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c86fa11d02831e11ed4e1ce518c3fae84bbe8609e8e5917058bcf63010c00bb2446813df1dd6f24d14c23b510ce9fcf1e00a54940a63339c003


심리학자가 쓴 책이고 나온 지 2년 정도 됐는데 요즘 인터넷 게시판을 보며 느끼는 바가 많아 대강의 기억나는 구절과 내가 느낀 점을 버무려 끄적여본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공동체적 생활양식의 사회다.


사회 시스템의 많은 부분을 서구식 자본주의에서 가져왔지만, 공동체적 의식의 끈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나라였다.


공동체 중심의 사회에서는 구성원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존중받을 근거 자체였다.


쉽게 말해 공동체에 악의적 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생산성이 낮더라도 최소한 그 집단 내에서는 혐오의 대상 삼지 않았다는 얘기다.


(우습게 보더라도 선을 지키는 암묵적 분위기가 존재했다)


하지만 IMF를 기점으로 공동체가 구성원을 책임져주지 않게 됐고, 이후 한국에도 서구식 개인주의가 강하게 자리 잡게 된다.


이는 단순히 서구식 개인주의를 ‘악’으로, 동양식 집단주의를 ‘이상향’으로 보는 꼰대소리를 늘어놓고자 함이 아니고,


그저 각자의 장단점이 있다는 얘기다.


서구식 개인주의 사회에서 자존감은 고립된 인간이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개인주의 국가들은 자존감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중요하게 다뤘고 미국의 경우 자존감과 관련된 수업이 이미 80년대에 유행하여 자리 잡았다.



지금의 한국은 두 가지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다.


우선 사회적 문제다.


이제 한국 사회는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 인간을 인간으로 존중해주지 않는다.


얼마나 생산성을 갖추느냐에 따른 가치평가를 한다.


쉽게 말해 중소기업 다니며 세금을 잘 내고 살아도 대기업 사원 앞에서는 주눅이 들게 되고,


더 버는 사람은 덜 버는 사람을 우습게 여겨도 된다는 심리가 무의식중에 자리잡혀있다.


평생을 미디어의 홍수 속에 살다 보니 단순히 인간 본능적인 위계질서를 넘어 부의 편차를 인간을 혐오해도 되는 권리처럼 인식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광고들은 하나같이 ‘당신은 저런 싸구려와 맞지 않아요. 싸구려를 쓰면 싸구려 인간인 거 알죠? 우리 물건을 사면 당신은 이제 고급 인간이에요’라고 속삭인다.


고급 인간이 되기 위해 끝없이 소비하고, 소비하다 보니 돈이 필요하고, 곧 돈 있는 사람이 곧 위대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과정이 축적되어갈수록 잘못한 것도 없는 사람을 돈으로 깔보게 되고,


딱히 얻어먹을 떡고물도 없는 사람인데 나보다 돈이 많아 보이면 은연중 빌빌 기게 되는 굴종의 태도를 지니게 된다.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c86fa11d02831e11ed4e1ce518c3fae84bbe8609e8e5917058bcf63010c00bb242bef35fbd662b53d34a668cb69698a3521187987d729aa03


흔히들 말하는 문신돼지국밥양아치룩은 이런 사회적 압박을 생각 없이 수용해서 벌어지는 일종의 현상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보여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다.


외모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외형적 자부심을 넘어 타인의 선천성을 공공연히 경멸한다거나 하는 것도 모두 비슷한 과정이다.


의식적으로 살지 않으면 이런 사회적 압박을 개인은 무척이나 거부하기 힘들다.




둘째는 부모의 문제다.


한국 사회는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세대 간 혐오가 극도로 다다른 사회다.


흔히들 비하의 대상 삼는 ‘틀딱’ 세대는 상명하복식 체계에 길든 세대라 타협과 토론이 불가능할 정도로 단절되어있다.


한국 노인들의 심각할 정도로 높아지는 고독사 문제나 서로 간의 혐오는 소통의 부재가 가져온 결과물들이다.


노인들은 젊은 날의 굴종을 보상받지 못함에 분노하고 청년들은 대화가 안 되는 그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c86fa11d02831e11ed4e1ce518c3fae84bbe8609e8e5917058bcf63010c00bb2446813df1dd6f24d14c23b510cecb9e1956a11542fc33dcdde8


386으로 대변되는 20~30대의 부모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이들은 한국의 황금 성장기 파도를 타고 굉장한 혜택을 받은 세대다.


어릴 적 부모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고,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났으며 도전이 권장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막연하게나마 믿을 수 있던 세대다.


반면 요즘의 청년들은 죽도록 공부해도 정규직은커녕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을 전전해야 하고


근로소득으로 수도권 아파트 구매는 꿈도 못 꾸는 사회 속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돈으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의 압박도 미칠 지경인데 많은 부모가 자식들을 조건적 사랑으로 양육한다.


소통은 부분적으로 가능하나 이 조건적 사랑이 자식의 자존감 토양을 망가뜨린다.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c86fa11d02831e11ed4e1ce518c3fae84bbe8609e8e5917058bcf63010c00bb242bef35fbd662b53d34a668cb38658835761d7883d7299844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c86fa11d02831e11ed4e1ce518c3fae84bbe8609e8e5917058bcf63010c00bb242bef35fbd662b53d34a668cb3a68dc337b172ed5d72914e0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c86fa11d02831e11ed4e1ce518c3fae84bbe8609e8e5917058bcf63010c00bb242bef35fbd662b53d34a668cb3130de63231a298ed72994b4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게 아니라 조건으로, 성과로 사랑받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자기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넌 공부를 하지 않아서 비정규직이 됐으니까 비인간적 처우를 감내해야 해!’라고 인식하여


일면식도 없는 사회구성원에게 적개심을 드러내거나


특정 상황에서 성과를 이유로 본인이 비인간적 대우를 받는 것을 놀랍도록 무비판적이게 수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단순히 386 부모세대가 무식해서 그러냐 반문할 수도 있는데, 부모에게도 부모 나름의 고충이 있다.


사회가 성과로 사람의 가치를 구분하는 가운데 언제고 자식들을 꽃밭에서 기를 수 없다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존귀한 존재야. 너는 사람을 사람이라는 이유로 존중해야 해’라며 가르치기에는 문밖은 총알이 쏟아지는 잔혹한 전쟁터다.


지금의 부모세대는 IMF를 거치며 사회를 각자도생의 시대로 인식했으며


자식들의 생존을 위해 ‘네가 살려거든 먼저 혐오하고 죽여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젊은 세대는 사회적 압박에 부모의 압박이 더해져 열렬한 ‘증오 세대’가 되어버렸다.


이후는 자존감을 어떻게 회복할지에 대해 다루는데


최근 유행하는 ‘나는 대단하다, 나는 행복하다’식의 자기 세뇌방식이 가져다주는 휘발성 위안을 맹렬히 비난한다.


궁극적 자존감의 회복은 올바른 신념을 갖추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끝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내 행동의 당위성을 정립하고 사회가 그것을 수용할 수 있음을 확인했을 때 비로소 사회적 압박에 무너지지 않는 자존감을 지니게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온통 증오로 가득 차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