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 개인적으로 하나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사용하시겠지만 남도 사투리 방언을 쓰시지 않습니까. 실제로 제가 선생님 책을 읽다 보면 장수 사투리와는 다른 제 고향(전남 여수) 사투리들이 나옵니다.
박상륭 장수하고 얼마나 멉니까?
한창훈 상당히 많이 떨어져 있는데요.
박상륭 그게 장수에서 쓰는 건데…….
한창훈 그걸 예전에 이문구 선생께 여쭤 봤더니…….
박상륭 문구는 이렇게 얘기를 했죠. 전라도 사투리야 그것이? 유리 사투리지. (웃음)
한창훈 예, 유리 사투리라고 대답을 하시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제가 ‘아……’ 한 적이 있습니다.
박상륭 우리 언어는 단어가 충분히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사투리라는 것을 국어 대사전 속에 많이 차곡차곡 쌓아야 됩니다. 사투리가 주는 뉘앙스를 표준말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요. 이것도 사람들 만나게 되면 때때로 하는 말이지만, 우리말이 우리 작가들에게 불행하면서도 은복이 되는 점이 있는데 우리말은 문법 체계가 제대로 돼 있는 게 아니죠. 통화를 하기 위해서 언어가 갖고 있는 질서는 있는데 그것이 소위 말하는 개발된 언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처럼 꽉 짜여 있지가 못하죠. 그래서 짜여진 언어를 쓰는 작가들은 이 자리에 이 말을 넣으면 중학생은 알아듣겠고 이 자리에 이 단어를 넣으면 대학생은 알아듣겠고 이래서 쉬운 말을 넣느냐 어려운 말을 넣느냐 뭐 그런 고민을 하겠죠. 그런데 우리는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글쓰기가 어려운데, 그 대신에 작가들에겐 자유가 있죠. 작가의 개성을 투입할 지평이 열려 있는 거예요. 또 하나는 우리말은 단어 수가 적어서 한문 단어를 없애려고 하면 더 심각해져요. 그래도 조어를 얼마든지 짜 넣을 수 있는 룸(room)이 있고, 사투리라도 ‘쭈그리고’ 앉아서, ‘쭈글시고’ 앉아서 그 두 개의 단어가 비슷한 단어인데 오는 그 느낌은 다 달라요. 옛날식 변소 칸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서’ 하는 것보다 ‘쭈글시고 앉아서’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느낌이 있어요. ‘쭈그리고’는 표준말이니깐 ‘쭈글시고’라는 표현은 쓰지 말자, 이렇게 문법학자, 국문학자들은 말하는 모양이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말을 점점 줄이게 돼요. 단어가 적기 때문에 우리 작가들은 글쓰기가 불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탓에 우리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서 후생들에게 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말의 토씨는 정말 불편한 겁니다. 는, 가, 를, 고 뭐 이런 따위들 말이죠. 그게 반복이 되면 어떻고 안 되면 또 뭐가 어떻게 되고 하는데 아무튼 그게 글 쓰는데 무지무지하게 불편한 거예요. 하지만 잘 쓰면 죽은 문장이 살아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 토씨죠. 예를 들면 해는 진다, 해가 진다, 해를 지게 한다 뭐 이런 식인데, 얘기 도중에 “해가 지고 있다” 이러면 시간만을 가리키는 것인데, 얘기 도중에 “해는 지고 있다”라고 하면 시간하고 상관없이 뭔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잖아요. 이렇게 가장 약체들이 장점이 돼 있는 부분들이 몇 가지가 있어요. 토씨들을 잘 쓰면 죽은 문장들이 싱싱하게 살아나고 새로운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말이죠. 우리는 사투리라는 것이 있고 또 조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죠. 단체가 장체가 되는 거죠.
한창훈 선생님 말씀 듣고 있다 보니까 요즘 몇몇 평론가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모국어 기피증이나 모국어 혐오증이 떠오릅니다. 이를테면 그것을 근친혐오라고 지칭하는 평론가도 있습니다. 평론의 세계, 그러니까 작가와 독자를 이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모국어를 피해서 가고 심지어는 혐오 증세까지 있는 게 굉장히 마음이 답답하고 쓸쓸하고 그렇습니다.
박상륭 우리 언어가 문법적으로 확립이 안 돼 있어가지고 대부분 경우에 오문이나 비문으로 흐르고 이러다 보면 다른 언어로 사고할 줄 아는 사람들은 모국어 혐오증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글 쓰는 작가들이 얼마든지 극복해 낼 수 있는 거겠죠.
출처: 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8116
2008년에 박상륭이 잡설품 내고 문장 웹진에서 했던 인터뷰임. 재밌으니까 관심 있는 사람은 전문 읽어봐라. 영상으로도 있음.
말씀은 쉽게 쉽게 잘하시네
하긴 박상륭 글이 어려운 건 의식의 흐름이나 뭐 그런 것도 있지만, 사투리도 크게 한몫 하는 듯. 그게 또 박상륭 문체의 아름다움이기도 하고...
좋은얘기
열명길 샀는데 기대중 - dc App
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8116
지린다
글쓰기에 철학이 있으시네 이런분들 글 읽으면 음미하는 재미가 있을듯
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