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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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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읽은 문학 이론서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내용을 간략하게 훑어보자면, 일반적으로 시대 속에서 괴상하게 뛰어나다고 꼽히는 글들(<파우스트>, <율리시스> 등)이 어째서 그렇게 쓰일 수밖에 없었느냐, 그들이 어째서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 그들이 어째서, 반쯤 실패한 글이 될 수 밖에 없었느냐 하는 이야기를 한다.



첫번째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세계체제론을 골자로 한다. <파우스트>에서 시작해 어떻게 서양이 주변의 세계를 정복하고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결백하게 만들었느냐를 논하고, 세계체제의 중심에 있던 영국과 프랑스에선 어째서 '소설'만이 나오고 <파우스트>와 같은 서사시와 소설의 혼합과 같은 글이 나올 필요가 없었느냐를 이야기한다.



두번째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모더니즘이라는 용어의 허상이다. 어떤 한 중심으로부터 도망쳐나오는 것들은, 물론 그 도망쳐나온 출발점에서의 공통점이야 있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공통점은 없다. 하물며 의식의 흐름과 같은 기법조차 다른데,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나 여타 광기를 다루는 글에서의 의식의 흐름과, <율리시스>에서 어떠한 서정성도 없이 그저 천박하게 줄줄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은 애초에 전혀 다른 기법이라는 식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그러한 혼합에 대한 이야기다. 과거와 미래를 다루며 시간을 통째로 다루듯, 공간 역시 그렇게 다루는 서사시가 있다. 그와는 달리 현재를 다루는 소설이 있다. 이 둘의 혼합으로 쓰인 글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며, 소설을 쓰려 하며 서사시와 같이 백과사전스럽게 온 세계를 품는 글은 일종의 브리콜라주가 되며 그 전체에서 일부는 성공하고 일부는 실패하며, 마치 수많은 진화가 일어나는 태초의 지구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전체는 있을 수 있으나, 전체적 통일성에선 늘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와 깊은 생각이 들어 있지만, 이를 전부 감상에 옮길 순 없을 것 같다. 제시된 생각 하나하나가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특히 <파우스트>를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으로 하여금, 사실은 악마 없이도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파우스트가 유혹에 의해 악을 저지르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는 결백의 수사학으로서 해석하는 걸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추후 동 저자의 <공포의 변증법>과 <그래프, 지도, 나무>를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