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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독서라는 취미를 즐기는 것은 어느 정도의 이목을 사는 모양이다. 많게는 그 책이 재미있는지를 묻는 사람도 있고, 또 드물게는 책을 잠시 줘 보라고 재촉한 후 몇몇 페이지를 훌훌 넘겨보다가 다시 돌려받았던 난데없는 경험들은 과거에도 드문드문 겪었고, 아마 앞으로도 이따금씩 겪을 것이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많든 적든 이러한 경험을 목도한 적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단연 "그 책 재밌어?"라는 질문으로, 이 질문을 받았던 초창기에는 책의 제목부터 좋았던 점까지 질문자를 붙잡고 중언부언해 가면서 열성적으로 독서라는 취미를 공유하도록 종용해야겠다는 의무감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한 경험이 꾸준히 쌓인 결과 책이 재밌느냐는 질문은 그 책을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그 책들이 뭐가 좋아서 허구한 날 매일같이 붙잡고 있는 것인지를 물어봤던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 이후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 재밌어."라는 단정적인 대답으로 대화를 마무리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는 저 답변을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매번 저 말을 되풀이했다. 그 책이 재미있건 없건 상관없이.
사실 나에게는 저런 질문이 곤혹스럽기만 하다. 이 곤혹스러움은 저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하기 힘들다는 이유가 최우선적으로 떠오르지만, 근본적으로 나에게는 책 자체가 재미있다기보다는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즐기고 좋아한다는 것이 더 크다. 책의 내용은 보통 재미있는 것보다 재미없는 것이 훨씬 많고, 보통 명작이라고 불리는 책들도 그러한 책들이 단순히 재미가 있냐 없냐의 여부가 아니라 읽고 난 다음 독자로 하여금 여운을 느끼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논리적으로 하등 문제가 없는 완벽한 트릭을 제공하거나, 독자들의 테이스트를 100% 충족하거나, 압도적인 문체로 읽는 이를 감화시키는 등 그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읽는 독자에게 큰 울림을 선사한다는 것이 명작으로 꼽히는 문학 작품들의 공통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이상으로 사람들이 책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고 그 사람들의 개인적인 취향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적어도 재미라는 단순한 자만을 이용해 명작을 재단하려는 행동이 손쉽게 성공하리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데카메론』이라는 책은 수많은 명작들 중에서도 재미라는 기준을 가장 잘 충족시키는 편이다. 이 책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7명의 여자와 우연히 만난 3명의 남자, 도합 10명이라는 사람이 전염병을 피해 한적한 시골의 별장으로 놀러 가 그날의 왕, 왕비로 선출된 사람이 정한 주제에 걸맞는 이야기 1개씩을 10일동안, 총 100개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웃고 즐기는 소설이다. 신앙심이 과한 남편을 속이고 성직자와 놀아나는 이야기, 우연한 기회에 친해진 왕녀와 결혼하고 신분 상승하는 이야기, 어리숙한 바보에게 친구들과 젊은 처녀가 짜고 바보의 아내에게 불륜 현장을 안내해 흠씬 두들겨 맞게 하는 이야기 등 가볍고 즐겁게 읽을 만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단순히 재치로 다른 사람들을 감복시키거나, 명예로운 행동을 보답받아 해피 엔딩을 맞은 사람들 이야기, 끝내 성공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처럼 평범한 주제부터 남편, 아내가 각자의 배우자를 속이고 몰래 간통하는 이야기, 임기응변으로 간절히 얻고자 하는 것을 얻는 이야기처럼 당시 사회는 물론 현대 사회에서도 터놓고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로 민망한 내용의 이야기들도 평등하게 수록되어 있다.
이 100가지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불륜을 꿈꾸고 행한다는 것을 근거로 종교를 욕보인다, 여성들을 필요 이상으로 좋게 묘사한다는 등 이 책을 비판하는 당시 사람들의 관점과 관념도 엿볼 수 있다. 작가인 보카치오는 이러한 비판에 사람마다 생각하는 가치관이 다르고, 똑같은 일이라도 그 일에 좋은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고 나쁜 영향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듯이 자신의 책은 타락의 촉매제가 될 수 없음을 항변한다. 물론 저런 비판은 21세기의 사람이 볼 때에도 낯뜨겁게 느껴지는 구절이 분명 존재해 14세기의 사람들은 오죽하겠냐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회가 필요 이상으로 경직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사람은 각자의 욕망과 소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최우선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지 종교가 타락했고 여인들이 억압받는다는 것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인들이 대체로 나쁘게 묘사되긴 했지만 분명히 명망 있는 교황 등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종교인들도 등장하고, 여자는 남자에 종속된 존재임을 부정하기는커녕 이야기의 시작과 끝 중간중간에 여인들의 입을 빌려 여성이 종속된 존재임을 충분히 지지한다. 이처럼 보카치오를 비판하던 당시 사람들이 드는 예시는 분명 미약하나마 같은 책 안에서 부정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지만, 핵심 주제는 관능적인 이야기들에 하나도 빠짐 없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행동한다.'라는 것이고, 이것에 초점을 맞추어 더 크고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의 비판점들도 전부 사람은 각자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갈구하고 고뇌한다는 핵심 가치를 묘사하다보니 필연적으로 드러나는 비판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보카치오를 변호하건대, 그의 이야기 속 많은 종교인들이 색욕을 갈구하는 것은 아무리 지위가 높고 고결한 존재더라도 사람인 이상 욕망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주장하다가 드러난 맹점이고, 여자들이 적어도 14세기의 관점에서 필요 이상으로 대우받는다는 것도 그 당시 관점인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적인 존재임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이런 종속적인 존재더라도 자신의 욕망이 고프면 얼마든지 남편을 속이고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존재임을 주장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정리하자면, 권위든, 재산이든, 종교적 신념이든, 성별이든 상관없이 무릇 사람이 가장 갈구하는 것은 자신의 본능적인 욕망이라는 것이다.
욕망의 표출과 절제는 서로 대응되는 단어긴 하지만, 적어도 욕망의 표출을 주장하는 모든 것이 자기 절제를 비판하는 모든 것에 대응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카치오의 실제 생각은 욕망의 표출을 주장했던 것은 명백하게 맞지만 자기 절제의 경우 이를 비판하려고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는 영역이다. 그는 독실한 카톨릭교도와 기독교도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땅에 사는 유럽인이었고, 실제로 집필 도중 보카치오가 종교를 모욕한다고 느낀 종교인들의 꾸준한 압박을 느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누그러트렸을 가능성도 충분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이므로 그에게 필요 이상의 멍에를 메도록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물론 21세기의 관점으로 볼 때는 저런 비판이 부당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14세기에는 여성을 거의 남성과 동등하게 바라본다는 비판을 받았고, 21세기에는 저런 종속적인 여성상이 긍정되는 사회가 아니므로 현대에 완전무결한 평가를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적어도 여성의 위치에 대한 그의 생각이 오롯이 긍정되는 시기는 14세기와 21세기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긴 할 것이다. 이 사례처럼 집필한 시기와 현재의 기준과 가치관에 동시에 어긋나더라도 과한 비판은 삼가야 할 것이다. 14세기 사람인 그의 시선이 당대 기준으로는 오히려 진보적이라고 비판받았지만, 21세기의 기준으로는 한없이 보수적임은 물론 남녀차별자로 까지 보이겠지만 당연히 시대의 흐름을 고려해야 하는 일이므로 보수적이라는 비판은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오늘날 읽는 사람들은 시대의 흐름에 빛바랜 요소에 몰두하지 말고, 한없이 가볍게 10명이 웃고 즐길 때 같이 웃고, 10명이 분개할 때 같이 분개하는 등 내용을 가볍게 즐기는 것이 이 책을 소화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출판사는 어디꺼임??
동서문화사
근데 보카치오의 맺음말 보면 자기는 그냥 부인들을 위해 이야기를 썼다고 하니, 사실 거창한 목적과 주제를 함의하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이탈리아의 이야기들 총집합 같은 느낌이 들더라. 일종의 깔깔 유머집 같은 거랄까. 격식 없고, 그렇기에 즐길 수 있는. 물론 중간중간 심장 요리 같은 즐기기엔 섬뜩한 것도 있지만(...)
나는 욕망의 표출을 읽기보다는 성직자들의 타락상을 먼저 읽었고, 네 감상에 크게 반하는 건 아니지만 이탈리아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욕망에 솔직해서 웃기고 재밌지만 너무 진이 빠지더라ㅋㅋ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거 같아서.
나도 거창한 목표보다는 본인이 주워 들은 유머집이라는 느낌이 제일 먼저 들었는데, 4일째 시작할때 갑자기 작가가 난입해서 하소연하는거 보고 내 나름대로 변호를 해주고 싶었음 ㅋㅋ
저기 써 둔 두개의 비판은 작가 본인이 실제로 들었던 거고, 작가가 성직자들의 타락상을 다룬 게 아니라면 1차적으로 개인의 욕망이라는 바운더리로 묶을 수 있겠다 싶었어. 적어도 이 책에서 외설적이고 진솔한 이야기들 전부를 개인의 욕망으로 묶을 수 있겠다싶어서 고른거고 작가 변호는 내가 목표한대로 이루었다고 생각해서 만족하는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외설적이고 진솔한 건 다 자기 욕구때문이고 다른 이유가 전혀 없지. 게다가 저런 외설적인 부분을 제외한 9일차, 10일차 이야기들은 저렇게 설명이 안되서 깔깔유머집 쪽이 더 맞기도 해. 어떻게 보면 답정너스러운 추론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난 그래도 당대에 비판받는 부분만이라도 나름 단일화시켰다고 봐서 자기만족은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