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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금주의 유튜브/‘방역농단’이라는 우파들의 농담
이건 뭐 덧붙일 말이 없네. 우파 코인 타는 유튜버들에 대한 기사...인데,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이 들어간 글을 기대했는데 표상적인 내용에 그침. 방역농단 운운하는 유튜버들의 논리가 얕다, 그런데 그런 우파 유튜버들의 논리를 보수 정당에서 그대로 답습한다,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며 진짜 농단은 남의 권리를 우습게 여기면서 ‘코인 팔이’를 하고 있는 유튜버들일 뿐이라는 글. 이런 우파 유튜버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 그 기저에 깔린 심리가 어디서 기인하는지에 대한 기사를 기대해봄.
8. 홍성수의 ‘굿바이 차별’/‘노란 옷 출입금지’와 ‘히잡 출입금지’의 차이
차별금지법에 대한 분석기사. 지난호에서도 칼럼에 대한 리뷰를 쓰지 않았는데, 내가 뭐라고 정리하기가 힘들어서 그랬는 듯. 이번호도 마찬가지. 무척 잘쓴 글이니 직접 읽어보는 걸 추천. 코너 전체가 다 읽을만한 기사였음.
9. 고기로 태어난 소는 초원을 본 적이 없다
10. 우리는 ‘어차피족’인가, ‘최소한족’인가
두 개의 별개 기사지만 하나는 분석, 하나는 인터뷰라 그냥 묶어서 리뷰함. 별로 길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기사에 쓰여진 논지가 수만 번은 반복되었을 채식만능주의에 대한 이야기 + 육식이 자연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별다를 것 없는 분석기사라서. 몇 가지 얘기만 꼽자면 다음과 같다.
1. 채식만으로도 정말 정상적인 운동능력을 유지하는 걸 넘어서 향상시킬 수 있는가? 기존 상식과는 대치되는 이야기라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예로 들어도 그냥 채식 프로파간다처럼 읽힘.
2. 공공급식의 채식 선택권 얘기는 얼마 전에 나온 뉴스이기도 하고 흥미롭게 읽혔다. 군대 내에서도 채식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었는데 살짝 언급되네. 그런데 아ㅋㅋ ‘한국 정치권과 정부는 비건 트렌드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약한 편’이라는 표현은 전형적인 트위터식 어법이라 당황스럽다.
3. 김한민이라는 작가이자 번역가, 또 비건으로 활동하는 사람의 인터뷰. 타이틀이기도 한 ‘어차피족’과 ‘최소한족’의 구분법은 꽤 인상깊게 다가왔다. 어차피 나 하나쯤이야, 와 최소한 뭐라도 해보자, 해서 비건이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가 어째서 비건이 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 짚은 몇가지 꼭지는 꽤 날카로운 부분. ‘복지농장’의 한계점, 장마를 겪은 뒤 살아돌아온 소가 결국 도축장으로 끌려갈 운명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당혹감, 고기 소비 앞에서 결국 동물들의 희생에 눈감아버리는 사람들을 꼬집는 부분, 각종 동물축제에 대한 비판 의식 등.
4. 그런데 ㅋㅋㅋㅋㅋ 코로나19 사태가 동물과 인간과의 인수감염병으로 이어진 결과물인 건 맞는데, 이를 동물과의 관계 개선(그러니까 비건 활동으로 가야 한다! 는)문제로 잇는 거는 진짜 개억지 아닌가. 인류의 역사는 곧 전염병의 역사고, 의료와 위생의 역사이기도 한데. 생태계를 건들지 않으면 타 동물이 오랜 시간 공생해온 바이러스가 인간들의 세계에 퍼지지 않을 것이라는(물론 기사에는 이렇게 간단하게 쓰진 않았다) 1차원적인 발상이라 좀 할 말이 없다.
11. 정희상의 ‘괄호 속 현대사’/희생자 유족이 내민 손 외면하는 국방부
6.25 당시 일어났던 수많은 민간인 학살 중에서 유일하게 4.3 사건이 기억되는 이유는 그 사건의 스케일이 커서였을까. 또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무고하게 희생되었을까. 전남 함평에서 일어났던 ‘5중대’에 의한 학살사건에 대한 기사.
12. 신성 모독의 자유 <샤를리 에브도> 재판
2015년 1월 <샤를리 에브도>에 벌어진 테러에 대해 올해 9월 초에서 11월까지 이어지는 관련 재판 소식을 전달하는 정리 기사. 이번 재판이 역사에 남을 재판이기에 재판정 촬영도 허락되고, 자료로서 남을 예정이라고 한다.
13. ‘지금 여기’의 노동/복직 노동자 짓누르는 30억원 손배 가압류
https://namu.wiki/w/%EC%8C%8D%EC%9A%A9%EC%9E%90%EB%8F%99%EC%B0%A8%20%EB%85%B8%EC%A1%B0%EC%9B%90%20%ED%8F%89%ED%83%9D%EA%B3%B5%EC%9E%A5%20%EC%A0%90%EA%B1%B0%20%EB%86%8D%EC%84%B1%20%EC%82%AC%EA%B1%B4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쓴 에세이. 복직은 했지만 손배가압류로 인해 망가진 일상에 대한 일기 같음. 노동자, 노조, 시위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이 부정적인 것도 알고 있고, 나도 이들의 현실과 크게 괴리되어 있기 때문인지 관심이 없다. 관련 뉴스가 나오면 일부 사람들처럼 노조 욕을 하면서 끼어드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관심을 표하면서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알고자 하지도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무관심 속에서 흘러가는 이슈로 취급할 뿐이다. 어려운 문제. 이번에도 그렇게, 그냥 흘러가는 이슈가 되버린 걸까.
14. 김형민 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군밤 장수 일화에서 고종의 악덕을 엿보다
대역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까이는 군밤에 대한 이야기.
15.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만화/가정 사정 고려
부칸 이슈로 불탄 일주일 전에 이런 만화라니... 한국이 미중 신 냉전에서 북한을 핑계로 그 사이에서 줄타기한다는 내용. ‘구냉전의 잔해 속에 숨서 신냉전에서 열외를 꾀한다’, 결국 북한은 머리에 이빨을 박고 붙은 헤드크랩인데, 신냉전을 피하려고 해봤자 구냉전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비극이다.
CULTURE & LIFE IN
16. 미국 음악산업 시스템 ‘아미’가 전복했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1위를 차지한 것이 BTS 팬덤인 아미들 덕분이라는 것. BTS의 인기가 허울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미국의 4대 음악상으로 대표되는 미국 음악산업이 이번 곡 ‘다이너마이트’를 통해 얼마나 굳게 닫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데, 그것이 아미 덕분에 뚫린 것이고, BTS는 앞으로도 더욱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 봉준호의 “오스카는 로컬”이라는 발언이 알게 모르게 기생충의 4관왕 수상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BTS의 성공 역시 미국이 미국만의 닫힌 시장(지금까지는 그렇게 해도 미국이 곧 세계였으니...)으로 남지 않고 외부로 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17. 그림의 영토/어느 날 인류가 멸망했다
인류 멸망 이후 로봇들이 인간들 대신 지구에서 살아가게 된 세상을 그린 그림책. 많이 본 소재지만 역시 매체가 달라지면 느낌이 달라지는 걸까?
18. 한승혜의 북 인사이트/개천에서 용 나게 하는 제도권 교육
<힐빌리의 노래>, J.D.밴스
위의 책에 대한 리뷰. 미국사회의 양극화에 대한 고찰이 담긴 책. 왜 교육이 중요한 것인지, 양육 환경과 교육이 얼마나 인간을 다르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내용인 듯. 거기에 더해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생겨난 교육 격차에 대한 걱정이 섞인 리뷰인 듯.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던 부분. 모든 사람이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지만 학생들, 그 중에서도 저소득층 아이들이 최근의 현실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됨.
19. 사진으로 본 세상/빗나간 ‘과학 의리’, 음모론의 빌미 되다
조작된 과학적 증거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후지무라 신이치의 유물 발굴 사기극도, 황우석도, 필트오버인도 있다. 이 기사는 사진가가 쓴 글이니 만큼 사진과 관련된 조작극을 소개한다. 에른스트 헤켈의 ‘발생반복설’에 대한 이야기. 19세기 중반에 사진은 ‘과학 발전에 대한 기여’가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꼽혔다. 그는 현미경을 통해 찍은 각종 척추동물의 배아 초기 사진을 이용해 자신의 주장(모든 생물은 발생 시 동일한 패턴을 반복한다)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는 조작이었고, 이를 밝혀낸 것은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헤켈의 사진 조작을 증거로 진화론이 잘못된 이론이라고 말하고 싶어 했다. 진화론을 증명하고자 내세운 증거물이 그것을 부정하도록 만든 것이다.
물론 현대에 들어서 헤켈이 조작까지 하면서 내세운 주장은 대부분 맞는 이야기로 드러났지만, 여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최근 창조과학 같은 유사과학들, 지구 평면설, 5G가 코로나를 유발한다는 뇌텅텅 주장, 극우 기독교계가 주장하는 코로나음모론 같은 이야기에 과학계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가? 과거 사례가 입증하듯 과학자도 이러한 엉터리 논리를 늘어놓지는 않았는가? 이 주장이 터무니없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과학계에 수시로 일어난 수많은 사례들 때문일 것이다.
20. 뜻밖의 유럽/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지그소 퍼즐
삼삼한 칼럼. 코로나 19로 인해 수요가 늘어난 직소 퍼즐에 대한 역사에 대한 글. 재밌게 술술 읽힌다.
21. 불편할 준비/‘코로나 블루’의 심상치 않은 징후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시민들의 심리적 상태(코로나 블루)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이 경제 논리에 앞서기 때문에 이런 우울적 징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지 않나? (여성들이 이러한 상황에 더욱 피해를 받고 있으며) 경제 논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존재들(여성?)을 살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라는 글.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의문이 생긴다. 원문의 핵심 문장을 옮겨보자. ‘코로나19 이후 각종 사회지표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는 가운데, 코로나19가 유독 여성의 삶을 더 잔인하게 후려치고 있다는 데이터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글은 결국 작가가 쓰고자 하는 내용을 위해 취사선택되고, 탄탄한 구성을 갖춰 기승전결에 따라 쓰여져야 한다. 그 와중에 통찰을 잃지 않고도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일정 정도의 편향성을 띌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가 이 편향성에 불편해 하는 것이 옳은가? 실제로 여성들이 사회에서 더 피해를 받는 것은 사실이고, 어쩌면 코로나19가 여성들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주장(사실인지 아닌지는 관련 데이터를 접한 적이 없으니)이 옳을지도 모르지 않나.
그럼에도 ‘소외된 여성들의 피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글이 불러온 미묘한 불쾌감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건가? 내 한/남력? 내 속에 숨겨진 여성혐오? 글쎄, 그건 아닐 텐데.
22. 새로 나온 책
1.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를 반대한다>, 하승수
2. <두 번째 산>, 데이비드 브룩스
3. <상관없는 거 아닌가?>, 장기하
4. <도미니언>, 톰 홀랜드
5.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파울 페르하에허
6.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읽어 보고 싶은 책은 4번, 5번.
4번은 기독교가 어떻게 서구 사회를 지배하는 세계관이 되었는지, 그 결과로 세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분석한 책.
5번은 앞서 언급했듯 이번 680호를 관통하는 주제, 개인주의/자유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평등과 연대가 왜 구시대적인 감성이라고 여겨지는지에 대한 책. ‘권위’가 부재한 시대에 ‘권력’이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음.
1번은 현대 한국정치의 개혁에 대한 내용, 2, 3, 6번은 평범한 에세이라 끌리지 않는 듯.
23.기자가 추천하는 책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 황세원
포드주의로 대표되는 공장 기반 노동(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된 현재의 고정 직업)을 고체 노동이라고 한다면, ‘녹아내리는 노동’, 액화노동은 디지털 시대에 생겨난 유동적인 직업. 흔히 생각하는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웹툰이나 웹소설 작가들도 이쪽에 포함될 수 있겠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311839001&code=210100
책 내용에도 소개되어 있다시피 올해 초 경향신문에서 나온 특집기사 <녹아내리는 노동>에서 소재를 찾은 듯하다. 저자는 기사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도 의문을 품는다. 그럼 이렇게 녹아내린 노동이 무작정 나쁜 것인가? 과거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던 것이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나아진 게 아닐까? 과거의 녹아내린 노동은 누가 했으며, 사회와 정부는 그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주었을까? 또 이런 녹아내린 노동을 다시 단단한 노동으로 만드는 게 옳은 방법일까? 즉 모든 노동이 결국은 말랑말랑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제시를 하는 듯.
위에 덧붙인 링크를 읽으며 생각이 많아졌는데, 이에 대해서도 한번 추가로 정리해보고 싶음.
24. 기자의 프리스타일 – 도서정가제 이전을 떠올려보자
개인적으로 기자의 프리스타일 코너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데, 공정한 기사가 아니라 기자 개인의 사담+입장이 섞인 글이라서 그렇다. 나와 입장이 많이 다른 페이스북 글을 읽는 느낌 같다고 할까. 하지만 도서정가제에 대한 이번 꼭지는 딱 내 생각과 맞아떨어졌다.
도서정가제를 악법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과거의 미친 할인율을 떠올리면 그게 과연 올바르게 돌아가는 부분이었나? 싶은 생각이 매번 듦. 당시의 50~70% 할인이 빈번하던 그때, 당장 책을 싸게 사가는 내 입장에서야 좋았지만 그게 출판시장 생태계를 얼마나 망가트렸을 있는지를 생각하면 도서정가제가 도입될 수밖에 없었을 듯. 결국 미친 듯이 할인하여 박리다매를 하면 소형서점/출판사는 이기지 못하고 스러졌을 거고, 대형서점 몇 개와 온라인서점으로 몽땅 통합되버렸을 테고, 지금의 소형 독립출판사들도 생겨나지 못했을 텐데. 그걸 경제 논리에 따른 시대의 흐름이라고, 도태될 건 도태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책은 누가 만들까. 지금도 양서를 만드는 비용이 투자 대비 효용이 최악인데, 그걸 그냥 자유시장에 던져버리고 각자도생하라는 요구를 볼 때면 어처구니가 없다.
25. 시사 에세이/오자서와 마이클 조던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김인회 인하대학교 법학교수의 에세이. ‘정의와 분노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첫 문장이 글 전체를 요약할 수 있을 듯.
정의는 공정한 분배 원칙으로 작동한다. 사건이 발생하면 정의는 피해자를 구제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며 손해도 배상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감정이 개입되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복수일 뿐이다. 디지털교도소는 사법에 대한 불신으로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성범죄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처벌의 수위보다 낮으므로 정의가 충분히 달성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정의로 포장된 개인의 분노이며, 그런 분노가 작동한 사적 제재는 결국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의에 대한 오해가 분노를 정당화한다. 나는 항상 옳고 상대방은 항상 틀리다는 생각이 정의와 분노를 결합시킨다. 그러나 항상 그러한가?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평등하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나도 존중받지 못한다. 사람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일 순간을 위해서라도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가혹함은 언젠가 반드시 내게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요약하긴 했지만 원문이 너무 띵문이라 원문 읽어보는 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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