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지금까지 헤겔을 설명하면서 일부러 뉘앙스를 살려서 얘기했는데
그건 그냥 내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름의 이유도 있었는데,
찰스 테일러가 자신의 용어들의 정의를 잘 안 말해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3장 들어와서부터는 테일러가 그 정의들을 차근차근 다 설명한다.
어느 정도로 잘 설명하냐면, 이 책의 의의는 '한 권으로 끝내는 헤겔'이 아니라
'한 권으로 헤겔을 끝내고 말겠다' 정도의 의미로 보일 정도로 세세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그냥 원문을 요약하고, 필요한 부분에 내 해석만 적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를 써서 표시하려 한다.
1000p 짜리 논증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것도 차근차근하게 다 설명하고 있어서 별로 할 말이 없다.
대학자의 면모란 이런 것인가, 싶다.
1.
합리적 필연성의 본성은 무엇인가?
찰스테일러는 합리적=개념적 이라는 식으로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러한 맥락은 영미권 철학계에서는 상당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왜냐하면 개념적 필연성이라는 말은 경험주의적 실증주의적 뿌리로부터 발전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이러한 흐름은 의미가 퇴색되고 있음과 동시에, 오해이다.
개념적 필연성이라는 생각은 우연적, 인과적 필연성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단어들의 의미에만 의존할 때 사용된다. 어떤 진술은 필연적이고 어떤 진술은 모순인데, 그 진술들이 의미에 의존해서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단어들을 결합하기 때문이다.
분석적 진술들이 이러한 유형의 참된 진술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분석성에 의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논리적 진술들이 예로 제시될 수 있다.(말 is 말)
2.
물론 헤겔에게 있어서 개념적 필연성이라는 말의 의미는 이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앞서 보여주었듯이 ‘구조적 조건들’이 체현된 정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었다.] 나아가 그 정신을 밝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었다.
이것은 칸트의 선험적 연역에 가까운 방식이다. (그래서 앞 연재에서 나는 헤겔이 칸트를 계승했다고 말했다.) 칸트의 방식에 대해선 생략(요청하면 댓글로 올림)
하여튼 헤겔의 ‘정신은 유한한 정신들 없이 존재불가’라는 논증은 이런 방식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체현된 정신은 어느 곳엔간 위치해야 하며, 따라서 제한되고 유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와 헤겔의 차이점은 칸트는 개념적 한계가 사물들의 구조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헤겔은 개념적 한계가 우주의 특성을 따라가는 듯이 이해한다는 것이다. 헤겔의 술어로 얘기하면 ‘[사물들의 구조는 개념으로부터 연역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얘기를 잘 따라온 사람도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즉, 이 시점 이전까지 찰스 테일러는 일부러 그런 궁금증을 유도하는 서술방식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목표 속에 출발점이 있어야 하고(그래야 결과를 보고 원인 추리가 가능하니까), 합리적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결과를 보고 원인을 잘 추리할 수 있는 존재이니까)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헤겔의 이해방식은 아니다.]
정신이 스스로에 대해 갖는 상에 절대적 출발점이란 없다. 오히려 순환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해서는 안 된다.(왜냐하면 출발지점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의 구조를 이로부터 도출해서도 안 된다.(전제가 틀렸으니까) 또한 우리는 이 전제를 증명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정신에 의해 정신의 구현물로서 정립되었음을 추론하고자 한다면, 정신의 존재를 위해 세계의 설계를 보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들이 마치 설계된 것처럼 배치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ㄷ이 설계자의 실존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설계자가 있을 ‘개연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성’을 추구한다.
헤겔은 그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며, 그것이 그의 작품들의 핵심이다. 모순적이기 때문에 존재가 불가능한 사물을 설명하기 위해 헤겔은 변증법을 이용한다.
그러니까 모순을 뛰어넘어서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 인식의 진화를 위한 사고방식이 변증법인 것이다. (내 표현)
그리고 그것으로 실재를 정신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헤겔은 말한다.
3.
헤겔의 논증의 천재성은 시작은 빈약하지만(앞서 글에서 설명했듯이 최초의 시작에 대해서는 개연성밖에 확보 못함) [이런 종류의 복합성을 모든 출발점에서 발견한다는 것이다.]
헤겔의 주체(즉 주체라는 개념은 철학자마다 다르다.)는 모순 속에 있다. 왜냐하면 주체들의 실존 조건들은 그 목적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설명하기 위해 헤겔은 유한한 실재로부터 출발해서 세계를 합리적 필연성에 ᄄᆞ라 정립하는 우주적 정신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 유한한 사물을 사물들이 출발할 수 있기 위해 부여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헤겔의 출발점은 이것조차 아니다. 유한한 존재의 실존은 스스로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에 순환 또한 가정에 의거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이 한 문장만 내 표현)
그러나 이러한 원환으로의 무한퇴행도 피하는 것이 가능하다.(사전 안 찾아봤는데, 원환을 순환으로 이해함.) 헤겔은 유한한 실재가 정신의 유출로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정립하는 정신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저하튼, 우리에게 부여된 것으로 여겼던 유한한 실재의 실존은 필연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by 헤겔.
이것이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비판이다. 헤겔적 원환은 잘못된 논증으로 알려진 원환 논증과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전제들 속에 결론이 이미 나타날 때 우리는 원환에 빠졌다고 한다.] 논리적 설명 이어지는데, 걍 스킵함. 논리학 문제임.
그의 철학에서 정신의 자기정립은 필연적인데, 이런 필연성은 정신을 가정할 필요 없이 변증법 속에서 유한한 사물들의 실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그리고 유한한 사물들의 필연성은 정신의 요청으로부터 흘러나온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서로를 출발점으로 확립하는 두 계열의 비순환적 논증일 것이다.](나는 나선형 논증이라 생각)
헤겔은 변증법을 상승과 하강으로 구분해서 말하는데, 이것은 위계와도 연결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이 이후의 내용은 상승 변증법과 하강 변증법의 설명인데 그것은 얘기해도 이해하기 힘들 부분처럼 보이므로 이 정도로 글을 줄이려고 한다. 나도 그냥 어렴풋이나마 흐름이나 보는거지 뭔 말인지 모르겠고. 그래도 요청하면 댓글로 닮.
이거 쓰는거 너무 힘들어서 그냥 일주일 1회로 제한하고, 님들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거 다 답하기로 하겠음. 이런 식으로 해야 덜 힘든 거 같다.
179p-189p임
찰스 테일러 헤겔 존나 땡긴다
책 좋은 건 인정. 200p 가까이 가니까 존나 심후함이 느껴지니 할 말이 없다. 2장까지 내용만 기를 쓰고 이해하면 3장부터는 비전공자도 그냥 따라갈 수 있게 해놓은 헤겔 책이라니;;; 전설의 명저로 평가될 듯.
분석과 논리의 차이점은 논리는 동일성에 대해서 다루고, 분석은 추리를 다룬다고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굳이 댓글로 이렇게 다는 이유는, 한글에서 복붙으로 옮기니까 수정하려면 문단 띄어놓은 게 다 날라가더라.
존나두꺼운그책이군 - dc App
뭔가 아무래도 이 책을 직접 읽는게 아니다보니 맥락을 못따라가겠다.. 합리적 개념적 필연성같은 말이 헤겔 원서에도 나오는건가
모름. 헤겔 원서 안 읽어봄. 실제로 찰스 테일러는 자기는 용어 맘대로 쓰겠다고 서문에 써놨음.
일단 아직도 정신이 의식이 전제돼야만 하는 인격적 생물적인건지 다른 의미가 있는건지 모르겠어서.. 일단 그걸 알으야 정신이 실재여야 할 필연성을 따져보든지 할거 같은데 ㅋㅋ
이거는 들뢰즈 철학에서 본거지만. 지각 기억 판단같은 상식적으로 의식이 전제돼야만 할거같은 정신작용들을 무생물도 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할 방법은 알고 있음. 지각 기억 판단같은 개념을 해체해보면 개념들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 그냥 사물들의 상호작용과 그 결과의 성질들과 등치될 수 있다는걸 들뢰즈에게서 본거 같음. 근데 헤겔이 그렇게 생각했을거 같진 않은데. 그럼 다른 뭔가가 있는건가
그 부분에 대해선 헤겔은 무생물들을 철저히 무시했음. 내일이나 모레나 언제고 일주일 안에 그 부분에 대해서 올리겠음. 난 자러간당 ㅃ
ㅇㅋ ㅂㅂ
그리고 헤겔 읽다보면 결국 칸트에서 많이 따온걸 느끼게 되긴 하던데. 예를들면 지금(시간)과 여기(공간)를 감성적 확신의 장에서 다루고, 지각에서 범주적인 것들을 다루는것 같단거? 근데 난 아직 왜 시간과 공간은 감성적인 거고 범주는 지성인지? 잘 모르겠음. 이런 구분이 진짜 정당한가. 감성적인 것을 모두 배제하고 나면 시간과 공간이 선험적 형식으로 남는단걸 알게 된다는데. 표상의 다양은 범주들 안에서 질서가 잡히기 이전의 것이라 선범주적이지만, 무질서라도 최소한 시간과 공간은 먼저 있어야 생겨날수 있는 것이라 그렇게 구분하는건가
유한한 존재의 실존증명을 순환논증이 되게 하지 않으려면 정신이 필요하다는 부분. 알거 같진 않지만 뭔가 짐작가는게 생길거 같다. 이 부분은 뭔가 참고가 될거 같네
독서일기들도 도전으로 넣는 거 어떻게 생각함
취지는 고맙지만 난 도전으로 하는 게 아니라 걍 쓰는 거니까 ㄴㄴㄴㄴㄴㄴ - dc App
독서 꾸준하네 멋지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