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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서는 <법>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두고 문지기와 여행객이 설전을 벌이는 짧은 단편이다.
이 단편은 <법>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카프카가 인생의 난관에 부딪쳤을 때 답답함을 토로하며 쓴 작품인 걸 고려하면 굳이 <법>이라는 주제로 국한하지 말고 폭 넓게 <인생 전체>로 봐도 적절할 것 같다.
배트맨은 본래 평범한 어린이였으나 극적인 한 사건으로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잔혹한 고담에서 나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게 된다. 그 선택의 답은 "다크 나이크"로 불리는 영웅의 탄생이고
하지만 배트맨도 영웅이기 전에 인간이었기에 실존적 불안을 담고 있는 질문 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보면 배트맨이 자기 자신으로서 마주한 그 불안스러운 순간도, 여행객이 법 앞에서 처한 순간과 다를 건 없을듯 싶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배트맨은 그 불안의 순간을 뛰어 넘었다. 여행객(어떻게 보면 나를 포함한 보통의 대다수 인간 전체를 상징하는)은 끝끝내 문 앞에서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다 죽게 되지만
배트맨은 자신의 초월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고담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추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이게 영웅과 범인의 차이일까? 문을 넘을 수 있는 자,넘지 못 하는 자 .. 법 앞에서 <법을 지키는 문지기>는 <여행객>의 회유의 뇌물공세를 다 받아준다, 저 문을 들어가도 된다는 허락이 아니라 그저 여행객이 <이만큼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소감을 밝힌다.
인생의 문 앞에서 이만큼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면서 끝내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현대사회에서 문을 넘은 것 같아 보이는 (하지만 그 문 안도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건 마찬가지다) 배트맨은 언제나 현대인의 두려움을 이겨낸 존재로 사랑을 받을 아이콘으로 남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배트맨의 사투도 거대한 성 앞에서는 카프카의 세계에 해법을 찾지는 못 하는 것 같다. 한 명의 빌런을 처치해도 또 다른 빌런들이 계속 출몰하며, 배트맨의 위력과 명성은 더더욱 높아 지지만 <안전한 고담>은 성만큼이나 멀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배트맨의 사투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자본주의의 성이 배트맨을 끝내 성에 다다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시민이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법의 작용. 활짝 열려있는 것이 보이지만 들어갈 수 없는 문, 그리고 문 앞을 지키는 문지기. 그 문 앞에서 투쟁의 방식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작동원리를 묘사한 정답이 없는 글.
개인적으로 배트맨에게 던져진 질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는 "이제 나는 누구인가"에 더 가까운 거 같음. 고담이 낳은 또 하나의 미치광이, 평생을 법 앞에서 넘어가지 못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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