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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라는 말은 우리 모두가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완벽한 세계, 안전한 세계. 멋진 신세계에서 가리키는 이 '신세계'라는 말은 바로 이 유토피아를 가리킨다. 이 세계에서 인류는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의 끝을 구현하여, 마치 신과 같은 힘으로 사회 질서를 고정해 놓았다. 모든 국가를 통일하여 세운 세계국(World State)에서는 총 다섯 개의 층으로 사회를 구성한다. 알파(α), 베타(β), 감마(Γ), 델타(δ), 엡실론(ε) 계급이 있는데, 이들이 하는 일은 알파에서 엡실론 순서대로 복잡해진다. 그리고 알파에서 엡실론으로 갈수록 외모, 지능, 가치관 등에서 차등이 주어진다. 이렇게 안정된 다섯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소마라고 불리는 약이다. 이 약은 부작용 없는 마약이나 마찬가지이다. 거의 모든 국민들은 이 소마를 상시로 복용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인류는 불안정, 고뇌, 분노 같은 격렬한 감정을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소마를 격렬히 거부하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초반부의 주인공인 버나드 마르크스이다. 버나드는 알파 계급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왜소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이것은 그로 하여금 남들과의 '차이'를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로 인해 버나드는 점점 주위에서 고립되어갔다. 계속된 열등감과 소외감은 그가 사회가 주는 안락함과 번영을 거부하게 만들었고, 결국엔 미덕으로 치부되는 소마의 복용마저 거부하게 만들었다. 그는 무언가 다른 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듯한 경험을. 서로가 서로에게 예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만나며, 성관계도 스스럼없이 하는 이 사회도 역겹고 불결하게 느껴졌다.
이런 버나드가 사랑한 여인이 한 명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레니나였다. 레니나는 아주 표준적인 알파 계급의 여자였다. 아름답고 우수하고, 적극적으로 남자들과 '교류'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남들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이 버나드라는 남자에게 끌렸다. 가끔은 이해 못 할 행동을 보여주지만, 결국 사람은 '다름'에서 끌리는 법. 레니나는 버나드와 가까이 지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버나드는 레니나에게 야만인 보호 구역으로 가보자는 제의를 한다. 개척할 가치가 없다 판단된 소수의 구역은 원주민들이 살도록 내버려 두는데, 멕시코에 있는 보호 구역에 버나드가 갈 기회를 잡은 것이다. 레니나는 막연히 좋은 경험일 것으로 생각하고 승낙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레니나가 본 것은 끔찍하고도 더러운 광경이었다. 모든 불결함과 불편함을 제거한 현대 사회에서, 심지어 최상위 계급인 알파 계급의 그녀가 부족 사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느끼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게다가 현대 사회에서 모든 출생은 시험관에서 이루어진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존재는 현대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앞에서 버젓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자처하는 존재들이 아이를 돌보고 있다니. 레니나는 구역질 나는 경험을 뒤로하고 서둘러 돌아가려 했다.
그러던 그때, 버나드와 레니나는 우연히 린다와 존을 만나게 된다. 린다는 옛날에 불의의 사고로 이 보호구역에 떨어진 채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살던 베타 계급의 여성이었고, 존은 그녀의 아들이었다. 존은 백인 남성의 외모였으나 현대 사회의 지식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린다가 알려준 현대 사회의 언어와 글, 그리고 마을에서 우연히 구한 셰익스피어 전집으로 대화가 가능했다. 버나드는 이 둘을 현대 사회로 데려간다. 다시 돌아간 현대 사회에서 린다는 소마에 취한 채 침대에만 누워있게 되고, 존은 수많은 현대 문물을 접하게 된다. 이주 초반에는 버나드와 그의 친구 헬름홀츠 셋이서 반사회적인 토론을 같이하며 잘 지내나 싶지만, 결국 현대 이전의 사람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사회의 역겨운 모습에 그는 질리고 만다. 더불어 그에게 푹 빠진 레니나와의 관계에서도 그는 방황하게 된다. 결국 참다못한 그는 린다의 죽음과 그녀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세뇌된 아이들의 태도를 발단으로 델타들의 공장에서 난동을 피우다 잡혀가게 된다.
잡혀간 존과 관련 인물로 불려간 버나드와 헬름홀츠 앞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에 속하는 "통제관"인 무스타파 몬드가 나타난다. 그들 넷만 모여있는 그의 방에서 그는 서슴없이 현대 사회의 실체를 드러낸다. 사실 이 무스타파 역시 그들 셋과 비슷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의 안정을 위해 현 사회에 찬동하는 길을 택했다고 고백한다. 그 후 존과 무스타파는 긴 대화를 서로의 가치관의 차이를 확인하고, 존의 희망대로 그를 외딴곳의 등대로 보내준다.
그곳에서 존은 평화롭게 사는가 싶었지만, 그를 도촬한 한 영화감독으로 인해 그에게 몰려드는 시선에 그는 결국 미쳐버리고, 찾아왔던 레니나를 폭행한 끝에 자살하고 만다.
이 책의 초반, 즉 세계국이 유지되는 방식에 대해 배경지식을 알려주는 부분에서 나는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느꼈었다. 단 하나의 난자로 태어나는 수십 명의 인간들과 자신의 계급에 만족하도록 세뇌 교육을 받은 각층의 계급민들. 정말 무서울 정도로 안정적이고, 동시에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한 모습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이란, 여태까지 이어진 인류사 속에서 '선'과 '진리'를 찾으려던 인류의 험난한 족적 그 자체이다.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 나쁘다를 떠나, 자신이 생각한 궁극의 가치를 찾기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역경에 좌절하며 한 발짝식 진리를 깨우치는 장엄한 모습에서 나는 인간성이 무엇인지 느낀다. 그러나 멋진 신세계에서 등장하는 현대 사회는 죽은 사회나 마찬가지였다. 진리에 대한 탐구를 스스로 저버리고, 오직 인류의 안정과 번영만을 위해 모든 가능성과 변수를 제거한다. 더불어 극한까지 파괴된 윤리관은 더 이상 이 사회의 사람들이 '선'이 무엇인지 깨달을 의지조차 없다는 것을 나타내어, 보는 것을 그만둘까 고민하게 할 정도로 역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중간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존은 나의 이러한 감정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분노하고, 고뇌하며, 보이지 무언가와 싸우려고 한다. 바로 자신의 의지와 감정이다. 정말 내가 생각하는 참된 인간성을 마치 구현한듯한 인물이었다. 그러한 인간이 멋진 신세계의 부패한 사회에 잘 섞여들기 만무했다. 그가 보이는 이상행동은 등장인물들에게는 고역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굉장한 상쾌함을 안겨주었다. 더불어 그가 느낄 고통을 생각하니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불쌍한 존! 그의 입장에서 현대 사회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이 가지는 의문에 대해 공감해주는 사람이라고는 버나드와 헬름홀츠밖에 없고, 그 둘도 완전한 공감은 불가능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끼고 살았던 셰익스피어 전집의 영향으로 셰익스피어 작품 속 말을 곧잘 인용하는데, 가장 많이 인용한 작품인 햄릿과 오셀로, 리어 왕 이 셋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세 개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비인간의 세계로 넘어온 인간의 저항기쯤으로 이 책을 평가했는데, 완독한 후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리 저 세계가 비인간성이 판을 쳐도, 결국 저 세계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의 부정적인 인간성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게 바로 저 세계국이다. 번영하고, 종을 유지하고 싶은 욕구. 다른 모든 것을 제치고 오직 3대 욕구에만 집중하는 인간의 지독한 욕심이 만들어낸 죄악의 정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소설의 구도는 결국 부정적인 인간성 대 참된 인간성의 구도가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존은 그 거대한 싸움 사이에서 고뇌하는 발가벗은 인간인 셈이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장점인 농밀하고 치밀한 묘사로 치장된 레니나의 육체적 유혹과 소마의 유혹을 모두 거부하고 예수 같은 고통을 추구하는 그는 고뇌에 시달리는 인간 그 자체이다.
존은 델타들의 공장에서 배급 나온 소마를 모조리 바닥에 뿌려버리며 그들에게 자유를 찾으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존의 외침이 닿을 리가 없다. 이미 델타들은 깊이 세뇌당해있다. 그의 서글픈 외침은 나에게 우리 안의 양심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흔히 몰지각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양심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죄를 범할 때 지금 하는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처음에 알고 시작하며, 그것에 대한 정신승리나 자기합리화를 통해 점차 그것을 올바르다고 믿은 뒤에 죄를 범하는 것이다. 결국 누구나 이런 "양심의 소리"는 듣는다. 그러나 그러한 양심의 소리가 관습이나 자신의 이익 같은 것에 가려져 들리지 않는 모습은 델타들 앞에서 소마를 버리며 외치는 존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리고 작품의 주제는 난동부린 존이 잡혀간 후에, 통제관 무스타파와의 대화를 통해 집대성된다. 무스타파 역시 젊었을 적에는 이러한 사회 속에서 이단 분자로 판단되어 퇴출당할 뻔했다. 그는 결국 생각을 고치고 사회에 찬동하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그는 아직 옛날의 사회가 남긴 것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그의 방의 금고에는 옛날 사회가 남긴 책들로 가득했다. 비록 대부분의 책들은 분란을 일으킨다면서 불태워졌지만, 그만은 통제관의 권위로 일부의 책을 몰래 옮겨놓을 수 있던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굉장히 특이한 인물이다. 과거가 남긴 아름다움과 미, 그리고 숭고한 삶의 방식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그는 현대 사회 역시 긍정한다. 인류의 안정을 선택한 것뿐이라고. 그는 받아들인 것이다. 인류 존속의 가치를. 그리고 버린 것이다. 목숨을 깎는 행동마저 범하는 인간의 본성을. 어찌 보면 강철 같은 정신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와 대화하는 존은 차츰 이 세상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건지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와 현대 사회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존속을 바라는 것, 참된 선을 바라는 것 모두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추구이기에. 이 책의 주제는 유토피아라는 세상의 역설과 그 비도덕적인 예를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결국 무슨 가치를 따라야 하는가, 역시 하나의 주제이다. 무스타파처럼 인간의 추악함을 긍정하고 존속과 번영만을 위해 살지, 아니면 존처럼 구도자적 삶을 살며 참된 선의 존재를 추구해나갈지. 나는 멋진 신세계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레니나의 변화도 괄목할만한 요소이다. 그녀는 일반적인 알파 계급의 여성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는 존을 사랑하게 되면서 탈피하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존은 호감 가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거리를 두고, 자신과 육체관계를 원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멋진 신세계에서 많은 사람과의 교류는 하나의 미덕이다. 모두는 서로를 소유하고, 한 사람만 만나는 것은 별종 취급당한다. 오늘 처음으로 만난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는 게 매우 일상적이고 도덕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존은 우리와 같은 감성의 사람이다. 호감 가는 대상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하루 만에 침대까지 가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수줍음" 역시 존과 현대 사회의 차이점이다. 게다가 그는 "야만인" 취급당하는 그가 알파 계급의 그녀와 어울린다는 것에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언가 자신이 어울릴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레니나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그런 그를 보며 레니나는 "사랑"을 깨우친다. 그가 나만을 바라보게 하고 싶다는 마음. 여태까지의 가볍고 가변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레니나는 온종일 존의 생각만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지칠 만큼 지친 존으로 인해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음에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아무리 세뇌 교육과 현대 사회의 풍조가 강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은 이리 제어하기 어려운 걸까? 레니나의 변화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눈여겨볼 점이 하나 더 있 는게, 이 소설의 시작은 아이 공장에서 어떻게 난자를 수정시키고 기계 속에서 태아를 배양하는지 부화국 국장이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의 난자로 수십 명의 동일한 아이를 만들고, 성장 도중에 독성 약품을 섞어 성장을 멈추는 것으로 해당 태아가 무슨 계급의 사람으로 태어날지 정한다. 이 작품에서 비인간성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끝은 존이 계속해서 자신을 신기한 동물 취급하며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미쳐버리고 자살하는 것이다. 인간성을 지킨 채 살아가던 존이 결국 현대사회의 역겨움을 견디지 못하고 인간임을 포기한 것이다. 가장 비인간적인 탄생의 과정과 가장 인간적이던 주인공의 죽음. 이것이 이 책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약간 소름이 돋았다.
이 책을 고른 계기는 간단했다.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1984와 쌍벽을 이루는 소설인 멋진 신세계의 훌륭함이 얼마인지 체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많은 고전 명작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고전 명작은 하나같이 그들이 왜 명작이라 불리는지 납득할만한 근거를 독자인 나에게 제시했다. 멋진 신세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옛날 사람의 생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완전히 비인간적인 미래세상. 그리고 그 속에서 생생히 고통받는 존. 다시금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명작이다.
학교 대회 나가는 김에 여기에도 올려봄
독갤의 보배다.
급식이면 대단하노
그를 어떻개 이러케 쓰는걸까?? 대다나다
레니나 베타아니였나?
학교 대회에 내는 글이라 그런가 ㄹㅇ모의고사 지문마냥 통일성 연결성 다 지켜서 단락을 만드네.
레니나는 베타였고, 레니나도 어쩔 수 없는 멋진 신세계인에 불과했음. 존과 총통 빼고 다 똑같아. 버나드도 특이한 척 했지만 그건 결국 자기가 키가 작아서 인정을 못 받기 때문이라는 열등감 때문이었고, 존 덕에 성공과 관심을 누리자 다른 사람들과 다를 거 없이 변했잖아. 레니나에게 관심도 안 주고. 레니나도 존을 "좋아"했지만, 존은 레니나를 "사랑"했기에
레니나는 철저히 멋진 신세계적 관점에서 그냥 섹스 한 번 해보고 싶은 상대였을 뿐이고, 존은 한 명의 배우자로서 레니나를 맞이하고 싶었던 거였기에, 레니나의 태도에 격렬히 분노하며 창녀라 욕했던 거고. 결국 존 외엔 어느 누구도 멋진 신세계의 이레귤러가 될 수 없었음. 그러도록 조작되고 통제된 세계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