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다 와 ~다 를 비교해보자
후자에서는 화자가 "지금" 일어나는 사건을 묘사하는 것이고, 전자에서는 "이미" 일어난 사건을 묘사하는 것이다.
전자의 형식을 취할 경우, 여기에 전지적 작가시점까지 더해지면 더욱 그러한데, 화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가 말하는 것은 틀리지 않다는 것을 독자에게 전할 수 있다. 이것은 소위 "리얼리즘 소설" 계통에선 필수적이다. 현실을 현실 그대로 전해주기 위해선 화자의 말이 절대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한 개인의 시점에서 어떻게 리얼리즘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물론 개별 시선의 중첩을 통해 전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을 수 있다.

조금더 이론적으로 파고들자면, 소설이란 본래 세계와 불화하는 개인의 "내면"을 서술하기 위해 태어난 장르다. 돈키호테가 최초의 근대소설인 이유는 주인공 돈키호테가 최초로 내면을 형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면"이란건 단순한 속마음과는 다르다. 내면은 누구를 속일때의 속마음같은 것이 아니라 세계와 항상 대립하며(이것을 화해시키고자 하는 소설도 많다) 개인을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다. 이 내면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선 거리를 두어야한다. 그 내면에 갇혀있을 것이 아니라 관찰자가 되어야하는 것.(꽃잎이라는 소설에서 광주항쟁에서 미쳐버린 여자아이의 내면을 묘사하는 장면을 보라. 관찰자가 아니라 내면의 주인 스스로 묘사할 경우 현재시제는 얼마든지 쓰인다) 관찰자가 자기가 본 것을 기록한 것이 소설이니 언제나 현재완료의 형태일 수밖에 없다. 풍경 묘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독갤 게시글 중에 왜 옛날 소설들에는 배경묘사가 그리 많냐고 묻는 게시글이 있는데, 리얼리즘 소설들은 개인을 포함한 세계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로 구성되어있으며 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풍경묘사는 단순히 사는 곳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파악의 한 요소이자, 유의미한 구성물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위의 이야기는 전부 "리얼리즘 소설"을 기준으로 이야기 한 것이니 모더니즘작가이야기는 꺼내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