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인간 주체가 자신의 실존 조건과 본질적 목적 사이의 상충으로 인해 내적 갈등에 희생된다.
이 갈등의 해소는 인간을 우주적 정신의 담지자로 이해하면 해결 가능하다.
또한 절대적 주체도 비슷한 갈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유한한 물질적 사물들의 실재 속에서 체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체의 삶은 무한하고 한정이 없다.(앞에서는 한계점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주체의 담지자는 유한한 정신이며, 유한한 정신의 목적은 합리적 필연성에 대한 명쾌한 합리적 인식이다. 이 합리적 인식은 정신과 물질, 사유와 연장의 통일이다. 그러나 세계 내에서 사유하는 존재들은 외적 실재를 타자로 마주한다.(본질을 못본다는 뜻일까?)]
유한한 정신처럼 절대적 주체도 통일로 복귀하기 위해 분리를 겪어야 하는 원환과정을 통과해야 한다.(정반합, 나선모형, 나선모형은 내 표현.) 요컨대, 점차 발전해나가며 인간(유한한 정신)이 깨달음을 얻어야 절대적 주체도 본체가 드러난다는 의미인 듯하다. 여튼 유한정신과 절대적 주체는 운명공동체에 가까운 팔자인 듯..
1.
정신에게 있어서 가장 큰 대립은 본인의 속성과는 상충하는 세계에 체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서는 시작점이다.
이 시작점은 계몽시대 이전의 인간들이다.(내 표현, 갑자기 용어가 안 떠올라서.) 이 시작점은 원시적 통일점이고(정), 이것에 반동하는 것이 계몽시대의 인간이며(반, 이성을 숭상하는),
그리하여 [이 두 번째 대립점도 넘어설 때, 더 큰 합리적 필연성과 이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보게 될 때 양자를 위한 화해가 이루어진다.](합) (말하자면 안과 밖 모두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 때, 어쩌면 인간의 인식의 극한지점을 얘기하는 것이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부분을 이야기하는 걸 수도 있는데, 나는 인간 인식의 극한지점에 도달하는 것일 거라 생각함.)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기 때문이다.(내 표현, 책에서는 필연성들을 깨닫는다는 뉘앙스로 말하고 있음)
지금 우리 시대는 반과 합의 중간쯤에 일단 위치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지. 포모라는 게 튀어나오고 있지만, 동시에 모더니즘도 인정받고 있는 시대이니까.
2.
[모든 것의 근저에 놓여있는 절대자는 정신 혹은 주체인데, 이것이 ‘세계는 그 안에 우리가 세계 영혼이라 부르는 단 하나의 삶의 흐름만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는 합리적 필연성 때문에 그렇게 존재한다.]
지금까지 이렇게 헤겔의 사상들을 요약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이유는, 이것들이 어떻게 ‘동일성과 차이의 동일성이라는 헤겔의 일반적 주장을 이해나는 데 도움을 주는가?’에 대한 배경지식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동일성과 차이의 동일성이라는 말은, 아마도 ‘A와 ~A가 같다.’는 이상한 명제 의미하던 거 같고, 이것을 가능하게 만드는,(그러니까 관찰 결과 인간은 A와 ~A가 같을 때 본인의 존재를 더 단단히 다져나갔던 것 같은데, 그래서 A와 ~A가 같다는 것을 헤겔이 고집했던 이유인 거 같다.) [절대자가 주체라면,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이 주체와의 관련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은 이 주체의 삶을 이루고 있는 동일성과 대립의 상호작용에 휘말린다. 그렇다면 동일성과 대립의 필연적 관계라는 말은 왜곡이나 과장된 말이 아니다.]
3부 – 자기 정립하는 정신, 194-196P
뒤부터는 본격 새로운 내용이라 머리 아플 거 같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내용정리는...
인간과 정신은 운명공동체라, 인간이 발전해야 정신이 완성되고, 인간은 그 과정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듯한데, 세상과 인간의 합치점을 찾다보니 A와 ~A가 같다는 것을 납득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하고, 그 지점은 바로 인간과 정신의 관계가 운명공동체여야 한다는 것 같다. 그 운명공동체 운운하는 것은 헤겔이 주구장창 말하는 합리적 필연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거 같다. 근데 이 시점에서 이제 주체를 검색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찾아보니,
즉 '주관'이라는 말로 표현될 때는 주로 인식상의 문제에서 사용되며 인식을 일으키는 의식을 가리키고 있지만, '주체'라고 하는 경우에는 단순히 의식에 한정되지 않고 의식을 가진 인간 및 이 인간이 개별적으로 신체를 갖추고 실천하는 실체를 의미한다. 주체가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될 경우 주체성은 주체가 다른 것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발적인 판단이나 행위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주체 내지 주체성의 개념은 생철학이나 실존주의의 중심적 과제가 되어 왔다.
이렇다고 하니 참고하자.
[네이버 지식백과] 주체 · 주체성 [Subject · subjectivity, 主體 · 主體性] (철학사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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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가진 존재가 자유로히 행동하는 것을 주체라 생각하고, 그래서 아마 헤겔은 앞서 내용에서 자유를 겁나 얘기한 거 같음. 어려울 거 같으니 진정 자유로울 가능성이 있는 존재를 주체라고 나는 이해하기로 하겠음. - dc App
잘 읽었늠. 오늘건 그래도 잘 이해되네. 그래서 결국 a랑 ~가 왜 같은가 ㅋㅋ
많이 반복이 되서 그런 게 아닐까. 이거만 한 4번째 쓴 듯(테일러가 걍 계속 반복함) 여튼 잘 이해됐다니 좋다. - dc App
A든 ~A든 절대적 주체 안에서 합일되기 때문에? 같다는 것? 인간과 정신이 운명공동체란 데서 그 근거가 찾아진단게 이 뜻인가. 나도 나름대로 찾아봐야겠다
내 생각엔 인간을 관찰해보니 논리적으로 딱딱 나눠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모순적 존재인데, 그건 인식적 존재라 그런 거 같음. 전체로 파악이 되어야 하는데 전체 파악이 안되니까 a 가 ~a로 드러나는 존재인거지. 그런데 그냥 그런 인식적 존재로 남는 게 아니라 더 나아질 수 있다고 헤겔이 역설하면서 세상을 설명하면서 인간도 설명할 수 있는 - dc App
합치점이 헤겔이 주구장창 밀어재끼는 절대정신인 거 같음. 나머진 모르겠. - dc App
그럼 a=~a일 수 있는건 인간뿐이라 생각함?
합리적 동물이면 가능한데, 현재까진 인간뿐인거지. 헤겔에게 있어선. 나는 인간이 그런 존재라는 건 동의하지만 다른 존재가 어떤지에 대해선 아직 관심이 없음. - dc App
운명공동체는 내 표현이고, 정신은 체현될 수밖에 없는데, 인간을 통해서 체현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인간만이 합리적 동물이기 때문임(외계인 발견되면 걔네도 가능) 그런데 인간도 정신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인간이 그 문제를 점차 해결해갈수록 정신이 드러난다는 뭐 그런얘기를 내가 걍 운명공동체라 말함. 같은 문제는 실존 조건과 본래 조건 - dc App
의 불일치 - dc App
ㅇㅋ 다 해결됨. 근데 지금 읽고 있는 플라톤이랑 엄청 흡사하게 느껴지네. 각자 자기 책임을 다하고 철저하게 이성에 따라 운영되는 철인통치 국가의 이상적인 질서가 필연성인 동시에 자유이기도 하다는데 헤겔이랑 많이 오버랩돼보이네
칸트 이후의 자유라는 의미와 그 시절의 자유라는 의미가 일단 좀 다르긴 할거임, 글구 헤겔의 분류에 따르면 분리 이전(정)의 시대니까 재통합(합)을 추구하던 헤겔 사상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거 없음. 헤겔 바로 이전 시대쯤부터 고대 그리스 그리워하는 작품들이 그렇게나 많았다고 함.