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M.php?id=reading&no=29bcc427b38577a16fb3dab004c86b6fb8c469a51a456a5785032dfa7608c8ab53bd9403c9e73cea876c3c1a08dd658d99133c13d4e317c6776c07e3f39e120e953484caac5a31e7d6610657330d2ff2776ca2b0976bb6424c28

그저 그런 소설들을 그저 그렇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 있고,
그저 그런 시들을 그저 그렇다고 느끼게 만드는 시들이 있다.
그것은 독서갤 제군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파울로 코엘료를 읽으며 독서의 최첨단을 걷는다 자만했던 급식 시절이 있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고 하루키를 들고 꺼드럭거리면서 지성인이 된 양 착각하던 신입생 때 역시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도 그런 책이 있다.
다시금 중2병이 도진양 진지한 고민에 빠뜨리고 한 달 내내 그 상념에 젖게 하는 책 한 권.
그 한 권이 나의 독서력을 업그레이드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책은, 나의 경우에는, 김훈의 책이었다.
분명 이제와서 보면 김훈 역시 한계 있었으나 나를 단기간에 업그레이드한 소설가였고 그의 작품들이었다.

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친일파라던 서정주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윤동주를 읽었다.
그러다 정호승의 시를 즐겨 읽게 됐고, 최승자로부터 내 안의 음울함을 생채기 핥듯 핥게 됐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를 업그레이드 하지 못했다.

김경주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읽었다.
소름끼치는 충격.
마치 조성이 완전히 파괴된 무조음악을 듣는듯 혼란스럽고 충격적이었다.
충격이 가시고 난 뒤 나는 이 시집에 쏟아진 찬사를 이해하였다.
그리고 황병승을 읽었고, 오래전 읽었던 기형도를 떠올렸다.

황병승의 최근 시집 <육체쇼와 전집>을 최근에 읽었다.
그의 위트와 파라독스는 아예 이해되지 않는 이상의 것보다 훨씬 위트였고, 파라독스였다.

나는 미래파 시를 싫어했다.
그 시집들을 이해하려 뒤편에 실린 해설을 읽었으나 그 해설들마저도 해설을 필요로 했다.
집어던졌고, 이내 다시 집어들었다.
헤어나올 수 없다.

이미 불살라버린 배를 타고 다시 강건너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문학적으로 성숙해졌다.

시잘알이다.

이글은 나를 추어올리기 위한 글이 아니다.
누구나 경험한, 더이상은 되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만드는 책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접하고 난 뒤의 나는 더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며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어릴 적 동화를 보며 추억에 잠길 순 있지만 그때의 감정과 생각은 공유될 성질이 아니라는 것.
나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시들을 흔해 빠졌다고 한다.
어쩔 수가 없다.
그것들을 흔해 빠지도록 만든 내 독서력이,
단 한 권의 시집이,
이제는 나에게 솔직해지라고 한다.




-



시를 사랑하는 독서갤 제군들에게,
나는 김경주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와
황병승의 시집 <육체쇼와 전집>,
그리고 설마하니 정말 아직도 안 읽었다면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을,
겸허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읽으라고 이 글을 빌려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