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소설의 탄생은 그 자체가 이야기의 위기에서 시작됐다. 이야기의 위기는 고독한 개인의 글쓰기와 읽기에서 비롯됐다. 근대적 서사를 해체해서 이야기를 회복하려는 길과, 이야기와 소통의 불가능성을 더욱 드러내는 길 중에서 어느 것이 옳은지 판단한다는 것은 논의의 진전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역설적으로 이는 모두 문학의 위기를 드러내는 뚜렷한 징후들이다. 소통의 어려움에 대한 대안을 찾거나 그것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길을 모색한다는 길은 양자에게 공통적인 고민이 될 지도 모르겠다.

이차대전 이후 서구의 반서사운동은 19세기에 이루어지고 20세기에 심화된 근대적 글쓰기의 작법에서 일탈하려는 것이었으며, 이는 작가마다 조금씩 다른 특성을 지녔지만 몇 가지로 요약해볼 수는 있다. 정교한 사실적 묘사로 즉물적 세계를 미세화시킨다. 무명이거나 기호로 표시된 등장인물로 고독한 개인을 드러낸다. 도시와 거주공간과 주변 사물의 실태를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사람의 인식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게 표현한다. 그러므로 묘사되는 바깥을 보여줄 뿐 심리라든가 철학적인 의식, 그리고 작가의 주관성을 배제한다. 외부세계에 대한 관찰과 보고에 집중함으로써 타인과 단절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작가는 작중인물이며 기록자이고 독자이기도 하다. 주제, 문체, 인물, 배경의 소설적 요소 등이 배제되고 작가의 시선에 의해 물샐틈없이 치밀한 묘사가 쌓이면서 드디어 현실이 배제된다.


르네 마그리트와 미셸 푸코의 연결점이었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명제가 떠오른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된다.

우리가 보는 것은 결코 우리가 말하는 것에 포함되지 않으며, 우리가 말하는 것 역시 우리가 보는 것 안에 들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