에 순식간에 파묻혀버렸다.



  Power가 느껴지십니까? 이런 텐션으로 쭉 달린다. 앞으로 나올 상황들은 더 기상천외하다. 외설적이고, 잔인하고, 씁쓸하다. 아무튼 앞에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개연성 따위 안중에도 없는 소설이다. 그저 작가는 작가 자신의 삶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인생의 이야기를 하는데 개연성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작가의 생각과 통 큰 필력이 만났을 뿐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작가의 말을 보면 작가의 인생사가 조금 드러난다. 결혼하기 위해 문학상을 타야 했고, 그것을 타기 전까지는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거나 고시원에 묵으면서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며 살아왔다고 한다. 아아...당신은 도대체?



  언젠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런 글을 본 기억이 있다. 웃긴 말 하는 아저씨들은 실은 ㅈ같은 인생을 존나 잘 풀어내는 재능꾼들이라고. 아마 이 작가도 그런 맥락 아닐까? 

  물론 나는 작가의 자세한 삶의 이력을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읽어보길 추천하고, 소개하고픈 부분을 보여주고 끝내본다.






"자고 일어났는데 아무것도 없어요.

통장도 사라지고,

주식도 사라지고,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마누라도 떠나갔어요.

제 삶은 완전히 황폐함 그 자체입니다.

저는 이제 어떡하죠?"



















"다시 한잠 푹 주무십시오.

그러면 새 삶이 시작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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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김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