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다"vs "-다"
1.-했다(+전지적 작가시점)
지금 주위에 소설책이 없어서 내가 예시로 들어보겠음
"A는 당황스러워졌다. B는 그것을 간파하고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이 서술에서 '화자'는 인물들의 내면까지 알고 있으며 이 화자가 말하는 것은 절대 바뀔수가 없는 '사실'이야. 뒤에서 갑자기 "알고보니 A는 당황스러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말을 하지는 않는다는 거지. 뭐 요즘 소설들에선 저럴수도 있는데 여튼 과거 리얼리즘 소설에선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리얼리즘 소설의 신념은 "우리는 현실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다"야.
리얼리즘은 단순히 현실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걸 의미하지 않아. 그런건 자연주의 소설이라고 불러. 리얼리즘이 추구하는 올바른 현실은 핵심 논리에 의해 전체가 관통되어있는 세계야. 리얼리즘과 자연주의의 차이는 이 현실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 논리를 묘사하는가 묘사하지 않는가야. 예를 들어볼게.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는 귀족이었어.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의 소설에서 신흥세력 부르주아의 입장을 대변했어. 귀족은 몰락하고 부르주아가 승리하는 걸 그렸지. 이 경우 발자크는 귀족이라는 자기 테두리에 갇히지 않고 올바르게 현실의 핵심논리(부르주아의 승리)를 파악한게 되는거지. 반면 그 뒤에 나타나는 플로베르의 소설을 보자고. 플로베르의 소설에서는 모든 것이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지만 왠지 무기력해. 왜그럴까? 플로베르 시대에는 진리, 이성적인 것, 올바른 것으로 보였던 부르주아가 실은 또다른 억압체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거든. 프랑스의 2월혁명에 대해 찾아봐. 노동자들은 여전히 먹고 살기 힘들고 부르주아들은 잇속만 챙기려고 하지. 그래서 플로베르의 소설은 발자크의 소설과 달리 전망perspective이 없어. 전망은 미래를 제시하는 건데 플로베르의 소설(자연주의 소설)에선 미래가 없이 그저 현재만을 끝없이 묘사할 뿐이지.
사족이 길어졌는데, 위 문장에서 재미있는건, 여기서 우리는 화자의 존재를 못느끼고 있다는거야. "A는 당황스러워졌다"라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 말을 누군가를 통해서 듣고 있다기보다는 마치 내 마음속에서 저절로 울리는 것처럼 느껴져. 하지만 이는 사실상 환상이야. 화자는 엄연히 존재하거든. 비유를 들어보자면 우리는 항상 어떤사물을 바라볼 때 안경을 통해서 바라봐야 해. 우리 눈도 일종의 안경이지. 눈이 나빠지면 사물이 흐려지고 눈이 좋아지면 더 잘보이자나. 근데 리얼리즘은 자기 스스로가 안경이 아니라는 것처럼 말한다는 거야. 그래서 김윤식이라는 문학비평계의 거두는 이런말을 했지. "도수가 없는 안경은 없다"라고 말했어.
2.-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공원도 도시도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것들을 분명히 알게 되면 속이 울렁거리고 모든 것이 가물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구토가 치민다.
위 인용문은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발췌했어. 봐봐. 모두 "-다"로 끝나지? 여기서는 환각이 일어나도, 앞에 했던 말을 반복해도 전혀 상관이 없어. 실제로 구토의 내용은 자기가 알고 있던 현실이 실제 현실이 아닌 자신의 개별적인 '세계관(틀,프레임)'으로 바라본 것임을 깨닫게 되는 내용이야. 그러니 여기서는 고전적 의미의 리얼리즘이 성립할 수 없어. 대신 이런 역설적 명제는 성립할 수 있겠지. "오늘날의 리얼리즘은 모더니즘이다" 이걸 풀어서 설명해보자면, 우리 스스로 특정한 틀을 지니고서 세계를 바라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논리라는 것 자체가 환상이며, 이제 전체란 내가 구성해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리얼리즘이라는 거야.
이것도 사족이지만, 예를 들어볼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마들렌 과자를 통해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내용이야. 이걸 고전적 리얼리즘으로 바라보면 말이 안돼. 마들렌과자랑 자기 과거 사이에 어떤 "필연성"(위에서 말 안했는데 리얼리즘은 항상 필연성을 추구해. 예를 들어 "브루주아의 승리는 필연적이다")이라곤 전혀 없거든. 근데 한번 생각해봐. 우리의 사고는 실제로 프루스트의 소설처럼 움직이지 않아? 지나가던 낯선 여자를 보면서 갑자기 중학교 때 좋아하던 소녀가 떠오른다던지. 그렇다면 프루스트의 소설이야말로 "리얼리즘"이야. 그게 진짜 우리거든.
내면 이야기는 내가 독갤에 하도 많이해서 좀 질릴수도 있겠으니 알아서 찾아보길.
아참 이제 왜 리얼리즘에서 전체를 유기체로 보는지 알겠지? 모든 것의 안에는 한데 묶어주는 핵심 논리가 있으니, 우리는 어떤 개별자(사람 한명, 한 집단, 한 현상)를 판단할 때 그것만 놓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핵심논리에 비추어서 판단을 해야하자나. 이건 '개별+개별+개별+개별....=전체'의 논리가 아니야. 전체는 모든 개별의 합보다 더 큰 무엇이야. 그걸 우리는 유기체라고 불러. 사람에서 손가락하나를 툭 자르면 그건 그냥 고깃덩어리지 '손가락'이 아니자나.
p.s 머리가 나쁘다 이런말 하지말어. 난 그런거 안믿어(있다고 과학적으로 증명해줘도 안믿을거야).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된 흐름만 따라가면 동일한 논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 자책하지마.
부르주아
어렵더라도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나병철의 <근대성과 근대문학>, 파노프스키의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을 참고 끝까지 읽어봐. 파노프스키 책은 뒤에 번역자가 달아놓은 해제만 읽어도 돼. 저렇게만 읽으면 일단 '근대소설'이 뭔지 감이잡힐거야.
아 나는 유기체 이야기는 그냥 교수님이 문학설명해줄때 들은거라서 딱히 생각나는 책이없네...
오호... 책이름 다 적엇다.. 근디 3줄 요약 좀
추천!!
나중에 인문학강의하게되면 인증바람!!
이 글이 진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문학이란 형태로 팔기 위한 문학 상식 따위이기 때문이다.
리얼리즘? 자연주의 소설? 모두 이미 쓰여진 소설을 통해 만들어진 명칭이지. 그런데 이제 이 명칭대로 소설을 써야 하는 소위 교육 받은 자들이 생겨 갈수록 진부해진다. 그들은 어떤 글을 써야겠다고 정해 놓고 쓰면서 자기 원하는 그 틀 따위에서 벗어나진 않는지 매번 검열하고 있지,
이를테면 이런 거야. `나는 리얼리즘 소설을 쓰겠어`라는, 마음을 먹곤 리얼리즘이 무엇인지 따위를 연구를 하는 거지. 이윽고 리얼리즘에 맞게 글을 쓰는, 쓰겠다는 강박. 타인의 시선에 어떻게 보여지고 어떤 말이 입에 오르내릴지 민감해지는 이런 예술가는 히스테리에 빠지지.
문제는 이러한 교육 과정에 누구도 이의 제기하지 않고, 그것을 매우 전문적인 분야로 인정하고 따르며, 배움에 계급을 매기고 명예처럼 주고받는 일을 확산 시킨다는 거야. 그래서 현재 사회가 여전히 계급 사회란 말이 나오는 거지. 사이비 집단 같다.
그래서 말이다. 리얼리즘 소설? 자연주의 소설? 그딴 거 없어... 있다면 그건 비평가 측에서 비평하기 쉽게 각 작품을 그들만의 전문 용어라는 편리한 기호로 표기한 것일 뿐이야. 작가는 글을 쓸 뿐이야, 무엇을 왜 어떻게 쓰느냐? 그것만이 전지적작가시점이다.
모두, 고급 작가나 고급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것을 위해 기존에 쌓여있는 수 많은 지식의 노예가 되길 기꺼이 자처하는 안타까운 풍경이다. 본인 고유의 언어적 표현을 쓰는 게 즉 고급 작가이고. 본인 고유의 시선으로 읽을 수 있는 게 즉 고급 독자다. 어쩔 수 없이 `고급`이란 단어를 오용 했는데, 실은 내 마음은 이렇다. 대체 언제까지 진부하게 짜 맞춰 올린 `고급`이란 탑에 기어오르는 짓을 할 건지 안타깝다. 대한민국에 `고유`가 도래하길 간곡히 바란다.
123.248:/꼰대 아니랄까봐 못배운티내시네 특정이념에 맞춰서 글을 쓴 집단은 사회주의 작가들밖에 없고 그들 조차도 제대로 된 작품은 만들지 못했다 내가 언제 사조에 맞춰서 글을 쓰라고 하든? 르네상스나 낭만주의, 리얼리즘 같은건 하나의 양식개념이야. 가서 하우저가 양식에 대해 뭐라말하는지 공부나하고와
작품(작가)과 문학사(비평가)의 관계는 변증법적인거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기계적인게 아니고. 내가 쉽게 설명하느라 마치 작가들이 어떤 이념에 맞춰서 글을 쓴다는 식으로 설명했을뿐이야. 작가들 스스로는 그냥 쓸 뿐이지. 그걸 지지고 볶고 하는건 비평가들의 몫이고. 내가 위에서 이야기한 것도 100년뒤에는 헛소리로 취급될 수 있어
문제는 비평가가 이렇게 이야기하는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냐는거야. 헤겔은 철학이란 시대의 자기인식이라 했다. 우리가 저렇게 말하는건 우리 스스로가 우리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거야. 너야말로 책을 좀 깊게 읽어. 표면만 보지말고 책의 기저에 흐르는게 뭔지 보라고. 너 댓글에서 이것저것 아는척하면서 말해도 실상 제대로된 글 하나 못쓰자나
왜그럴까? 너가 시대를 인식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애. 그래서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비평가들의 노력이 그저 "문학 상품화"로 보이는거지. 거부해야할건 문학을 절대화하는 쓰레기 비평들이지 문학 비평 그 자체가 아니라는거야.
ㅋㅋ 사정없이 후두려패내
열 받았나 보네. 쉽게 열 받고 모든 사건을 사사건건 자기와 일치 시켜 우주가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패기가 부럽네.
난 네가 누굴 겨냥해서 어떻게 하라고 말을 했다, 안 했다 따위를 했냐 안 했냐 따지고 지적하는 게 아니라, 결국 학습되고 답습된 너의 진부하기 짝이 없는 서술이 결국 사람들을 너와 마찬가지로 저절로 어떻게 되도록 만들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걸 오늘날 이 부조리한 사회에 대고 말한 거야.
근데, 넌 마치 그 거대한 사회의 중심에 선 대변인인냥 말하는 게 좀 어이없다. 넌 그냥 너 그 또래 친구와 선후배들과 다를 바 없는 학생이고 피해자일 뿐이야. 네가 당한 폭력을 구태여 남들에게 구타 당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심경을 내가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좀 슬플 뿐이다.
참 편한 사고방식을 가졌어 상대방의 모든 논리가 기성의 논리체계에 속한 것이고 너조차도 그것의 피해자일뿐이라니. 오히려 내가보기엔 피해자는 너인 것 같은데 말야. 이미 그렇게 프레임을 씌워놨으니 내가 뭔 소리를 해도 그렇게 보일테지. 걍 더 말 안할란다
마음대로 해라 그 입은 네 자유니까. 피차 마찬가지인 논리로 이루어진 말에서 본인은 아닌 척 하고 토라지는 모습이 어리석어, 웃겨, 간다.
좋은 글 써주는건 고마운디 쉬운 설명같진 않셈
보통 사조는 후대에 붙여준거 아닌가? 지금 리얼리즘으로 분류밭는 작가들도 그때에 나는 리얼리스트다! 라고 외치고 다녔을거같진 않은데
초기에는 당연히 그냥 썼었고, 뒤로 갈수록 의식적으로 쓴 작가들도 있지. 예컨대 토마스만처럼 비평가 루카치의 모든 글을 수집한 작가들도 있고. 또 일본이나 한국처럼 뒤늦게 개화된 지역은 대부분 의식적으로 글을 썼고.
고유의 시선 좋아하시네 낄낄낄 고유의 시선으로 할 수 있는 건 우끼끼끼 밖에 더 있냐
공들여서 리포트 썼는데 써먹을 데가 없어서 여기다 써먹는 느낌적인 느낌의 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