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봄눈> 이벤트 주최자니, 이 글은 (어차피 졸문이나) 수상작에선 제외합니다.
# 늘 그렇듯 사견에 주의하세요. 추론을 빙자한 뇌피셜이 심한 부분은 이 글씨체로 표시하겠습니다.
# 책을 읽을 독붕이들을 배려해 스토리 전체를 다루진 않겠습니다. 이야기가 본격 전개되기도 전인 1/4 지점까지만 인용합니다.
너무 아름다운 기초
사찰의 탑에는 ‘기단’이 있습니다. (짤은 그냥 제가 좋아하는 분황사 모전석탑입니다)
탑의 기초가 되는 부분이니, 당연히 상부보다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집니다.
대개 뒤틀리거나 병들어있기 마련인 가장의 엄지발톱처럼.
미륵이 올 때까지 탑의 무게를 버텨야 하는 아틀라스 같은 숙명을 짊어진,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부분이죠.
<봄눈>도 총 4권의 연작으로 구성된 <풍요의 바다>의 기단인 셈입니다.
책 뒷날개의 설명에 따르면 적어도 한 세기 동안 펼쳐질 이야기의 출발이니,
이 작품이 짊어진 무게도 꽤 무거워 보입니다.
그 부담은 보통 작가들이 쓰는 장편에선 발단부의 지루함으로 드러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엔 그런 부담이나 경직은 없습니다.
오히려 왕릉 속에서도 여전한 광채와 세공을 뽐내는 금제 유물 같은,
미시마 특유의 사람을 홀리는 미문으로 가득합니다.
물론 이 기교가 얄팍한 금박종이처럼 날아가지 않도록 붙드는 철학의 무거움도 여전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섬세함입니다.
로맨스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 저 같은 독자도 매혹시킬 만큼,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이건 정말 그냥 천재의 문장이다 싶은......
리뷰를 쓰려고 재독하며 미문의 사례로 꼽으려 붙인 포스트잇만 수십 장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이를테면 이런 문장입니다.
......인력거의 동요가 바로 다음 순간 포개진 입술을 떼어 놓으려 했다.
그러므로 저절로 그의 입술은 닿은 곳을 축으로 두고 모든 동요를 거스르려는 태세를 갖추었다.
맞닿은 입술을 사북으로 삼아, 그 주위로 몹시 커다랗고 향기로운,
보이지 않는 부채가 서서히 펼쳐지는 것을 기요아키는 느꼈다.
약간 무거운 것을 예로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왕자들의 눈가에는 요 하루 이틀 사이 이미 짙푸른 쪽물 같은 향수가 스며 있었다.
(중략) 함께 하는 내내 기요아키는 몸을 떠난 그들의 혼이 대양의 한가운데를 향해 표랑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오히려 유쾌한 일이었다.
모든 것이 육체의 현존에 갇혀 떠다니지 않는 마음을, 그는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깃발’처럼, 감정만을 위한 삶
게다가 이 미문은 서사와 무척 잘 어울립니다.
<봄눈>의 주인공, 기요아키(이하 ‘기요’)는 후작 가문의 외동아들입니다.
메이지유신 전 평범한 무가였던 가문은 기요의 조부가 메이지유신서 핵심적 역할을 하여 후작 작위를 받았기에,
지금(1912)은 도쿄 시부야 한복판에 14만 평에 달하는 대저택을 짓고 살만큼 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18살의 소년 기요는 막연한 낙천가인 아버지와 둔감하지만 교양 있는 척은 겨우 할 수 있는 어머니완 다르게,
도쿄 전체에 이름 높은 미소년인 데다 전통적 귀족만큼 오만하고 섬세한 소년으로 자랐습니다.
졸부 특유의 자격지심에 시달리던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유년기 교육을
메이지 이전부터 일종의 성골로 인정받아온 ‘아야쿠라’ 백작 가에 위탁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소년은 이미 자신 안에 미숙하나마 내재되었던 오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감별하는 심미안을 꽃피웁니다.
그리고 러일전쟁 승리 후, 남은 것은 일몰 없는 노을마냥 끝없이 짙어지기만 할 황금빛 전성기뿐인 일본과 자신의 앞날을 지겨워하듯,
자신의 삶을 ‘깃발처럼’, 가장 순수하고 무용한 ‘감정만을 위해 살아’가는데 바치겠다 결심합니다.
혁명과 전쟁의 시대는 끝났고, 소년은 현재의 배경에선 삶을 바칠만한 ‘무언가 결정적인 것’은 찾을 수 없으리라 예지했기 때문이죠.
소년에게 귀족의 풍모를 가르친 백작 가는
한땐 그 집 수저를 물었다는 이유만으로도 현재의 차관에 달하는 벼슬에 오르던 집안이었지만,
바뀐 시대엔 명예의 허울만 유지한 채 영락해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좀 더 어린 기요는,
그 백작 가의 외동딸이자 자신만큼 아름다운 두 살 연상의 소녀 사토코를 만나고,
사춘기를 맞기 전까지의 시기를 온전히 함께 합니다.
이 아름다운 한 쌍이 벌이는, 결국 엇갈리고 빗나가고 마는 비극적 로맨스가 이 작품의 살이자,
탑의 겉면에 장식되었던 생화 장식입니다.
그렇다면 사리와 석재는, 뒤의 3개의 연작을 받칠 만한 기반은 무엇일까요?
가장 아름다운 무의미만이 인간의 존재의미이다
<봄눈>을 포함한 이 연작의 핵심이 되는 설정은 환생입니다.
이걸 읽고 김빠졌다는 듯, 웃어버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환생은 조금 다릅니다.
<풍요의 바다>와 <봄눈>의 철학,
나아가 연작을 이끌어가는 미시마 유키오의 역사와 인간관을 설명하는 것은 기요의 동급생 ‘혼다’의 몫입니다.
그는 기요의 유일한 친구이자 대법원 판사 아버지를 가진 대단히 명민하고 침착한 소년이죠.
보다 보수적이고 실리적인 성격에 법과 역사에 대한 진지한 흥미와 소양을 가진,
성향적으론 기요의 대척점에 있는 그의 입을 빌어, 미시마는 환생이란 장치의 의도를 설명합니다.
역사는 인간 행위의 총합으로, 늘 미래의 시점에서야 온전히 평가받습니다.
적극적 의지로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인간들도 있으나, 혼다의 눈으로 본 기요는
역사는커녕 자신의 앞날을 개척하거나 주도하려는 의지조차 없는 인간이죠.
그러나 혼다가 느끼기에 기요에겐 ‘완전히 무의지적’으로 ‘역사에 관여하려는’ 설명할 수 없는 힘,
혹은 그런 예감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작품 속 시기, 서양 역사관 속 역사의 동력은 우연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동양의 동력은 운명이었죠.
전자는 인간의 의지를 후자는 운명을 믿기 때문에,
다시 전자는 역사의 당위나 의미를 부정하게 되고 후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어느 쪽을 택하든 역사 앞의 인간은 통시적 당위나 목적으로 뭔가 의미 있는 행위를 할 수도,
자유로운 주체로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숨 막히는 결론 사이를, 기요는 ‘빛나는 영원불변의 아름다운 입자와 같은 무의미의 작용’으로
마치 촘촘한 무의미와 운명의 거미줄을 비웃듯 피해 활공하는 나비처럼 눈부시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역사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주사위놀음판일지라도,
혹은 닳고 닳은 타짜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설계된 비극일지라도,
기요의 삶이 갖는 아름다움은 오히려 더 빛나며,
사실 이런 식의 존재만이 인간이 삶과 역사 위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자유이자 의미인 것입니다.
평생 자신을 조탁해온 한 인간의 세공기
<풍요의 바다>는 국제적으로도 미시아의 대표작으로 인정받은 작품이나 한국어로의 번역은 이상하리만큼 늦었습니다.
작품을 모두 읽은 후엔 제 나름대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죠.
이 연작은 아마도 <금각사>나 <가면의 고백>처럼 아직 스스로를 ‘탈바꿈’할 의지와 방향을 설정하기 전의, 유충처럼 부드럽고 비밀스러운 내면을 드러낸 작품과는 확연히 다를 것입니다. <봄눈>의 기요아키는 환생을 통한 경험과 사상의 비단실을 얻어 탈바꿈한 뒤, 어떤 ‘날개’를 지닌 성충이 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미사마는 기법적으로도 완성된 이 문학적 스완송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가치 판단을 배제하더라도) 전후 일본사회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 과격한 우익인사로 거듭나게 된 것인지를 세세히 보여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이런 작품을 번역하는 것은 당연히 고민스러웠겠죠.
<나의 투쟁>같은 졸작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출판되어 조리돌림 당하고 있지만,
악마적 재능으로 나치의 스펙터클을 영화에 담았던 레니 리펜슈탈의 작품과 삶은
여전히 뜨겁고도 더러운 감자 취급을 당하고 있으니까요.
예술적 설득력과 완성도를 갖춘 프로파간다는 이렇듯 다루기 어려운 대상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라도 우리나라 독자들이 미시마 유키오를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물 간 표현이지만, 일본의 다테마에적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 아닐까 싶네요.
일본의 군국주의를 작품 속에서 ‘어디에도 없는 일본의 혼!’이라 비웃으며 사적이고 정서적인 세계로 침잠하던......
예의 바르고 염치 있게 객관적으로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며
생활과 현실 속에서 규모 있게 도를 넘지 않는 일상을 살아가죠.
하지만 혼네는 역시 미시마 쪽에 가까워 보입니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민족주의라고 퉁치기엔 훨씬 공교하고 복잡한 애국심과 전체주의로,
‘보통 국가화’라는 상식적 단어 속에 숨은 비상식적 야망들을 차근차근 현실화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미시마의 정치적 사상에 대한 판단은, <풍요의 바다>가 완역된 후로 미뤄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이미 한 권의 소설로서도 차고 넘치는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문학이 원래 그랬듯 말이죠.
오 주최자의 글 ㄷㄷ 뭔가 멋있네 행동하는 모습이
풍요의 바다 4부작에서 3권 초반 보다 포기햇지만, 확실히 마지막에 밑줄 친 부분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함. 상당히 묵직하고 정치적 사상과 떼어놓을 수 없는 글로서 나아가는 느낌이었음. 전에 한국 근대소설 중에 역사에 개입할 수 없는 개인의 입장을 모르는 집단들을 비웃는 화자가 나오는 게 있었는데, 그런 류의 글에 덧붙여 일종의 시대정신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나 싶음. 한국어 번역본 다 보면 감상 쓰려 했는데 시간이 맞으려나 모르겠네.
책 뒷면이던가? 미시마 유키오 본인이 '내가 삶과 세계에 대해 느끼고 생각해 온 모든 것을 여기에 담았다'라고 했다던데.. 읽기 전에 한번, 읽은 후에 또 한번 좀 소름돋았음. 정말 대단한 작가임..
근데 님 이벤트에 관심 좀 ㅠㅠ
풍요의 바다 두번째 시리즈는 정치 소설이라던데 그것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