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나쁘다는 이유로 일본의 근대화영향까지 무시하면 한국의 근대화가 설명이 안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됨. 또한 근대화 자체를 부정하게 될 경우에는 현대의 한국이 설명이 안됨. 그렇다고 자체적으로 근대화되었다고 할 수도 없음. 그럴경우 그 악명높은 \"근대화 기점론\"의 악순환에 빠지게 됨.
아래는 발췌문. 시간이 걸리더라도 읽어보시길.
근대화와 근대성에 대한 개념문제]
‘서구화=문명화’라는 등식은 성립할 수 없다. 그렇다. 조선의 유교문명과 중국 명(明)대의 유교문명은 당시 서유럽의 문명과 견주어 ‘반문명’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선진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내용도 존재했다. 예를 들어,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발전은 서구에 비해 중국이 선도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각주 5, 프랜시스 후쿠야마, <정치질서의 기원>, 웅진지식하우스, 2012, 144) [] 그러나 ‘서구화=근대화’의 등식의 배경에 존재하는 ‘도구적 합리성’의 문제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아시아의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구체적 근대 징후들을 포착할 숭 있는 전제로써 분석적 유용성을 제공해 줄 수 있다.(7)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서양과의 만남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근대와 전근대 사이의 ‘연속과 단절’, 즉 ‘연속된 것’과 ‘단절된 것’이라는 역사적 ‘현실’을 만들어 내었다. ‘접촉’과 동시에, 그들처럼 되어야 한다는 목적적 ‘충동’이 발생했다. ‘접촉’과 ‘충동’은 ‘연속과 단절’이라는 역사적 ‘현실태’들을 만들어 내었다. 어쩌면 동아시아의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근대성’은 ‘식민성’을 본질적으로 보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일본이 서양문명을 접촉하고 충동했던 것처럼, 서양으로 상징되는 일본을 접촉하고 충동했다. 한국의 사법체계에서 ‘근대화’와 ‘근대성’을 읽어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연속과 단절’의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 역사적 연구들은 때로는 통시적으로, 때로는 공시적·미시적 관점으로 연속과 단절에 대한 한국적 근대 징후들을 포착해 낼 수 있다. (8)
[] 베버는 경제체계나 행정체계의 차원에서 진행되는 행위체계의 합리화만을 파악했을뿐, 생활 세계 내의 일상적 실천에서 나타나는 다차원적인 합리화 과정을 해명하지 못한다고 비판을 받았다. 근대적 합리화 과정을 단지 목접합리성의 증대 과정으로만 해석하게 되는 베버의 이론적 한계는 동아시아 근대화의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오히려 분석을 위한 전제로 주목받을 수 있다.
메이지 유신으로 상징되는 근대화의 주역들은 국민을 교화의 대상으로 보고 일방적인 명령하달과 국가적 계획실행의 방식으로 근대적 국민국가와 자본주의에 합목적적인 법, 행정, 경제체계를 도구적 합리성의 증대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근대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 일본의 근대화와 이에 부응하는 식민지배라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타율적으로 합리화 과정을 겪은 한국의 근대화는 오히려 한계로 지적된 베버의 이론적 특성이 분석의 전제로서 장점이 될 수 있는 역사적 배경을 갖는다.(9)
서구중심의 근대성 이론을 비판하는 관점은 근대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이나 상대주의적 입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한(10)국 학계에서의 심각한 문제는 사회과학 자체를 잠식시키는 민족주의적 감성 논의를 통해, 한국사에서 근대화 과정을 소거한 채, 어느 날 우연히 현재 시점이 도래해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서구적 개념이나 서구적 가치가 근대일본을 접촉하기 이전에 먼저 한국의 전통시대에 존재했다는 것을 입장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왜곡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논의의 출발선상에서 부정했던 서구중심의 근대성 이론을 거꾸로 인정하는 논리적 모순에 처하게 된다. 또한 근대화 과정을 사실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문제 상황에도 봉착하게 된다.(11)
[] 역사적·문화적 배경이 다른 각 사회를 종합하는 고정불변의 근대의 본질을 구하고자 하면, 그 본질의 실체가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음이 드러나게 될 것 [] 이와 반대로, 근대적 징후를 나열하기 위해 징후를 찾아 나선 자는 포착된 징후를 ‘근대적인’ 징후로 인식할 수 있는 선험적 인식의 형식과 관념을 자연스럽게 필요로 하게 된다. [] 근대적 징후포착의 전제로서의 베버적 근대성 관념에서 출발(이는 ‘서구중심성’으로 상징되는 ‘왜곡’을 비판적 관점에서 현실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하여 한국사회에서 등장한 연속과 단절의 문제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특수한 또는 다차원적인 징후들을 포착해 낼 수 있다.(12)
정치사법은 식민화 이전부터 긴 역사적 ‘연속성’을 갖는데, 다만 일본을 통해 규문주의가 아닌 탄핵주의 형사사법의 새로운 절차와 형식을 받아들여 ‘사법살인’을 더욱 정교하게 (재판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재판을 가장한 ‘살인’으로 일종의 국가범죄라고 할 수 있다.) 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해방 후 독재정권은 이를 계승·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우리의 사법에서 ‘연속과 단절’을 인식하기 위한 ‘근대’ 개념에 관한 논의가 왜 유용한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현재의 문제들의 원인이 일본의 식민통치로 무조건적으로 환원되거나, 우리의 근대는 일본과 무관하고 이미 조선조의 유교문명으로 근대는 성취된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무조건 일본 때문에 한국의 법제와 법체계가 왜곡되었다는 무의미하고 비이성적인 동어반복은 미래에 대해 아무런 통찰도 얻을 수 없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14) [] 현재 존재하는 근대적 체계와 제도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일본의 식민통치를 지목하는 연구자들이 많다. 그들은 이러한 측면을 소위 ‘일제의 잔재’라고 부른다. 잔재가 존재하려면 그 이전에 영향이 선재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영향은 부정하면서 잔재는 인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하가?(15)
근대화 기점론이 뭐고 왜 악명높아?
정작 아래 글은 지워졌네 누가 왜지운거지
말 그대로의 의미임. 한국의 근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라는 것. 악명 높은건 근대화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명확하게 결론지어진 것이 없다는 것. 내생각엔 명확한 답이 있으나 일제에 대한 분노가 지식인들의 눈을 멀게해서라고 생각함
지식인의 눈을 멀게 한적은 없음. 대중들의 분노가 크고, 국사학과가 제대로 된 연구역량이 부족하고 역사교육과는 연구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발생한 현상임. 대가리 멀쩡한 역사학도 중에 자생적 발생론 따위를 주장하는 놈은 못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