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살펴본 크리스머스 캐럴 5에서
최인훈은 외국인의 목소리로서가 아니 라, 한국인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정신의 탈식민화를 수행할 때, 혁명을 기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비슷한 시기인 1966-1967년에 연재된 최인훈의 서유기에는 냉전과 독재라는 한국의 역사적 조건 안에서 한국의 상황을 당대와 다른 방식으로 바꾸고자 했던 인물인 조봉암이 등장한다.

최인훈은 서유기에서 독고준으로 하여금 고향 W시를 향한 환상의 여정을 밟게 하는데, 석왕사 역 인근에서 독고준은 역장,이순신, 이광수 등과 한국의 식민성과 주체성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순차적인 그들의 대화 한가운데 서술자는 조봉암과 독고준이 대면하는 장면을 무척 짧게 제시한다.

역장, 이순신, 이광수와의 대화가 무척 활발하며 필요한 경우 서술자는 가상의 장면 제시를 수행하는 것에 반해서, 조봉 암과 독고준 사이에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은 지금 모시러 가던 참이었읍니다. (간호원의 발언 - 인용자)
하고 그(독고준-인용자)의 팔을 잡아끈다. 그(간호원-인용자)는 독고준을 (기차의- 인용자) 다음칸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 칸에는 조봉암(曺奉岩)이가 혼자 앉아 있다. 그는 수척해 있었다. 독고준과 간호원이 가까이 가도 그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그는 거의 해골처럼 보인다.

"자, 보세요."

간호원이 외마디 소리지르듯이 날카롭게 부르짖었다.
독고준은 그녀가 흥분하는 까닭을 알 수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독고준의 발언 - 인용자)

"네?" (간호원의 발언 - 인용자)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불편?"

"이렇게 죽은 사람이 다 있는데(손가락으로 조봉암을 가리켰다) 좀 불편하면  어때요? 이사람이 죽었을 때 우리의 욕망도 죽은거얘요. 이 사람이 죽었을 때 우리의 야심도 죽은거얘요. 아하 끔찍도 해라. 당신은 보고만 있었죠?"

"네? 이사람이 죽었읍니까? 난 아직 신문을……"

"신문? 신문에 죽었다고 나면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조봉암사건>은끝났다는말인가요?〔…〕
좋아요, 내가 화를 내려던 건 당신이 이 사람이 이지경이 될 때까지 손끝 하나 까딱 안한게 섭섭해서 그랬는데 그 얘긴  더 안하겠어요. 그 대신 부탁이 있어요."

"뭡니까?"

" 이 사람은 지금 빨리 치료해야 합니다. 그러니 도와주셔야겠어요."

"어떻게 돕는단 말입니까?"

"다음 정거장에서 나하고 이사람이 내릴 테니 당신이 이 자리에 앉아있다가 누가 찾거든 내노라고 해달란 말입니다"

"그건 못합니다." 181p 서유기 >

서술자는 조봉암이 독고준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장면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봉암은 죽은 상태로 침묵한다. 다만 치료는 가능한 상태인데, 서술자는 그것을 두고 간호원과 독고준이 의견 차이를 가지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장면을 구성한다. 간호원의 주장은 조봉암이 죽을 때, 독고준이 ‘보고만’ 있 었던 것에 대한 사후적 책임으로서, 기차 안 조봉암의 자리에 대신 앉아있다가 ‘누가 찾거든 내노라’고 해달라는부탁을 한다.

간호원의 요청은 성경의 요한복음 에서 서술된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제자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한밤중 예루살렘 인근  감람산에서 잡히는 날 밤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네  편 복음서 중 나머지 세 편의 복음서는 배신한 제자 가룟 유다의 입맞춤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체포된 것으로 나오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 “내로라”라고 두 번 밝히며, 서술자는 이 언급을 세 번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체포 이후 제자 베드로는 법정마당까지 따라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지를 묻는 한 여성의 질문에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고 세 번 부인한다. 이튿날 스승을 판 가룟 유다는 배신의 대가로 받은 돈을 돌려주고, 스스로 민사한다.

간호원의 요청에서 “보고만 있었”던 이의 위치는 스승을 부인한 제자 베드로 의 위치이며, “누가 찾거든 내노라”라고 발화하는 이는 십자가를 지게 될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이다. 간호원은 독고준에게 조봉암을 대신하여 조봉암의 위치에 서 있어줄 것을 요청한다. 그것은 조봉암의 치료, 혹은 부활을 위한 것이다. 간호원의 흥분한 요청은 1959년 조봉암의 죽음을 보고만 있었던 독고준에게 뒤늦었지만 그의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부끄러움’과 “염치”를 가지고 행동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간호원의 요청에 대해 독고준이 거부하면서, 두 사람은 토론을 하게 되는데, 서술자는 논평을 삼가고 두사람의 대화로만 장면을 길게 제시한다. 하지만 끝내 독고준은 “나는 남의 일 때문에 내 일을 망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그 요청을 거부하며, 간호원은 독고준을 두고 “염치까지 버린  유다”라고 비난하는 것으로 조봉암을 둘러싼 두사람의 대화 장면은 종료된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