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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브란덴부르크만 있었다. 
-크리스토퍼 클라크, 《강철왕국 프로이센》, 박병화 옮김 (서울: 도서출판 마티, 2020), 첫 문장

결국 브란덴부르크만 남았다.
-크리스토퍼 클라크, 《강철왕국 프로이센》, 박병화 옮김 (서울: 도서출판 마티, 2020),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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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개혁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유럽을 만들어냈다는 말로 서두를 열었다. “대관절 종교개혁이 우리를 위해 무얼 했는가?”라는 수사적 의문을 제기하는 회의론자는 종교개혁의 기념비적인 성취—근대 자본주의, 정치적 자유 개념, 과학의 발전, 마술과 미신의 쇠퇴—를 열거하는 장황한 답변을 들을 공산이 크다. 이 모든 성취는 오래전부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낳은 조숙하고 다루기 힘든 자식으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리 명확하지 않으며, 종교개혁이 근대성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는 생각은 혈통과 양육에 관한 골치 아픈 물음을 불러일으킨다. 종교 운동으로서 종교개혁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문제들이 아니라 해묵은 문제들과 씨름했으며, 루터는 만약 근대가 그를 상대로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한다면 격렬히 부인할 것이다.

-피터 마셜, 《종교개혁》, 이재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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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는 거친 매력이 있었다. 시인과 작가, 정치가 들은 항상 이런 사실을 알아차렸다. 황금기 아테네에는 사람을 매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최초로 평범한 사람들이 권력의 무대에 섰다. 철학자들은 지혜를 추구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고 전략가와 장군 들은 자신의 판타지를 현실에서 수행했다. 남자들은 그들이 일으킨 전쟁의 전장에서 싸웠다. 사람들은 가능성을 실현했고 스스로 실현한 세상을 살았다.

사실 황금기 아테네는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우리는 머나먼 과거에 인류가 완벽한 사회를 만든 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인류가 그렇게 완벽한 때가 있었으니 다시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대 아테네를 통해 공정하고, 질서 있고, 아름다운 사회를 바라는 우리의 열망이 충족되기를 원한다. 민주주의, 자유, 표현의 자유 같은 이데올로기가 한때 완벽하게 구현되었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테네가 제아무리 독특하고 대단했다 해도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일은 도시국가 아테네와 그 역사가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다.

-베터니 휴즈, 《아테네의 변명》, 강경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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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사료 몇 곳에 나오는 전설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임종 때 누구에게 권력을 넘겨주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장 강한 자에게.”8)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어떤 판본에 따르면, 정복자 알렉산드로스는 그의 죽음 뒤에 엄청난 경쟁이 벌어질 것을 예견하고, 영웅을 매장할 때 체육 시합을 벌이는 그리스 관습과 관련하여 그 이야기를 하면서 거기에 냉혹한 이중적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출처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인 진실을 담고 있다. 분명한 상속자나 후계 구도가 없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는 죽으면서 세상이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권력 투쟁에 불을 붙이게 된 셈이었으며, 그 투쟁에서 승리한 자가 얻는 상은 세계 전체, 즉 아시아·아프리카·유럽에 대한 지배권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장례식 시합은 실제로 역사상 가장 강렬하고 복잡한 경기로 꼽히게 된다. 왕의 죽음 뒤에 몇 년 동안 세 대륙에 걸쳐 벌어진 전쟁에서 장군 대여섯 명이 권투 시합을 벌이고, 왕족 대여섯 명은 왕좌를 놓고 레슬링을 벌이게 된다. 장군과 군주들은 서로 편의에 따라 편을 먹고, 그러다가 더 유리한 자리가 눈에 보이면 편을 바꾸어 이전의 편과 전투를 한다. 이 시합은 세대에 걸친 계주가 되어, 군사 지도자는 아들에게 기를 넘겨주고, 왕비는 딸에게 홀(笏)을 건네준다. 거의 10년이 흐르고 나서야 승자들이 부상하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출발선에, 즉 바빌론에서 죽어가는 왕 옆에 서 있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선수들이다.

-제임스 롬,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 정영목 옮김
원제: GHOST ON THE THRONE(왕좌의 유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