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의 ZUCKERMAN UNBOUND (1981; Library of America, 2007)은 "ZUCKERMAN BOUND" 4부작(3부작 + 에필로그)의 2편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첫 편인 THE GHOST WRITER가 존경하는 소설가 로노프의, 문학에 모든 것을 바친 금욕적인 삶을 자신도 따르고 싶어하는 스물 세 살 풋내기 작가 주커만의 환상을 담았다면, 두번째 편인 ZUCKERMAN UNBOUND은 주커만의 그 환상이 완전히 깨진 세계를 그린다. 시간은 1969년이고 이제 서른 여섯이 된 주커만은 자신의 네번째 소설인 CARNOVSKY의 성공으로 일약 백만장자 셀레브리티가 되었다. 스물 세 살 주커만이 존경했던 로노프는 외딴 시골에서 은둔하는 삶을 살지만, 서른 여섯 주커만은 세번 째 이혼 후 뉴욕 한 가운데의 부유한 아파트에서 살고 버스와 길거리와 카페에서 그를 알아보는 팬들에 휩싸인 번잡한 삶을 산다. 전통적인 '작가'의 삶이 일거수 일투족이 신문 가십면에 실리는 '셀렙'의 삶으로 변했다는 것은 어떤 한 세계가 끝나고 다른 세계가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이 소설이 1969년을 배경으로 해서 1981년에 발간되었음을 감안한다면, 2019년의 작가란 어떤 삶을 사는 것일지 대충 짐작은 된다. 1969년의 주커만이 기자들을 피하려고 노력하며 산다면, 2019년의 유명작가는 기자와 친구가 되고, SNS에 매일 자기 삶을 스스로 올리고,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추며 연예인이 된다. 당연히, 작가의 그런 달라진 삶의 환경은 거기서 생산되는 '작품'의 특성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다. (그 바뀐 특성이 어떤 것일지도 짐작 가능한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말해보도록 하자.)
주커만을 백만장자로 만든 베스트셀러인 CARNOVSKY는 필립 로스의 논쟁적인 베스트셀러 PORTNOY'S COMPLAINT (1969)일 것이다. 이는 소설에서 주커만이 수많은 독자, 특히 유대인 독자들로부터 유대인 사회를 모독한 외설적인 소설을 썼다는 비난을 받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For depicting Jews in a peep-show atmosphere of total perversion, for depicting Jews in acts of adultery, exhibitionism, masturbation, sodomy, fetishism, and whoremongery ...
ZUCKERMAN UNBOUND, 123
이 비난은 THE GHOST WRITER에서 가족사의 민감한 문제를 다룬 단편을 쓴 주커만에게 그의 아버지가 했던 비난을 환기시킨다. THE GHOST WRITER에서 주커만이 자신의 소설을 유대인 정체성 앞에서 굽히지 않았다면, 이 소설에서 그는 아예 두꺼운 외설적 장편으로 유대인 정체성에 정면으로 맞서는 셈이다. 유대인성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삼는 주커만의 아버지가 이 소설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있다는 설정은, 이제 주커만이 아버지의 영향에서 거의 완전히 벗어나 자신의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상황으로 변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그는 아버지와 유대인 정체성이라는 사슬을 끊고 '해방'된 것으로, ZUCKERMAN 'UNBOUND'--이 제목은 P. B. 셸리의 희곡 PROMETHEUS UNBOUND (1820)의 변형이다--라는 제목이 이를 선명히 보여준다.
(생략)
페플러란 캐릭터는 루저-팬의 전형을 담고 있는데, 로스의 펜에서 흘러나오는 페플러의 끝없는 장광설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로스 소설을 읽는 재미이자 로스의 특장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인데, 로스는 부차적인 인물들을 극도로 세심하게 그려냄으로써 단순하게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위대한 소설(가)은 모두 그렇다. 인물과 현실의 다른 측면들을 섬세하게 포착함으로써 세상과 인간을 단순하게 분류하는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서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카프카가 말했던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로서의 소설이란 바로 이 역할을 의미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러니까 땡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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