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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마라톤 뛴다!.
Q.현실의 반영, 현실을 재현
<미메시스>에서 아우어바흐가 말하듯 19세기 초 프랑스 사실주의 소설의 움직임의 의의는 고대 리얼리즘과는 다르게 낮은 계층의 일상까지 전부 재현하며 소설에 현실감을 충족시켰음이다. 그의 표현을 가져오자면, “일상적 실제적 현실은 오로지 낮거나 중간 스타일의 영역 내에서만, 다시 말하여, 괴상하고 우습고 즐길 만하고 가볍고 생생하고 우아한 오락으로서만 문학적 공간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진단은 노스럽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를 떠올리게 한다. 그 자신이 도식화한 문학의 단계, 즉 신화와 로맨스에서 모방과 아이러니의 범주로 옮겨감, 으로 진단한 셈이다. 변화/ 흐름은 필연적이다. 현대 문학의 흐름이 어떤 건지는 다방면으로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요즘 자본을 역할적인 측면과 함께 예술에 끼치는 영향적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봤다. 세간 입말처럼 자본이 예술을 잠식했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의견은 한 번 판도가 뒤집힌 예술판에 자본이 몰리는 것이다. 출판사나 편집자, 비평가들은 바뀐 예술판에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근본적인 예술을 하는 자들이 아니다, 예술 형식과 흐름에 관해서 탓해야 할 것은 쉽게 생각하기에 그 흐름에 물을 주는 자본과 권력으로 보인다. 책임을 묻기에 용이한 탓일까, 진실은 숨어있다. 예술의 책임은 우선적으로 예술가 본인들에게 있다.
그래서 단순하게 흘러가는 예술 형식과 똑같은 유행 사조에 관해 말하려면 일단 그들, 소설가에 대한 판단이 먼저 인 것 같다. 그들을 좋아하지도 않고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지만 언급하고 싶은 건 현직 종사자와 대중 간의 견해 차이다.
독서에 점점 집중 못해가던 차에 느낀건데, 내가 사회와 관습이 문학을 종속함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더라. 그 바깥으로 벗어나는 문학의 가능성에 내기를 거는 것은 무모해, 가 나의 의견이었다. 새삼 당연한 걸 곱씹으면서 기분이 찜찜했던 이유는 한국 문학이 어느 유행 사조로 편향 흐름을 보인다고 생각해서고, 옳다고도 생각지 않아서다. 한 번 정해진 흐름을 타파하기란 망치와 같은 역할이 나와주질 않는 한 정말 어렵음직하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제 막 틔우기 시작하는 작은 씨앗이 어찌 받을 것이며, 판을 뒤집기 전에 보이지 않음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물론 대중 독자인 내가 현직 종사자들의 입장을 몰라서 하는 소리겠지만.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을 써내는 그들의 심정에, 표현에 온통 공감이 안 간다고 답답해하고만 있을 수야 없다. 대신 그들이 써낸 텍스트보다는 그 배경에 먼저 이목이 가고야 마는 습관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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