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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에 대한 감상을 쓸 때마다 내 감상이 상당히 불공평한 편이란 걸 느끼곤 한다. 나는 퍼즐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딱히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그 범인이나 트릭을 추측하는 걸 즐기진 않는다. <Y의 비극>을 놀라운 글이라 여기며 좋아했지만 그게 작중 단서만으로 결론을 추리해낼 수 있도록 정교하게 글을 써냈다는 이유에서는 아니다. 그저 그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를 서술하는 솜씨가 좋았을 뿐이고, 그렇기에 <Y의 비극>과 같이 '공정한 추리 게임'을 지향한다는 글들은-특히 일본 쪽-영 글솜씨가 조악하다고 느껴 좋아하지 않는다. 장르에는 장르 나름의 재미를 느끼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걸 왜 모르겠는가.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장르가 있을 뿐이지.
덕분에 이 다아시 경 시리즈 중 첫 번째인 <셰르부르의 저주>도 영 애매했다. 마법과 과학이 섞인 스팀펑크스러운 세계관에서의 추리 소설이라곤 하지만, 사실 잘 살펴보면 현대 추리 소설에서 쓰거나 가정할 수 있는 요소들을 판타지스러운 분위기에서 쓰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추리 장르로서의 호평을 찾아보면, 마법을 절대적인 요소로 사용하지 않고 미리 제약을 언급한 다음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런 재미를 준다곤 하지만, 글쎄, 내겐 영 와닿지 않는 평이다.
그러나 이 글이 재미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글은 판타지 대체역사로서 재밌는 글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마술사 마스터 숀이 입담으로 늘어놓는 온갖 XX의 법칙 타령이나, 어떻게 영국과 프랑스가 같은 제국에 속하고 폴란드가 현재의 러시아와 같은 위치에 오르게 되었는지 하는 역사 지문들을 읽고 있으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극이 오는 걸 참을 수 없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일종의 장르 백화점과 같은 글인 셈이다. 네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잔뜩 모아놨으니 이 중 하나라도 끌린다면 이 글을 좋아할 거야, 같은 식으로. 내겐 통한 전략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만이었다면 굳이 이어지는 후속작 두 권을 읽으려 하지 않았을 터. 역자 후기에서 슬쩍 말한 '후기작(3권)부터는 정치적 암투가 주가 되는 스릴러물이 된다'는 말이 동기 부여를 했다. 원래도 르카레 같은 암투 첩보 스릴러 글들을 좋아하는지라, 여기에 이런 과학의 연장선상과 같은 마법이 끼얹어진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당히 궁금하다. 그러려면 일단 <마술사가 너무 많다>라는 장벽을 넘어야 하긴 하겠지만, 뭐, 이 책도 재미는 있었으니 장편이라고 덜하겠던가.
P.S. 일종의 고증 문제라고 해야 할지, 시간이 흐르며 변화한 역사 지식에 대한 문제라고 해야 할지, 살짝 웃음이 나오던 부분이 있다. 고대 브리튼인들이 전투 전에 대청으로 온몸을 푸르게 물들이곤 했다는 말이 나오고 작중에서도 꽤나 중요한 소재로서 쓰이는데, 기실 현재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브리튼인들이 몸을 물들이고 전투에 임한 것 자체는 아마 사실일 테지만, 그게 푸른색이라는 보장은 없고 또 대청으로 몸을 물들였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다고 한다. 다른 사유로 찾아보다가 알게 된 정보인지라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마음 속으로 써먹게 되어 약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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