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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및 사법의 원칙 중엔 비례성의 원칙이 있데.

범법 행위의 정도와 그에 대한 처벌의 정도가 비례해야 한다는 거래.

빵 훔친 장발장한테 3년 형 때린 레미제라블 속 판사가 두고두고 까이는 것도 

이 원칙을 어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없는 용어지만 난 문학에도 비극의 비례성의 원칙이 있다고 생각해.

인간사엔 참으로 많은 비극이 있고, 문학도 태생이 비극뇌절인 장르라

작가들은 비극을 겁나 좋아해.


이런 세태에 대해 도스토옙스키는

"아이들 손에 길러진 애완동물의 태반이 죽듯 어설픈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도 태반이 죽곤 한다"

라는 띵언을 남겼지. 


(뻥임. 내가 만든 말.)


내가 이 부분에 대해 예민해지게 된 계기는 세월호였던 것 같음.

우후죽순처럼, 눈물비가 쏟아진 후에 징글징글하게 자라났던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시, 소설, 르포, 영화......


이토록 거대한 비극을 다루었음에도 그 문학적 결과물의 완성도는 형편없는, 

문학적 비극의 비례성의 원칙을 지키지 못한, 

그저 이름을 알리고, 작품을 좀 더 팔고, 혹은 모종의 정치적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 사건을 이용해먹는 구더기같은 인간들에 대한 환멸.


몇 년 전, 대단히 읽을만한 청소년 소설로 유명해진 아몬드를 읽었을 때도 

난 그런 느낌을 받았음.


작품 속 비극성은 대단함. 

읽은 지 하도 오래되었고, 

읽은 후엔 되도록 뇌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어했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주인공은 가족 둘을 묻지마 살인으로 잃었을 걸?

그 비극으로 주인공이 얻는 것은, 세상과의 소통임. 


고작 이 정도의 사적 차원의 각성을 위해 작가가 허락한 비극성의 크기와, 

자신의 인물들을 철저히 도구적 장치로 머물다가 휘발시켜 버리는 작가 본인의 소시오스러움에 

난 솔직히 읽던 도중 소름끼침을 느꼈음.


18...

장난까냐고.

아니, 고작 경증 자폐나 소시오 끼를 고치기 위해 가족들 둘을 도륙내는 게 

제대로 된 작가의 머리 속에서 나올만한 플롯임?


이게 발톱이 살 파고든다고 발목을 잘라버리고, 

거짓말하는 애새끼 버릇잡겠다고 혀를 뽑아버리는 거랑 뭐가 다름.


비극은 그냥 슬픈 이야기, 혹은 인간 운명에 닥치는 일종의 천재지변처럼 도구적으로 다뤄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함.

플라톤이 시학에서 말했던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비극의 끔찍함의 정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와 비극 간의 엄정한 비례성, 인과관계, 그 비극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더 많은 의미, 더 온당한 정의- 미덕들에 있다고 생각함. 


여자 둘의 머릴 도끼로 쪼갠 로쟈와 그의 주변인들은, 도끼날의 고통에 감히 비견할만한 고통을 겪었고 

사적 참회를 넘어선 거대한 의미들을 독자에게도 충분히 전달해 주었음.

사실 미친 놈인 사드 후작이 쓴 괴랄한 작품 속 유린당하고 갈려나가는 인물들의 비극과 성적 기행도, 

단순한 성적 망상이 아닌, 체위마저 신부놈들이 정해주던 한심한 시대의 낙후와 이를 뛰어넘으려는 전복적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기에 용인가능함.


이처럼 적어도 작가라면, 다같이 필멸할 수 밖에 없고 운명과 삶의 비극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면

인물에게 비극을 허락할 땐 그 비극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결과물에 대해 저 정도의 생각과 고려는 해야 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난 아몬드의 고평가와 스테디셀러화가 무섭고 정내미 떨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