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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의 말처럼 문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이다.

최고로 손 꼽히는 고전들을 읽어보면 단순히 글의 미학적 완성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감정과 생각, 사상과 철학들이 잘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교내에서 진로 활동을 하며, 현대 소설들의 특징을 알아보았는데 자료로 최근 일어난 이슈들과 신춘문예 분석글을 비교해 보는 것이었다.

페미니즘, 난민, 1인가구. 사람들의 개인화 등의 굵직한 사회적 문제들이 대부분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주제로 사용되고 있었다.

당연히 문학은 그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젊은 작가들의 글들이 있는 신춘문예에는 지나치게 그것들만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주제가 통일화되다 싶이하고 깊이가 없는 것에 비해 글의 구성이나 문장의 수려함과 같은 기술들은 이전보다 높다는 점이다.

최영훈이 말한 것처럼 글쓰는 기술만 있고 알멩이가 없다는 거다.

남들이 다 생각하는 범위에서 의구심을 품고, 해답을 내고, 메세지를 던진다.

화려한 글 속에 작가가 내포한 사고는 너무나 조악하고 형편없다.


글 솜씨는 분명 소설의 완성도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맞다. 그 점이 내가 문창과 진학에 회의감이 든 이유이기도 하고 지원한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을 습작으로 세편 정도 써봤는데 주제는 둘째치고 글이 너무나 형편없었다.

개 중 하나는 자전적인 내용으로 썻는데 인간실격의 문체와 너무나 비슷했고 스스로도 그 작품을 내심 생각하고 쓴걸 알기에 자신의 글쏨시에 대한 향상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내가 문창과를 지원한 이유는, 내 글 솜씨가 부끄러울 정도로 낮고 소설에서도 글을 잘 쓰는것이 어느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렝 로브그리예의 '질투'에서 내용애 비해 고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히 새로운 형식를 제시한 문체 때문이며

하루키의 기묘한 전개와 맥락없는 이야기들이 깊게 다가오는 것은 리듬감있는 그의 글 때문일 것이다.


그런 연유에서 나는 문창과를 지원하는 것이며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문창과를 지원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깊은 사고란 것은 쉽사리 되지 않는다. 마광수는 요즘 작가들은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에 집착해 그들의 사상을 따라하고 깊지 않은 사고와 해답을 낸다고 했다.

요점은 자신의 생각 이라는 것이다.

최영훈과 마광수의 말 처럼 결국에 중요한 것은 자기 생각이다.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어야한다

하지만 그 것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글을 쓰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