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술지 논문이 2~3인의 심사를 거치기는 하지만 해당 분야 전공자의 풀(pool)이 좁아 전문적인 내용심사가 가능한 경우는 많지 않다. 풀이 좁다보니 필자에게도 꾸준히 여러 편의 논문심사가 들어오지만 그 중 필자의 주전공 분야인 18세기 영국미술사 논문은 한 편도 없을 뿐더러 20세기 이전 영국미술사 논문도 거의 없다. 그 결과,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검토보다는 학회 마다 정해진 심사기준에 따라 기계적인 심사를 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중략)


이러한 제도적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 서양미술사학계가 지닌 보다 고질적인 악습은 연구자들의 연구방식이다. 누구라도 서양미술사 관련 학술지를 조금만 뒤적여보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필자를 포함한 국내 서양미술사학자들이 쓰는 논문은 거의 대다수가 서양의 학자들이 쓴 책이나 논문 등의 2차 사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그나마 1차 사료를 활용하는 경우에도 대부분은 이미 활자화되어 서적의 형태로 출간된 1차 자료에 국한된다. (중략)


적지 않은 현대미술사학자들의 경우, 연구수단과 목적의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잦다는 사실이다. 가끔 이들의 논문을 읽다보면 특정이론이 작품을 분석하거나 이해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작품이 특정이론이나 담론을 입증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특히 필자가 심각하게 느끼는 문제는 국내 현대미술사학계와 미학계 일부에 만연한 지적 사대주의이다. 그 중에서도 미국의 미술비평가이자 현대미술사학자 로잘린 크라우스(Rosalind Krauss,1941~ )에 대한 한국 일부 학자들의 짝사랑은 지켜보기가 애처로울 정도이다. 


전동호, 〈내수용 서양미술사의 빛과 그림자〉, 《역사학보》 243, 2019.






국내의 대학원 사정이란게 거기서 거기겠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고 학계 내부의 사정까지 까발린건 사회과학쪽 말고는 못본듯


근데 암울한건 개인적 경험에 비춰볼 때 이 글은 꽤나 긍정적인 관점에서 서술했다는거. 그래도 논문이니 체통을 지킨건지 아니면 미술사 학술지가 아니라 역사학쪽 학술지에서 지나치게 치부를 드러내는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물론 이쪽에도 아주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고 그분들이 쓴 논문이나 책들은 매우 가치가 있지만 부족한 시간과 돈을 쪼개 책을 읽는 평범한 취미 독서인이 그런 저자가 누구인지 어찌 쉬이 알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