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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들은 읽으려는 책을 고르는 기준이 책의 대략적인 줄거리만큼이나 책의 첫인상에 크게 좌지우지되는 경향을 가진다. 책의 두께, 표지, 제목, 띠지 등이 가져다주는 충동적인 이끌림은 내가 특별한 독서 계획을 정하지 않고도 자주 도서관에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충동적인 경향이 가져다준 득이 실보다 컸는데, 과거 한정적인 장르만 따로 파들어가는 것을 좋아했던 기존의 성향을 억누르고 편식을 줄이는 것에 도움이 됨은 물론, 여러 종류의 책들에 비슷한 수준의 기대치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의 표지만으로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유명한 영미권 속담은 나의 경우 책의 외적인 부분에 집중하게 됨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
오늘 소개할 이 책 역시 내 특이한 성향이 가져다 준 산물이다. 메타픽션이라는 장르는 엄연히 내 관심사 밖이었지만, 표지의 남자와 제목의 분위기가 묵직해 보여 과거에 별 생각없이 고르게 되었다. 다른 메타픽션 소설과는 다르게, 작가와 소설 속 인물이 상호작용하는 부분은 주인공 아우구스토 페레스와 작가인 우나무노의 논쟁, 아우구스토의 친구인 빅토르 고티의 『안개』 추천사, 아우구스토의 개 오르페오의 추도사 해설이 끝으로 많은 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설의 많은 부분은 아우구스토가 사랑하고 상처받는 과정에서의 방황과 고뇌, 특히 '나'의 본질을 찾기 위한 고뇌를 안개 속에서 헤메는 과정으로 표현했으며 이 고뇌는 아우구스토가 생을 마감하면서, 명확한 해결책을 남기지 못한 상태로 끝이 난다.
이 '나'의 본질을 찾기 위한 고뇌는 흐릿한 안개처럼 명확한 답변을 주지는 못했지만 작가가 생각하는 사람, 더 나아가서 개체의 본질은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개 오르페오의 추도사에서 "언어는 거짓말을 하거나 없는 것을 발명하고 혼동시키는 데 이용된다."는 구절이나, 아우구스토와 친구 빅토르가 논한 철학자들의 박한 평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셰익스피어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처럼 철학자들의 심오한 글귀는 더욱이 개체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명시했다. 위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사람들이 개체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의 말이 개체의 특성을 나타내는 역량이 부족한 요소라고 보고, 오히려 사물을 흐릿하게 보는 것이 실체에 가장 근접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했다.
위 개념을 발전시켜 생각해보자. 작가인 우나무노는 개체에 사람들이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그 개체의 특성을 꿰뚫어보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본질 파악을 방해하는 요소는 정녕 이름뿐인걸까? 이름 외에도, 크기,색상, 생김새 등으로 사물,사람을 언어적으로 설명하면 할수록, 외적인 특징에 집중하게 되어 오히려 내적인 본질을 더더욱 파악하지 못하는 법이다. 아우구스토 역시 에우헤니아의 외모에 한눈에 반해, 그녀의 주변을 조사하면서 점점 호감을 키워갔다. 그러나 에우헤니아는 이미 진지하게 교제하는 사람이 있었고, 아우구스토의 호의 역시 자신을 종속시키려는 행동이라며 그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이렇게 에우헤니아의 겉모습을 보고 반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던 그는 자신이 '안개 속에서 한치 앞도 모르는 행동상대의 내면을 파악하지 못하는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하는 것 같다며 우려했고, 점점 주변 여자들의 용모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여자의 뒤를 밟아 관찰하는 등 겉모습에 대한 집착이 점점 커져갔다. 결국 여러 우여곡절 끝에 에우헤니아와 약혼하게 되었지만, 그녀의 내면은 단 한순간이라도 그에게 동질감을 가지지 못했고, 결국 원래의 남자친구와 같이 야반도주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아우구스토는 안개를 걷어내지 못해서, 즉 그녀의 내면을 끝내 파악하지 못해서 이러한 불행을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크게 좌절한 그는 작가인 우나무노를 만나 자신의 자살하고자 하는 마음을 상담했는데, 창작자인 우나무노는 자신의 피조물에 불과한 아우구스토의 이러한 의견을 매우 불쾌하게 받아들였고 그가 자신의 창작물이라 자살할 수 없다고 일깨워 주려 하는 등 의견의 대립이 발생했다. 이러한 대립은 점점 대화를 나눌수록 심해졌고, 아우구스토는 자신이 실제적인 인물이 아니라면 우나무노 역시 신의 창작물이므로 실제적인 인물이 아니라고 호도했다. 이러한 논쟁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람 또한 아우구스토와 같은 처지임을 상기시키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고, 개 오르페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항상 근심하고, 의심하는 동물임을 들어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아 인간의 본성을 비판하는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전체적으로 사람의 이성과 특징을 비판하는 기조를 유지하지만, 그에 대한 대안 제시나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미약하다. 어쩌면 그가 철학자들을 비판한 것처럼 단언하는 행동은 작가 자신의 내면을 이해시키는 데 오히려 방해된다고 생각해서 에둘러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자신의 이론이 확고하다는 생각을 굳게 가진것처럼 보이나, 그 이론을 눈에 띄게 묘사하지는 않는다. 아우구스토와 작가의 대담을 제외하면 자신의 이론을 은연중에 묘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독후감은 과거 읽었던 책을 재독한 결과고, 분명 과거 책을 읽었을 때보다는 깊은 고찰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100% 이해하고 소화했다고 단언할 자신감은 없다. 분명 메타픽션이라는 장르가 소설의 큰 맥을 좌지우지했지만, 메타픽션에만 의존하지는 않고 독자들에게 던지는 철학적인 물음만 떼 놓고 봐도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책임은 분명하다.
귀한 글 보여주셔서 감사드려요.
응원 감사합니다
9. 라길래 다른 것도 읽어봤어요. 글을 잘 쓰시네요! 연재물이라고 봐도 되나여?
전에는 책을 빨리 읽고 떼는걸 중요시했는데 군대 갔다오니까 다 까먹어서요. 연재같이 거창한 건 아니고 내용 까먹는게 아쉬워서 쓰고 어플에 저장하는 김에 올리는거에요.
글 진짜 잘쓰시네요 잘읽었습니다 :) 예전에 여자친구랑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린아이에게 '하늘색'을 '하늘의 색'이라고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한다. 하늘의 색은 시시각각변하고 다양한데 이것을 '하늘색'으로 지칭해버리면 거기서 하늘에 대한 생각이 멈춘다" 언어가 어떤 것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와 정말로 공감...
감사합니다. 철학의 묘미는 짧은 글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고 울림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에는 오히려 혼란과 곡해만 가져다주는거 같아요. 글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 편하지만, 편리함이 본질을 묻어버리기도 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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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자주부탁드려요!!
Aㅏ....책 안들춰보고 쭉 쓰다가 틀리면 안되는걸 틀렸네요. 피드백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