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윌버의 무경계를 읽고..


1.나는 누구인가?


처음부터 저자는 나/ 나 아닌 것 즉 이분법적사고에 대해 일침을 가합니다.

망치로 머리를 가격 당한 느낌이었습니다..


2.그것의 절반

아담과 이브가 나옵니다. 적절한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는데 이중 가장 와닿았던 노자님의 문구입니다.


예와 아니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선과 악은 그 거리가 또한 얼마나 되겠는가?

사람들이 두려워한다고 나도 두려워해야만 할까?

이 무슨 난센스인가! -무경계 p55-


스스로 경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고통스러워 한 너무나도 어리석은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3.무경계 영토


단순하게 나눈 경계가 점점 복잡하고 치밀하게 나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경계-유형의 경계(범주-범주의 범주) 이 새롭고 강력한 경계가 기술만의 발전을 가져왔지만 그 책임에 따른 소외와 단편화도 같이 가져왔습니다.


저자는 경계는 언제나 양날의 칼이며, 그 칼로 잘라낸 자연의 열매는 필연적으로 달콤하면서 씁쓸할 것이라고 단언 합니다. -무경계 p75-


경계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원자 이하의 소립자들은 아무런 경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는 메타 경계도, 측정도 있을 수 없었으며, 따라서 어떠한 정교한 메타-메타 경계와 법칙들도 있을 수 없었다. 중략...

단일한 전자는 애당초 경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경계가 없다면 메타 경계도 메타-메타 경계도 있을수 없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궁극적 실체가 여전히 무경계 상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물리학자들이 이제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무경계 p79-


경계를 설정하며 무궁 무진하게 발전한 과학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에서 씁슬했지만, 한편으로는 한쪽으로 치우친 방식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습니다.


4.무경계 자각.


합일의식을 설명하기 위한 장이며 개인적인 비유를 하자면 피자를 만들기 위해 토핑을 올리는 준비 과정의 장이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점은 주체와 객체, 나와 나 아닌 것, 보는 자와 보이는 것 사이에 아무런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무경계 p90-


명확하게 결론을 내립니다. 내가 만든 덫에 내가 걸렸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 문구를 보면서 많은 생각과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이내 사그라 들면서 스스로 위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통이 있을 뿐, 고통받는 자는 없다.

행위가 있을 뿐, 행위하는 자는 없다.

열반이 있을 뿐, 열반을 구하는 자는 없다.

길이 있을 뿐, 그 길을 가는 자는 없다.


이런 이해는, 실로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가능케 해준다고 보편적으로 전해진다.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곧 우주임을 깨달을 때 내게 고통을 줄 수 있는 외부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중략... ‘고통받을 수 있는 나가 존재한다는 관념으로부터의 해방이기 때문에 곧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과 같다는 말이다.

-무경계 p101-


결론을 내리고 부처님의 청정도론 16장의 구절을 멋지게 인용합니다.

즉 합일의식이 곧 진정한 무경계란 것을 저자는 말합니다.


5. 무경계 순간.


눙크 스탄스(nunc stans) :스쳐가는 현재, 영원한 현재. ‘현재 안에 세상의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과 함께 우주가 존재한다.’ -무경계 p126-


저자는 이것을 무경계 순간이라 합니다. 시작과 끝 이 없다는 것. 참 오묘했습니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된 구절이라 생각합니다.

영원한 지금이 하나의 의식이다.” 영원한 현재가 곧 합일 의식이다.

합일의식은 진정한 나에는 경계가 없다는 인식일 뿐만 아니라, 거울이 대상을 포용하는 것처럼 모든 우주를 포용한다. -무경계 p128-


이전에 읽을 때 여기까지 읽고 엄두가 안나 책을 덮었습니다. 하지만 연기법 수행을 조금 해보니 다음장이 궁금해졌습니다. 시간 까지도 경계를 설정한 것,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였습니다.


6. 경계의 생성과정과 전개과정.


죽음의 대한 공포.


도가의 한 현자는 이렇게 말한 바가 있다. “옛 진인은 생명을 사랑하거나 죽음을 미워하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생명을 받더라도 기뻐하지 않았고, 물러날 때도 저항하지 않았다. 그분들은 태연하게 왔다 태연하게 갔다. 이와 같이 그분들에겐 에 저항하려는 마음의

바람이 없었으며 인간의 수단으로써 하늘의 뜻에 저항하려는 그 어떤 바람도 없었다.”


우리의 참된 자아 즉, 합일의식이다. ‘근본적인 나우주로서의 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외견상의 개인적 죽음은 단지 받아들일 수 있는 현상이 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바라는 것이 되기도 한다. -무경계 p137-


당연하게 받아드리던 죽음도 결국 만들어낸 하나의 경계에 불과한 것.

7~9. 발견의 출발점~초월적인 나.


용어가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문제도 있었고 와닿지도 안았다. 특히 켄타로우스편은 정말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꾸역꾸역 읽었던 부분입니다. 보다가 과감히 초월적인 나로 책장을 넘겼습니다.


나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생각이 아니다나는 나의 생각들을 알 수 있고 직관할 수 있는데, 알려질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아는 자가 아니다. 생각들은 나에게서 떠나 가지만, 그것들은 내면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나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나는 나의 생각이 아니다.’ -무경계 p215-


저자는 초개아적 나주시자 라고 하며 순수한 합일 의식이 아니라 합니다. 합일의식 속에서는 초개아적 주시자 자체가 주시된 모든 것과 함께 붕괴된다고 합니다.


초개아적 주시자를 발견하라고 합니다. 상당히 난감했습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 탓인거 같습니다.


10.궁극의 의식상태.


진리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중생은 그것을 먼 곳에서 찾는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비유컨대 물 한가운데 있으면서

목마르다고 애원하며 울부짖는 사람과 같다. -무경계 p235-


참 와닿는 문장이였습니다. 트라우마에 갇혀 고생했던 지난 내 모습을 보며 순간 울컥했습니다.


,서양 막론하고 하고 결론은 合一을 언어의 한계 때문에 각각의 방식으로 설명하였으니, 헤맬 수밖에 없는것에 참 슬펐습니다.


한쪽으로만 편향되게 온 과정과 결과를 보면서 고정관념과 고정관념의 사고방식이 낳은 결과는 정말 참혹했습니다. 편식을 하면 몸도 망가지듯이 편향된 발전이 올바른 정신이 망가진다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中者 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 庸平常也

중자 불편불의무과불급지명 용평상야


<>은 편벽되지 않고 치우치지 않고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음의 이름이요

<>은 평상함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